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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보름까지의 세시풍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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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02-02-10 16:52 조회1,5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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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초하루(설날)



예전에 정월 초하루 설날은



이른 아침에 노소남녀 모두가 새옷이나 깨끗이 빤 옷을 갈아입고



먼저 자기 부모, 조부모 등 손윗 사람에게 새해 인사 곧 세배를 드리고



다음으로 당내와 일가 친척 그리고 외인(外人) 노인들을 찾아



인근마을 각처를 다니며 세배하고 사당을 모셔놓은 "궤연( 筵)"이 있는 집일 경우에는 "궤연"에 까지도



신년 인사를 올렸습니다.



그 때 연장자가 30세 전.후의 청년으로부터 절을 받을 때 하는 인사말은



『모시고 과세 잘했나』『올해 아들 나을 꿈은 꾸었나』하고



장가를 들지않은 젊은이에게는 『장가들 꿈은 꾸었나』등



상대방에게 알맞은 덕담으로 축복을 해 주며,



주과(酒果)나 세배돈 같은 금전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풍속은 오랜 역사를 가진 것으로 동국세시기에도 나타나 있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이런 세시풍속이 사라져가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해줍니다.





설비음(설비슴)



지금부터 30년∼40년 전만 하더라도 먹을 음식과 입을 옷이 매우 귀한 시절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일년내내 설날과 추석 한가위에 부모님이 마련해 주시는 새옷을 한 벌 입어 볼



수 있었고 그 새옷을 가슴 설레며 기다리던 시절이었습니다.



요즈음에는 유행이 지나고 몸에 맞지않아 못입지 어디 헤어져서 못입습니까?



참으로 격세지감이 크지요.



어찌되었든 그 옛날 그 시절 설날 아침에 빈부귀천없이 새옷을 갈아입고



청결한 차림을 하는데 신년에 새옷을 마련하는 것을 설비음 또는 설비슴이라 하였습니다.





더위팔기(賣暑)



정월 14일은 누더름날이라는 방언도 있지만 늦여름 조(兆)로 봅니다.



즉 일년을 사계절로 나눌 때 여름에 해당하는 날입니다.



그러니 자연 13일은 봄에 해당하고, 15일은 가을, 16일은 겨울로 보는 셈이지요.



그런데 14일날 아침에 아무개야, 아무개야 하고 불렀을 때



대답을 하지 말아야지 눈치없이 얼결에『네』또는『응』하고



대답을 하게되면『내 더위 사가거라』하여 더위를 팔고



상대방이 먼저 눈치를 챘을 때는 상대방이 먼저 『내 더위 사가거라』



하고 역습을 하는 풍속이 바로 더위팔기 세시풍속입니다.



당한 사람 입장에서는 약오를 일이였지요.





쥐불놀이



정월 14일 저녁 때에 마을 청소년들이 논두렁이나 방찬둑 풀과 잔디에 불을 놓고



쥐불여』『쥐불여』하고 웨칩니다.



농촌에서는 곡식에 해를 끼치는 쥐가 이 불에 타 없어지라는 뜻일 것입니다.



현재의 과학적인 면에서 보더라도 병충의 알을 태워 없애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이라 생각되며,



우리 조상들의 과학적 생활방식을 엿볼 수 있지요.



다만 산불의 우려가 있으므로 불조심만 한다면 버릴 수 없는 좋은 세시풍습이라 하겠습니다.





망월(望月)놀이



상원의 망월이 있으니 이날 밤에 가장 먼저 대보름달이 떠오르는 것을



보게되면 일년내내 운이 좋아서 총각은 장개를 가게 되고



새신랑은 아들을 낳게 된다고 하여 횃불을 들고 높은 산에 올라서



『망월여』『망월여』하며 달뜨기를 기다리는데



이것을『망월본다』하며 혹은『달맞이』라고도 합니다.



또한 아낙네들은 소원성취를 비는 뜻으로 큰 절을 여러번 하기도 합니다.



한편 농가에서는 이 망월 달의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



당해년 농사의 풍년과 흉년을 예측한다고 하는데



달이 되게뜨면 가물고, 늦게 뜨면 물이 많고, 두껍게 뜨면 풍년이 들고,



달빛이 붉으면 가뭄이 극심하다는 등 노인들은 경험을 말하기도 합니다.



정월 대보름날 각 동네마다 뒷 산에 올라 횃불을 들게되면



사방 수십리 인근 산들이 온통 불의 꽃밭을 이루게 되며,



달이 훨씬 더 떠오른 뒤에야 산에서 내려오게 됩니다.



이 망월의 습관은 최근까지도 성행하였는데 육이오사변(六二五事變) 후



공비들이 산상에서 신호하여 서로 연락하는 일이 있었으므로



관령으로 3, 4년동안 산상에서 불을 드는 것을 금했다가



공비들이 모두 토벌된 뒤부터 망월놀이가 부활하였으며



최근에는 농촌에 청소년들이 없이 고령화 사회가 되고



산에서 땔감 나무를 하지 않아 수목이 우거져 산에 오르기 어려워진



이후부터 자연 망월놀이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아쉽고 아스라한 세시풍습이 바로 망월놀이입니다.



- 上元(상원) : 음력 정월 대보름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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