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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공 김구덕의 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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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02-02-15 16:33 조회1,7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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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공 김구덕 제문(安靖公 金九德 祭文)



--김구덕(?∼1428, 세종10년) 조선 세종 때의 문신. 시호는 안정(安靖), 본관은 안동,



상락군 묘(昴)의 아들《문온공 구용(九容), 제안(齊顔), 구덕(九德)》입니다.



안정공에 대한 상세한 기록은 이미 영환대부님께서 2001.10. 4. 본 홈페이지에 올려



놓았으니 참고하시기 바라며, 저는 그 제문만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1428년 윤4월 16일



--돈녕부 판사 김구덕에게 제사를 지내주었다. 그 제문은 이러하였다.



--《신하로서 공경스럽고 충성스런 마음을 끝까지 변치 않았으니 나라에서는 응당



표창하는 절차에 따라 애도를 표시해야 할 것이다.



--경은 도량이 넓고 온순하였으며 양반 집안의 자손으로서 여러 왕대에 걸쳐 관리들



의 모범이 되였었다. 정사에 참여해서는 원칙을 다잡았고 그대로 실행해서 않되는



일이란 없었으며 지방관리로 나가서는 백성을 다스리어 이르는 곳마다 명성이 높았



다. 어진 딸을 둔 덕에 세자비로 뽑힐 운을 타서 왕실의 은혜를 받게 되었으며 딸을



궁궐에 들여보내어 세자비로 되게 하였다. 대대로 집안에 덕을 쌓지 않았더라면 어



찌 나라와 함께 이런 영광을 길이 누릴 수 있었으랴. 얼마전에 돈령부의 벼슬을 주



어 친근한 정을 표시하였으며 오래 살면서 자손들의 효성을 누리기를 바랬더니 어찌



하여 하늘도 무심하게 갑자기 영영 앗아 갔는가!



--부고를 받고나서 초상을 치르게 하였고 이미 절혜공이라는 시호를 내린데다가 또



제사를 지내어 애도를 표시한다.



--아, 낮이 가면 밤이 오듯이 죽고 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운수지만 임금과 신하사



이의 은정과 예절이야 어떻게 이승과 저승에 차이를 두겠는가!》



(원본 출전 : 조선왕조실록인물사료/한국문화사/한국고문헌연구회편/1994 별도참조

번역본 출전 : 세종장헌대왕실록 제40권 세종 10년 무신 윤4월 정유일/여강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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