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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金資) : 동일인인가, 동명이인인가 – 05 면주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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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작성일19-01-26 18:56 조회683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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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金資) : 동일인인가, 동명이인인가 – 05 면주 비교

김자(金資)는 고려 후기 인물로 ①안동김씨와 수안김씨, ②신안동김씨(안동성주 김선평 후손), ③원주김씨(김거공 후손)에 각각 기록돼 있다. 이분들은 동일인인가? 단순히 이름만 같은 각각 다른 인물인가? 안동김씨와 수안김씨의 김자(金資)는 충렬공(김방경)의 손자로 동일인물이다.
 
05. 김자(金資) 면주 비교
hwp.gif 김자-면주비교.hwp(17.5KB)

아래 표에서 보듯이 김자(金資)의 면주는 동일인물의 기록이다.
이 기록들은 모두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기록된 내용들이다.
이런 현상은 여사와 절요 기록을 각각 수록한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구 분

면 주 내 용

비 고

안동김씨

김자(金資)

도첨의사사(都僉議使司)

경진보(1580)에는 재신(宰臣)’으로만 기록되어 있다.

수안김씨

김자(金資)

高麗忠肅忠惠兩朝直令同正典理功臣奉翊大夫三重大匡提調都僉議司事歷任

고려 충숙왕과 충혜왕조의 직영동정이다. 전리공신 봉익대부 삼중대광 제조도첨의사사를 역임하였다.

 

신안동김씨

김자(金資)

升仕郞衛尉注簿同正

승사랑 위위주부동정이다.

上洛金氏父升仕郞都渠令同正允侃祖國學博士雍曾祖戶長正位呂黃外祖金吾衛別將同正金應孚本安東

按原州金巨公子允侃女金資云趙滄江涑譜錄以爲婿皆未知其何據

배위는 상락김씨이다. 아버지는 승사랑 도거영동정 김윤간(金允侃), 조부는 국학박사 김옹(金雍), 증조부는 호장정위 김여황(金呂黃)이다. 외조부는 금오위별장동정 김응부(金應孚)로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원주인(原州人) 김거공(金巨公)의 아들 김윤간(金允侃)의 사위가 김자(金資)이다.”라고 한 창강(滄江) 조속(趙涑)이 만든 보록(譜錄 : 譜冊)에서 사위라고 한 것은 그 근거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배위를 상락김씨라 하였으나, 그 이전의 가승기략(1761)’에는 본관이 安東으로 적혀 있고, 그보다 앞선 1390년의 김득우 호구자료역시 본관이 安東으로 적혀 있다.

일부 오자는 김득우 호구자료에 의거하여 바로 잡았다.

창강(滄江) 조속(趙涑)’씨족원류를 엮은 송창(松窓) 조종운(趙鍾雲)’의 숙부이다.

원주김씨

김자(金資)

一諱自龍 號昌甫

다른 이름은 자용(自龍)이다. 호는 창보(昌甫)이다.

高麗高宗二年西紀一二一五年乙亥四月八日生乙巳公以護軍如元又以密直如元以評理權管國事都僉議司事開書筵公與諸老宰更日侍讀經史法言忠烈王十年西紀一二八四年甲申十二月二十五日卒墓長湍

고려 고종 2년 서기 1215년 을해년 48일생. 을사년에 공이 호군으로서 원나라에 갔다. 또 밀직으로서 원나라에 갔다. 평리로서 임시로 나랏일을 관장하였다. 도첨의사사로서 (공민왕이) 서연을 열자 공이 원로 재상들과 함께 번갈아 경전, 역사서, 법언(法言)을 시독(侍讀)하였다. 충렬왕 10년 서기 1284년 갑신년 125일 졸하였다. 묘는 장단에 있다.

配郡夫人靑松沈氏父尙書令光高麗高宗七年西紀一二八七年丁亥九月十六日卒墓祔

배위는 군부인 청송심씨이다. 아버지는 상서 심영광(沈令光)이다. 고려 고종 7년 서기 1287년 정해년 916일에 졸하였다. 묘는 합장하였다.

김자(金資)의 면주에서 행적은 1322(충숙왕 9)부터 1352(공민왕 원년)까지 기록인데, 김자(金資)와 배위 청송심씨 생몰년은 행적보다 앞선 것으로 적혀 있다. 면주의 행적은 모두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기록된 내용이다. 따라서 행적 기록이 옳다면 김자(金資)와 배위 청송심씨의 생몰년을 신뢰할 수 없고, 생몰년 기록이 옳다면 행적 기록을 믿을 수 없다.

댓글목록

김영윤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영윤
작성일

원주김씨보의 김자(金資)의 면주는 정정이 가능하나 생년은 빼박(?)일듯 하네요 이후 후손의 생몰년이 명확히 기록되어있어 대혼란이 불 보듯.. 생년의 근거가 맞는다면 동명 2인일수 밖에 없고요 동일인이라면..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