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온공파 직제학공계 세향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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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작성일14-10-26 20:03 조회3,678회 댓글2건본문
문온공파 직제학공계 세향 이모저모
2014년 10월 26일 문온공파 직제학공계 세향이 가양리 선영에서 봉행되었습니다.
세향 후에는 유만 대부님 안내로 여러 종인들이 선조님 묘소를 답사하신다고 해서 저도 뒤따라가며 미처 몰랐던 이야기, 종중에 전해오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 직제학공계 세향
▲ 광우 전 문온공파 회장님과 영웅 이사님
▲ 우리 문중 며느님들과 광덕 아줌마(허리 구부린 분)
▲ 세향 후 원로분들께서 둘러앉아 정담을 나누시는 중입니다. 맨 왼쪽 광우 아저씨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조각가입니다.
▲ 계만 이사님과 일가분들
▲ 세향을 올린 뒤 유만 대부님 안내로 종인들이 인근 선조님 묘역을 둘러보는 중입니다. 철원도호부사 휘 확 할아버지 묘소인데요. 아버님과 어머님 상을 연거푸 당해 뒤늦게 과거에 급제하셨습니다. 묘소는 본래 추동리에 모셨는데, 지금 자리로 천봉하였습니다. 그 당시 회곽이 어른 키를 넘을 정도로 대단했다고 합니다. 파묘할 때 소형 굴삭기로 작업하다가 도저히 회곽을 깰 수 없어 대형 굴삭기로 바꿨다고 하는데요. 부장품은 전혀 없었고, 상의원정을 역임하신 까닭인지 옷가지가 대거 출토되었습니다. 천봉 당시 묘지석을 찾기 위해 묘역 일대를 샅샅이 뒤진 끝에 용미 부근에서 묘지석을 찾았다고 합니다. 묘지석은 별도 보관하고 있습니다.
▲ 철원부사공 묘역의 문관석과 망주석입니다. 보는 이를 압도할 정도로 대형 문관석입니다.
▲ 묘지명은 조카인 동주 이민구 선생이 지으셨는데요. 우리 홈페이지에 몇 차례 소개되었습니다. 묘갈명도 동주 선생이 짓고, 대대로 교분을 맺은 휴곡(休谷) 오시복(吳始復) 선생이 글씨를 쓰셨네요. 오시복 선생은 철원부사공의 손자인 교리공(휘 환)과 1662년(현종 3년) 증광시 동년입니다.
▲ 철원부사공 묘소 옆 성균진사공(휘 경복) 묘소입니다. 추동리에서 옮겨 모셨다고 합니다. 이곳 문관석 역시 철원부사공 묘소의 문관석에 버금가는 크기인데요. 작은 문관석이 있어 이채롭습니다. 번암 채제공 선생의 스승인 약산(藥山) 오광운(吳光運) 선생이 묘지명을 지으셨는데, 이 묘지명에 오광운 선생 가문과 대대로 맺은 세교가 남달랐다고 적혀 있습니다. 파묘 당시 진사공 좌우에 초배 기계 유씨 할머니와 계배 죽산 안씨 할머니가 모셔져 있었답니다.
▲ 성균진사공 묘소
▲ 유만 대부님께서 진사공 묘소 천봉 당시 이야기를 들려주는 중입니다.
▲ 광열 아저씨가 족보를 복사해 와서 내용을 살펴보는 중입니다. 온 신경이 집중된 거 보이시죠?
▲ 성균진사공 묘소 옆 부사공(휘 명리) 묘소입니다. 처음에 경기도 광주 목리에 모셨다가 이곳으로 천봉하였습니다. 이 자리는 본래 문온공(휘 구용) 설단지였습니다.
▲ 부사공(휘 명리)과 계림군부인 경주 이씨 할머니 묘표. 천봉할 때 전래 풍습에 따라 묘소 인근에 묻었다가 2009년 6월 6일 복원하였습니다. 묘표는 고졸한 양식인데, 조선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희귀하다고 합니다.
● 부사공 옛 묘표 복원(클릭하세요)
▲ 할아버지 묘소 찾아가는, 고즈넉하고 아늑한 산길
▲ 부사공(휘 명리) 묘소를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난 길로 들어서면 상하분으로 모셔진 할아버지 할머니 묘소가 있습니다. 경상좌병사를 역임하신 휘 윤종 할아버지와 배위 풍산 김씨 할머니 묘소입니다. 묘표에 풍산 김씨로 적혀 있으나, 본관은 후안동으로 태사 김선평 공의 후손이십니다. 친정 아버지는 휘 영수, 조부는 휘 계권, 증조부는 휘 삼근이십니다. 공교롭게도 두 집안 모두 관향이 안동이나 시조가 다르므로 예나 지금이나 통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배위 할머니를 안동 김씨로 적으면 내력을 잘 모르는 사람은 같은 집안에서 혼인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으므로 할머니께서 태어나 자라신 지명을 따서 풍산 김씨라 한 것입니다. 좌병사공의 아버님은 우리 문중에 널리 알려진 청도군수공(휘 예생)이십니다. 청도군수공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가 말씀드릴게요.
▲ 이 지맥 맨 끝에 모신 학생공(휘 가신) 할아버지 묘소입니다. 본래 동쪽으로 건너편 산에 모셨는데, 이곳으로 옮겨 모셨다고 합니다. 학생공 행적은 자세히 모르고 있었는데요. 덕분에 공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배다른 형제이기는 하나 성호 이익 선생의 셋째 형님이 초서로 유명한 옥동 이서 선생입니다. 이분이 종택 사랑채인 <백운루(白雲樓)> 현판을 초서로 쓰신 분입니다. 성호 선생의 아버지는 매산 이하진 선생인데요. 초배 인천 이씨 사이에서 이해(李瀣), 이잠(李潛), 이서(李漵)와 계배 안동 권씨 사이에서 이침(李沉), 이익(李瀷)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이잠 선생의 배위가 철원부사공 묘갈 글씨를 쓰신 오시복 선생의 따님입니다. 뭔가 열쇠를 찾은 것 같긴 한데요. 머릿속이 복잡해지네요. 각설하고 옥동 이서 선생이 한때 포천에 머무셨는데, 선생의 문집 <홍도유고>에 <答金生可臣問目>이라는 글이 실려 있습니다. 또한 <홍도유고>에 성균진사공(휘 경복) 만사가 실려 있기도 합니다. 이런 정황을 고려하면 얽히고설킨 집안 간의 세교로 인해 학생공(휘 가신)께서 이서 선생을 사사하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학생공(휘 가신) 묘소의 상석입니다. 묘비나 묘갈이 없이 상석에 휘자와 배위 창녕 성씨에 관한 내용을 간략하게 적었습니다.
▲ 어느 성인이 하신 말씀인지 모르겠는데요. 손가락 끝을 봐야 하는지,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방향에 있는 그 어떤 것을 봐야 하는지... 요즘 들어 무척 헷갈리고 있습니다.
▲ 청도군수공(휘 예생)과 배위 인천 이씨 할머니 묘역입니다. 청도군수공은 좌병사공(휘 윤종)의 아버님으로 예안 현감으로 재임시 안동의 충렬공 묘소에 비갈을 세우신 분입니다. 청도군수공의 둘째 아드님 진사공(휘 윤선)은 경진보 발문에 등장하는 바로 그분이십니다.
▲ 위쪽이 청도군수공(휘 예생) 묘소, 아래쪽이 인천 이씨 할머니 묘소입니다.
▲ 내년도 계획을 상의하는 중입니다.
▲ 다시 아늑한 산길로 걷고 또 걸어서...
▲ 처음 출발했던 직제학공(휘 맹헌) 묘역에 도착했습니다. 전경이 푸근하죠!!
댓글목록
김광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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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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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우선 참석해 주셔서 감사 드림니다.
자세한 설명 사진등 정말로 다시한번 감사드림니다.
앞으로 많은 가르침을 주시기 바람니다.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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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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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아저씨, 별말씀을요. 큰댁 여러분들께서 반갑게 맞아 주셔서 제가 감사드립니다.
음성공문중에서 펴낸 <가보> 번역문에
양성 이씨 할머니 묘는 남쪽에 있고 직제학공 묘는 뒤에 있다고 적혀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