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수, 김오, 김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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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5-01-29 08:38 조회1,504회 댓글2건본문
1) 김사수(金師秀)
■ 연기군지
○김사수(金師秀) : 김귀년(金龜年)의 아들이며 음관(蔭官)으로 현감(縣監)을 지냈다. 선정비(善政碑)가 있는데 야당(野塘) 홍성민(洪聖民)이 찬(撰)하고 석봉(石峯) 한호(韓濩)가 묘비의 글씨를 썼다.
■ 연기지역의 충렬공 후예들 (1997, 안동김씨 연기군 종친회)
益精의 현손대에 이르러 인물들이 배출되어 이 가계를 번창하게 하는데, 첫째인 師秀(사수)는 1490년(성종21)에 태어나 사헌부 감찰과 회덕현감을 역임하였고, 압실에 있는 묘소의 묘비를 石峰 韓濩(한호)가 써서 유명하다.
* 회덕현감 師秀의 묘갈문
師秀의 행적을 간략히 적고, 특히 회덕현감으로 재임중에 백성들이 선정을 노래하였다는 것, 향리에 돌아와 지극한 효성을 지녔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 묘갈문은 명필로 알려진 한석봉의 글씨이다.
* 회덕현감 金師秀의 묘비
이 묘비문을 한석봉이 써서 유명하다.
2) 김오(金 金吳)
■ 연기군지
○김오(金 ) : 김사수(金師秀)의 아들이며 무과에 급제하여 통어사(統禦使)를 지냈다.
■ 연기지역의 충렬공 후예들 (1997, 안동김씨 연기군 종친회)
師秀의 장남인 金吳(오)는 1520년(중종15)에 태어나 명종때 무과에 급제하여 12주의 목사와 4도 병마절도사를 역임하였다. 그의 묘비는 柳拱辰(류공신)이 찬하고 서하였다. 이 가계는 전의면 신방리(방이골)에 세거하고 있다.
■ 안동김씨 홈
7)金 金吳 : 전서공 후손. 1520년(중종15)에 태어나 명종때 무과에 급제. 12주의 목사와 4도 병마절도사를 역임. 현감 金師秀의 자. 선계는 김휴-김익정-김형-김부녕-김귀년-김사수(현감)-김오(병사)-金九鼎
<1580년 경진보>
4)1577년 (정축년. 선조 10년), 金齊賢(제. 김곽의 자)이 옥산(현 전남 해남)으로 전보됨에 따라 그 부임 초에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여러 宗長들에게 세보 편집과 발간 문제를 품의함.
또한 강화부 백령공(?. 휘 오)과도 상의하여 본 족보와 대조해 보고 당시에 편찬된 파평윤씨와 전성이씨 등의 姓譜를 모방하여 문제가 되었던 외파에 대한 기록 문제에 있어 외손의 지파는 삭제하고 同姓의 자녀만 기록하기로 결정함.
6)그 후(1580년. 경진년. 선조 13) 감사공(휘 億齡. 익)과 참찬공(휘 瓚. 익)이 여러 종친들과 함께 이 문제를 협의하였는데, 당시 강화부사로 있던 병사공(휘 金吳 . 전)가 충청도 절도사가 된 뒤 천안(金 昉)으로부터 이 사업을 인수하여 다시 교정하고 자신의 비용으로 판각하여 출판을 마침.
3) 김구정(金九鼎)
■ 충렬공 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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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책이 있으니 김감사 덕룡(金監司 德龍) 이 기도(箕都=평양)에서 인출(印出)해서 반포(頒布)한 것이다. 그 글을 본즉 이것과 틀린 바 없으니 이제 아울러 쓰게 되면 중첩(重疊)이 됨으로 단지 그 발미(跋尾)만을 아래에 부기(附記)하는 바이다
후손 구정(後孫 九鼎)은 삼가 기록함(謹識)
댓글목록
솔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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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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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충렬공 행장 뒤에 기록된 선조님이 전서공파 후손 김구정 선조님.... 이제야 알았네요...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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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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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전서공파의 자료가 엄청나게 쌓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