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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묘지 제도4 -논문(송용진,김종업),단행본(이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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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8-01-10 07:08 조회1,4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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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한국 분묘 문화 개론>(이상진. 2006. 민속원. 40-44p)

  가. 고려의 분묘는 대체로 신라시대의 묘제를 계승함.

  나. 도참 풍수지리설을 중요히 여겨 묘의 방위를 엄격하게 가림.

  다. 주산을 뒤로 업고 남쪽을 향함. 좌청룡, 우백호를 이루고 주수(主水)와 객수(客水)가 그 앞에서 합하는 곳을 명당으로 여김.

  라. 호석을 많이 설치함.

  마. 묘지(墓誌)를 묘 옆에 묻는 묘제가 생김.

  바. 귀족의 경우 둥근 봉분을 만들고 그 속에 석실을 만들어 옻칠을 한 관이나 화장을 한 재를 담은 석관을 안치함.

  사. 일반인은 목관에 시신을 모시어 토장을 하였는데 봉분은 작음.

 

6. <한국의 墳墓考>(金宗業. 제주대학 교양과정부 논문집 제5집)

  가. 고려시대에는 불교정책에도 불구하고 화장보다는 매장이 유행하였다.

  나. 신라의 제도를 계승한 것 같으나 초기의 묘형은 방형(方形)이었으나 중 기 이후는 원묘(圓墓)로 변형하였다.

  다. 최씨 집권당시에는 묘곽에 금박 장식의 풍조가 유행하였다. 이에 고종 22년에 금박 장식을 금하는 칙령이 내려졌다.

  라. 일반 서민은 매장보다는 화장이 많았다.

  마. 13세기 이후 몽고 세력의 강성해지고 송대 이후의 유교철학이 유입되고 여말에 주자학이 중심이 되면서 공양왕은 법으로 화장을 금하고 매장을 하게 함.

 

7. <우리나라 묘지제도에 관한 연구>(宋容珍. 성균관대학교 경영대학원 부동산학과. 1998. 석사논문)

  가. 불교가 크게 유행하였으나 화장은 유행되지 않고 토장(土葬)이 성행함.

  나. 상류층에는 화장묘로서이 석관묘가 많이 보급된 것으로 믿어진다.

  다. 일반인 묘는 대부분 토관묘를 썼다.

 

 <고려시대 분묘 연구 논문류, 단행본 자료 종합 결론>

  1. 고려시대 귀족계급의 묘는 방형, 장방형, 세장방형의 사각묘가 중심을 이룬다.

  2. 묘 아래에 기단을 판석으로 낮게는 3단, 또는 높이 석축을 쌓고 그 위에 봉토하는 형식이었다.

  3. 고려시대 귀족계급의 묘는 석관묘, 석곽묘를 사용하였고 횡구식을 썼기 때문에 후에 도굴이 쉽게 하였다.  

  4. 개성지역 고려시대 분묘는 거의 모두 도굴, 훼손되었다고 본다. 이유는 일반 서민의 묘소까지도 부장품이 거의 100% 들어 있어서 이를 노리는 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일제시대에 크게 행해졌다.

     따라서 문영공의 묘소도 이런 분위기에서 1942년 도굴 당한 뒤 노출 방치되어 있던 묘지석을 발견, 실전된 묘소를 찾게 되었고, 1943년 안양으로 유해를 이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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