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감사합니다..근데...(영가부원군)
페이지 정보
김주회 작성일01-11-19 17:11 조회1,893회 댓글0건본문
영가부원군 김수동
상식 종친님께서 소개하신 방경 세계 9세 수동이라는 분이 조선조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2등공신에 책봉되시고 영가부원군에 봉군되시어 {영가부원군파}라 한 듯 합니다.
3등공신에 책봉되신 김수경 선조는 김수동 선조의 동생되시는 분이시고, 4등공신에 추록되신 김무 선조는 김수동 선조의 숙부되시는 분입니다.
▣ 조선조 중종은 중종반정에 의해서 등극을 하게 되는데, 이때 참여하여 공신에 책봉되신 우리 선조님들은 아래와 같이 네 분이 있습니다.
○ 靖國공신 (정국공신)
1506년(중종원년) 박원종, 성희안 등이 연산군을 폐출하고, 진성대군을 추대하여 중종반정을 이룬 공으로 책록됨
★2등공신 (익원공파)金壽童(김수동)
★3등공신 (익원공파)金壽卿(김수경)
★4등에 추록 (익원공파)金,石+武(김무)
-김수동, 김수경, 김무은 1519년(중종14) 조광조의 건의로 삭훈되었다가 1519년 12월 전원 복작
★원종(등외)공신 (?분파)金百鈞(김백균)
▣ 공신 및 봉군에 대한 내용은 본 게시판에 제가 설명하여 놓은 보학용어-05 (공신), 보학용어-12 (봉작과 봉군)을 보시면 자세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세계에는
방경-2세가 순-3세 영후-4세 천- 5세 사형- 6세 승- 7세 종숙- 8세 적- 9세 수동- 10세 혼- 11세 경선
-------------17세 이복- 18세 이관 까지 세계가 있습니다.
▣ 참고로 디지털한국학 홈페이지 (http://www.koreandb.net/)를 보시면
방경
2세 순
3세 영후
5세 사형
9세 수동 선조의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영가부원군 김수동 선조의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김수동(金壽童)
1457(세조 3)∼1512(중종 7).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미수(眉#수04), 호는 만보당(晩保堂).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 사형(士衡)의 후손이며, 첨지중추부사 적(#적21)의 아들이다.
1474년(성종 5)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477년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주서·홍문관정자·의정부사인을 거쳐 사헌부장령에 올랐고, 연산군이 즉위하자 홍문관으로 다시 자리를 옮겨 전한(典翰)·직제학·부제학을 역임하였다.
1497년(연산군 3)에는 승정원동부승지를 제수받고, 이듬해 좌승지를 거쳐, 그해 여름에 외직으로 전라도관찰사를 거쳐 예조참판이 되었다. 다시 이듬해에 성절사로 명나라에 가서 《성학심법 聖學心法》 4권을 구하여 왔다.
그뒤 경상도관찰사·이조참판·경기관찰사·형조판서 겸 지춘추관사·홍문관제학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쳐, 1504년 47세 때에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이해 갑자사화 때 그는 폐비 윤씨의 회릉추숭(懷陵追崇)을 주장, 시행함으로써 연산군의 신임을 받아 정헌대부(正憲大夫)에 가자(加資)되었다.
1506년 어머니상을 당하여 사직하고 물러났으나, 왕명으로 단상(短喪)으로 마치고 3개월 만에 우의정에 부임하였다.
이때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좌의정에 오르고 정국공신 2등에 책록되었으며, 영가부원군(永嘉府院君)에 봉해졌다. 연산군에게 충실하였다고 사림으로부터 비난을 받았으나, 1510년 영의정에 올라, 그때 일어난 왜변의 진압을 총지휘하였다. 연산군 때에는 많은 문신들의 화를 면하게 하였다.
품성이 단정하였으며, 청탁을 모두 거절하고 검약한 생활을 즐겼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