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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청요직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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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작성일13-11-05 16:53 조회5,2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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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淸要職이란?
작성자 : 김영환
 
조회수 : 613 2001-07-04 23:13:00
 
 

조선시대의 품계로는 정일품.종일품 에서 정구품.종구품까지 18단계로 나뉘어 있으며

정삼품 通政大夫이상을 堂上官이라 칭하고 그이하를 당하관이라 칭한다.

조선시대 관직체계는 정삼품 통정대부(지금의 중앙관서 국장급에 해당)이상인 당상관

만이 관리를 배치하는 人事權, 관리를 평가하는 褒貶權, 군대를 지휘하는 軍事權을 가

질 수 있었다. (정삼품중에서도 通訓大夫, 禦侮將軍 은 당하관이다.)

이 당상관에 진급하려면 과거에 급제하는 것이 선결조건이지만,(과거를 거치지 않고

당상관에 오르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아도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조선시대의

관직체계는 과거 급제자들 가운데서도 수재들만을 위하여 淸要職이라는 특별승진

코스를 두고 있었다. 조선시대에 4품 이하의 하위직은 450일만에 한 품계씩 오르도록

되어 있고 4품이상의 고위직은 900일을 채워야 한 품계를 오를 수가 있었다. 이럴

경우 종9품에서 정3품까지 13품계를 오르자면 산술적으로도 20여년 가까운 세월이

소요되지만 실제로는 큰 실수 없이 30년은 봉직해야 겨우 당상관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러므로 과거 급제자라 할지라도 3분의 2이상이 당상관에 오르지 못하고 관직생활을

마감한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런데 청요직이란 특별승진 코스에 들어서

면 근무일수와 상관없이 자리가 비면 우선적으로 승진하였기 때문에 남들보다 두 배

내지 세 배 빠른 속도로 승진할 수 있었다. 더구나 국가의 중요 정책 걸정에 깊숙이

관여하는 宰相(의정부 삼정승,2찬성, 6판서, 한성판윤등12자리가 재상에 해당)이

되려면 청요직을 거치지 않고는 거의 불가능하었다.

청요직에 들어서려면 과거에 급제한 뒤 우선 승문원 분관부터 받아야 했다.

그런 다음 사관 또는 翰林이라 불리우는 예문관의 검열(정9품),대교(정8품),봉교

(정7품)를 필수 코스로 거쳐야 하는데 사관이 되면 2년이나 3년만에, 남들은 10년이

걸리는 參上官(6품관이상)으로 진급할 수 있었다. 참상관(6품이상)과 참하관의 차이

는 무척이나 커서 참하관에서 참상관으로 승진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으니 참

하관에서 참상관으로 승진하는 것을 陞六 또는 出六이라 하였다. 참상관 가운데는 임

금의 잘못을 간하고 관리들의 비행을 탄핵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3사(3사=사헌부, 사

간원, 홍문관)의 6품관과 5품관이 청요직에 해당한다. 특히 玉堂이라 불리우는 홍문관

은 임금과 함께 학문을 토론하는 經筵(임금과 함께 학문을 강론하는 것은 경연, 세자

가 사부들과 공부하는 것은 서연이라 불러 구분하였다.)을 담당하였기 때문에 임금

과 접촉할 기회가 가장 많은 청요직 중의 청요직이다. 그런만큼 홍문관에 들어갈 실

력과 자격을 갖춘 젊은 관리들을 미리 엄격하게 심사하여 都堂錄이라는 명단을 만들

어 두었다가 홍문관에 자리가 비면 그 가운데에서 선발하였는데 보통 사헌부나 사간원

에 근무하다가 홍문관원이 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다. 지근거리에서 임금을

보필하며 임금과 학문이나 정치에 대하여 토론할 수 있는 홍문관에 재직하다가

자리가 나는 대로 이조나 병조의 좌랑(정6품)이나 정랑(정5품)으로 가는 것이

청요직의 마지막 단계였다. 문관의 인사권을 가진 이조나, 무관의 인사권을 가진

병조의 실무 책임자인 이조.병조의 좌랑과 정랑은 당하관(정3품통훈대부이하)중에서

가장 막강한 권한을 가진 요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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