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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흥군부인 (문온공 어머니)묘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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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작성일01-12-05 18:39 조회1,9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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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약재 선조의 어머니는 급암 민사평의 무남독녀이신 여흥군부인이십니다.



자료에는 김묘(문온공;척약재;의 아버님)처 민씨 묘지명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흥군부인 민씨 할머니의 묘소는 여주 남 십리 에 모셔저 있다고 되어 있으나



현재 실전하고 묘소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주 발산 근처에 수차 답사한 결과 비슷한 묘소를 찾았으나 조선 중기에 썼다는



다른 집안 묘이었습니다. 왜 비슷하다라고 추정하는냐 하면



고려시대으 묘는 거의 장방형의 사각 무덤인데 이 묘가 사각 묘이어서



고려시대 묘임에 틀림 없을 터이데 묘주인은 조선 중기의 인물이라니



의심이 들었습니다.



묘지는 고려시대는 주로 장망형이고 조선초기에는 육각형의 묘소가 잠깐



등장하다가(익원공묘소) 원형으로 바뀌었습니다.



현재 여흥군부인 할머님 묘소도 찾지 못하고 묘지도 실물이 전해오지 않습니다.



문온공파에서는 포천 금수정 경내에 상락군 휘 묘 할아버님과 여흥군부인의 설단을



모시고 향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여흥군부인 묘지명을 번역하여 올리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여흥군부인 묘지명은 동문선에 기록 되어 있고, 목은집에도 기록 되어있으며



문온공파 세보 권 1 에도 기록 되어 있어서 원문은 생략하니 원문이 필요하신분은



위 자료를 찾아보시거나 본인에게 연락하시면 제공 하겠습니다.







.驪興郡夫人 閔氏 墓誌銘





나의 벗 김구용씨가 금년 윤 5월 갑진 이래 그의 어머니 여흥군부인



(추봉 삼한국부인)민씨를 조모 김씨(영창군 시 양간공 휘 承澤 배위;



추봉 낭랑국부인 경주김씨)의 묘소에서 바로 그 서쪽 십수보 되는 곳에



장사를 지냈는데 이미 그의 장자인 참군사 明善을 그 곳에 보내고 나에게



묘지명을 청하여 왔다.



나는 김구용씨와 지내는 도의상 사양하지 않고 그 집안의 가계상황을 살펴보았더니



수성병의협찬공신 중대광 도첨의찬성사 진현관대제학 지춘추관사 시 문온공



及菴선생이신 휘 思平은 부인의 아버지요, 광정대부 부 밀직사사 시 문순공 휘 적은 조



부이시며, 도첨의찬성사 시 충순공 휘 宗儒은 그의 증조부가 되시며, 도첨의정승



시 정렬공 호 竹軒 언양김공 倫은 외조부가 되시니 친정과 외가가 모두 혁연하여



일국이 두루 숭무하는 바이다. 부인께서 그러한 명문가에 태어나시어 견문을 익혀



배우시고 모든 일을 한결같이 하시니 이 모두가 그의 어머님의 법도를 본받았음인지라



부모를 섬김에 있어서는 효를 다하였고, 조석문안은 병환 중일지라도 그치는 일이 없어



종족이 모두 칭송하였었다. 서기 1361년 겨울에 홍건적의 침입을 피하여 개성에서 남쪽



여흥 땅에 내려갈 때 부인이 그의 친정어머님을 모시고 가셨는데 그의 어머님의 평안함이



평소 급암댁에 계시는 것과 같았다. 그 후 부인께서는 여흥의 고향에서 10여년을



살으셨는데 더욱 부지런히 섬기셨으나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부인의 아들과 사위들이



서울(개경)로 돌아오시도록 간청하였으나 부인은 눈물을 흘리시며 말씀하시기를



"나의 친정 어머님을 이 곳 여흥 땅에 묻어두고 내가 가버린다면 묘소의 첨소를



궐하게 되니 내 어찌 견디리랴. 내 어찌 견디리랴." 하시었다. 그 후 5월 계사일에



부인이 병환으로 개성에서 돌아가시니 향년 56이었다. 구용씨가 또한 말하기를



"우리 아버님은 청덕하시어 지식이 높은 분을 두텁게 존경하시고 부모에겐 오래도록



봉양하시기를 즐기셨는데 이제 어머님 마저 돌아가셨으니 어찌 하리오." 하였다.



이에 색이 말하기를 "어질도다. 착하신 어머님이시었도다." 문온공 급암 선생께서는



비록 아들이 없었으나 이러한 따님을 낳으심으로써 구용씨 댁과 서로 역사의 전승을



이루었으니 가히 어지시다고 말하지 않을수 있으리오. 아들 삼형제를 두셨는데



장자 九容은 전 중정대부 삼사좌윤 진현관 직제학 지제교 겸 춘추관편수관이요



차남은 齊顔인바 중의대부 병부랑중 겸 첨서하남강북등처행 추밀원사 봉선대부



전교부령 지제교 겸 춘추관 편수관 (사천김씨 시조 김부의 아버지)이며,



다음 삼남은 九德(안정공)은 전 좌우위보승산원이다.



딸이 아홉이니 전 밀직사부사 金士安, 전 개성윤 李장로, 전 종부령 崔有慶,



전 낭장 許灝, 전 부령 許선, 박사 李存斯, 문하주서 金贍에게 각각 출가하고,



다음은 미혼이다.(8녀 사윤 金千壽 9녀 부정 崔自河)



명(묘지의 끝에 쓰는 그 사람의 공덕을 찬양하는 글)에 이르되



만물은 필연히 그 근본으로 돌아가라니



죽음이란 끝이 아니도다



여흥 민씨는 이런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 돌아가셨으니



저 강이 구비쳐 흐르는 것처럼 어찌 끝이 있단 말이요



좋은 것 모두 갖추었으니



이는 영가(안동의 옛 이름)김씨의 가풍이 되리라



문충보절찬화공신 숭록대부 정당문학 집현전 태학사 지 춘추관사

겸 성균관 대사성 한산 牧隱 李穡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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