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흐르는 강, 상락대에 머물다 - 제1회 안사연 여름캠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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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작성일13-08-15 18:09 조회4,723회 댓글8건본문
하늘로 흐르는 강, 상락대에 머물다
― 安東金氏歷史硏究會(安史硏) 제1회 여름캠프
◆ 일시 : 2013년 8월 10~11일(1박 2일)
◆ 장소 : 상락대와 회곡동 상고산 일대
◆ 개요 : 사주(沙洲) 김양좌(金良佐) 선생의 <회곡종회기(檜谷宗會記)> 기록에 따라 상락대 유적조사 및 충렬공 고산정(孤山亭) 위치 확인작업
◆ 행사 :
◇ 주관 : 안동김씨역사연구회
◇ 후원 : 안동김씨대종회, 충렬공김방경기념사업회
◇ 협찬 : 도평의공파종회, 안동종친회, 사주 선생 후손가
◆ 참가 : 경칭 생략(無順, ★ 표시는 부부 참여)
◇ 외빈 : 최성달(시인), 이영식(경상북도의회 의원), 상운 스님(안동시 용수사 주지), 김정모(대구일보 논설실장)
◇ 사주(沙洲) 선생 후손 : 태성(도평의공파 사주 선생 종손), 위열(在항)
◇ 서울ㆍ수도권 : 봉회(대종회장), 중묵(판서공종회장★), 영국(문온공파종회장), 광도(문온공파 이사), 영환(안사연 회장★), 태영(동 부회장★), 재영, 재구, 윤만★, 우회, 은회, 발용★, 태우, 태철, 춘식, 윤식, 용주★
◇ 안동 일원 : 동수(안동종친회장), 성식(동 전 회장), 상묵(부회장), 은회(부회장), 용준(사무국장), 희철(이사), 봉진, 대동(익원공파 경북북부지역 부사공종친회장), 광득(동 전 회장), 태휘(경북북부지역화수회 총무), 봉회(상락재)
◇ 의성 사촌 : 희윤(도평의공파 종손), 창회(동 전 회장), 봉수(會항), 장수(會항), 억(會항), 태홍, 진중, 정중
◇ 대구종친회 : 재권(대구종친회장) 및 안김산악회(순회 산악회장 외 37명)
들어가는 말
대종회장님을 비롯한 문중 어르신들과 종친 여러분의 크나큰 성원과 염려 덕분에 안동김씨역사연구회가 주관한 제1회 2013년 여름캠프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특히 이상 고온으로 36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를 무릅쓰고 이번 행사에 귀한 걸음을 해 주신 봉회 대종회장님 등 원로 어르신들과 안동종친회 임원 및 일가분들, 의성 사촌 도평의공파 일가분들, 대구종친회 안김산악회 및 전국의 일가분들께 감사 말씀 올립니다. 또한 무더위 속에서 물심 양면으로 궂은일을 도맡아 애써 주신 사주(沙洲) 선생 종손 태성 씨와 위열 씨 두 분께 다시 한 번 감사 말씀 드립니다.
이하 보고 내용은 추후 안사연 제2집 편집 시 반영하기 위한 것으로 경칭을 사용하지 않사오니 혜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산과 물이 상락대 절경을 빚다
백두(白頭)가 수천 리를 달려오고, 함백산(咸白山) 샘물이 수백 리를 흘러서 안동김문의 성지 회곡(檜谷) 앞에서 한몸으로 어우러진 곳.
백두는 곳곳에 울끈불끈 용맥을 솟구치며 남으로 내달리다 안동으로 들어와 학가산을 일으켜 세우고, 학가산은 다시 용맥(龍脈) 한 줄기를 나누어 풍산읍 회곡동 맞은편에 건지산을 불끈 솟구친 다음 물가로 뻗어나가 수백 미터에 걸친 절벽을 빚어내 잠시 숨을 고른다. 함백산 샘물은 백두대간 곳곳의 물을 모아 용틀임을 틀다가 건지산 아래 상락대 절벽에 이르러 거대한 몸을 뉘었다가 장장 400km를 굽이돌며 남쪽으로 흘러가게 된다. 백두 줄기와 낙동 물길이 만나 안동 최고 절경을 이룬 곳, 이곳이 바로 충렬공께서 심신을 수련하신 상락대(上洛臺)요, 고산정(孤山亭)을 품에 안은 천 년 유허 회곡이다.
상락대 아래 모래밭에서 상락대를 올려다보면 산과 물과 하늘, 말 그대로 자연이 빚은 하늘길이 눈에 그득하다. 마암과 상락대에 올라서면 물 속에 하늘과 산과 물이 또 하나 나타나니 그야말로 ‘하늘로 흐르는 강’이다.
1685년(숙종 11년) 음력 11월 사주(沙洲) 김양좌(金良佐) 선조께서는 내외손 예순여섯 분과 함께 지례촌 능동 충렬공 묘소를 성묘하고 제를 올린 뒤에 이듬해인 1686년 3월 28일 상락대에서 종회(宗會)를 열었다. 이때 사주 선생은 상락대를 비롯해 고산정과 회곡의 충렬공 유허에 관한 귀중한 기록을 남겼다. 당시 사주 선생께서는 이곳의 지세를 이렇게 표현하였다.
“능선에 올라서서 바라보면 강의 남쪽 물가에 하늘까지 닿는 절벽이 높이 솟아 있고, 절벽의 중간에 상락대가 있고 상락대 위에는 큰 산이 가로로 뻗어 있고 많은 봉우리들이 다투어 솟아 있는데 간(干 : 방패) 같은 것, 순(楯 : 방패) 같은 것, 검(劍) 같은 것, 창 같은 것, 투구 같은 것, 갑옷 같은 것, 깃발 같은 것, 활과 화살 같은 것들이 있어 백만의 기병을 줄지어 세워 장막 밖을 빙 둘러 호위하고 있는 것 같으니, 세상에서 말하는 명승지라는 것이 이곳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시경에 이르기를, ‘사악(四嶽)이 신령을 내려 보후(甫侯)와 신백(申伯)을 탄생시켰다.’라고 하였고, 또 ‘넘실넘실한 강수(江水)와 한수(漢水)는 남쪽 나라의 젖줄이로다.’라고 하였으니, 인걸은 지령(地靈)이라는 말을 결코 속일 수 없다.”
▲ 상락대 전경
종회에 참석한 충렬공의 내외손 예순여섯 분은 달리 표현하면 안동의 내로라하는 사대부가 거의 대부분 상락대에 집결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성김씨를 비롯해 청주정씨, 광산김씨 등 오늘날 안동의 명문대가가 충렬공의 피를 한 줄기씩 이어받았으니 종회를 열던 날은 안동부(安東府) 전체가 텅텅 비었을 것 같은 상상을 해 본다.
회곡종회기를 따라 하늘길로 향하다
사주 선생께서 기기묘묘하다고 표현한 상락대 하늘길과 물길을 걸으며 충렬공의 숨결과 자취를 되새기기 위해 <회곡종회기(檜谷宗會記)> 기록을 따라 2013년 8월 10일 안동으로 향한다. 이번 행사는 안동김씨사이버학술연구회의 발전적 해체를 거쳐 2013년 5월 3일 안동김씨역사연구회(安東金氏歷史硏究會 : 安史硏)로 거듭 난 이후 첫 행사이자, 충렬공과 사주 선생께서 남기신 유적 탐사와 함께 학술토론회가 진행되는만큼 여느 때와 다른 의미를 담고 있는 행사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안사연에서는 <회곡종회기>를 면밀히 검토한 다음 7월 6일 영환 회장 등 4명이 사전조사차 상락대와 상고산 일대를 먼저 답사하여 행사 준비를 점검하였다. 이에 앞서 안사연에서는 태영 부회장을 중심으로 학술대회용 책자 『회곡동ㆍ고산정ㆍ상락대』(안사연 제1집, 160面)에 수록할 자료들을 수집하여 편집작업에 착수하였다. 이어 7월 11일 서울 종로에서 회원 10명(영환, 재영, 재구, 윤만, 진회, 우회, 발용, 태우, 태영, 윤식)이 모여 임시회의를 갖고 행사 일정과 준비사항을 최종 점검하였다.
『사주유고(沙洲遺稿)』에 수록된 <회곡종회기>에 따르면, 예순여섯 분의 충렬공 내외손들이 상락대에서 종회를 개최할 당시 상락대 절벽 중간쯤에 3단으로 된 너럭바위가 있어 종회 참여자들이 그 위에 앉아 주연을 베풀고 절벽 사이 부추를 뜯어 안주로 삼았으며, 이분들의 이름을 바위에 새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울러 고산정과 회곡 유허지에 관한 귀중한 기록을 남겼다.(자료집 회곡종회기 참조 <클릭하시면 별첨자료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행사는 이 유적들을 조사하여 그 동안 숙제로 남아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지만, 이번 답사 한 번으로 해결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번 행사가 난항에 부닥치더라도 훗날 끊임없는 탐구로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계기라도 삼기 바라는 심정에서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07:00시 정각, 약속장소인 서울 잠실운동장 앞에 서울ㆍ경기지역 참가자들이 속속 도착해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기상 관측 이래 최장 장마라서인지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다행히 안동은 쾌청하다고 하니 일단은 안심이다. 하지만 안동지역 기온이 36도로 폭염주의보가 내린 상태라 원로 어르신들께서 한낮 행사를 어이 견디실까 걱정스러웠다. 오락가락하는 중부지방 날씨는 중부내륙고속도로로 들어서고도 한참 지나서야 쾌청한 날씨로 바뀌었다. 대부분 아침을 거르고 나와 중간에 휴게소에서 허기를 달랠 예정이었으나 행사 준비를 위해 곧바로 안동으로 향했다.
▲ 서울 잠실야구장 앞에 모인 서울·경기지역 참가자들
11:50 풍산읍 풍산장터에 도착해 예약해 둔 식당 ‘설화맥적’에서 점심을 들고, 회곡으로 향한다. 마애리 인근을 지날 무렵 안동의 예전 모습을 잘 알고 계신 봉회 대종회장께서 6ㆍ25 직전까지만 해도 큰 배가 안동에 들어올 정도로 수량이 풍부했다고 들려주신다. 선사시대 유적과 상락대처럼 깎아지른 절벽이 절경을 이룬 마애리를 지나 12:45분경 상락대 옆 낙동강생태학습관에 도착해 12:50분 목적지 단호샌드파크공연장에 도착했다. 바로 옆이 권예 선생이 지은 낙강정이다.(자료집 판서연기 참조 <클릭하시면 별첨자료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영가지나 구와집의 판서연기에 기록되어 있듯이 이 지역은 본래 충렬공의 채마밭으로 우리 후손들에게는 뜻깊은 곳이기도 하다.
안사연 학술대회, 새 지평을 열다
행사 시작이 14:00시 정각이므로 서둘러 현수막을 걸고 행사 준비를 시작하였다. 사주 선생 종손 태성 씨와 위열 씨가 트럭에 대형 천막과 각종 행사 준비물을 가득 싣고 먼저 도착해 우리 일행을 반가이 맞이한다. 찌는 듯한 폭염으로 땀이 등줄기에서 줄줄 흐르는데, 13:20분경 느닷없이 서쪽하늘에 먹장구름이 몰려들더니 강풍이 몰아치면서 온 천지가 어두컴컴한 암흑 속에 묻혔다. 바람이 어찌나 센지 돌개바람이 몰아치면서 현수막을 고정시킨 끝이 순식간에 끊어졌다. 바람에 몸이 들썩일 정도였으니, 가느다란 끈이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20여 분 동안 강풍이 몰아치더니 소나기가 쏟아진다. 빗줄기가 옆으로 휘날리며 몸에 와 부딪는다. 바람이 거의 180도 수평으로 부는 것 같았다. 이대로 빗줄기가 계속 날리면 행사에 차질을 빚을 게 뻔했다. 서둘러 낙동강생태학습관 회의실을 빌려 학술대회 장소를 변경했다.
▲ 단호샌드파크 행사장에 걸린 현수막. 갑작스런 돌개바람과 소나기로 인해 낙동강생태학습관으로 장소를 옮겼다.
▲ 사주 선생 후손 위열(在항) 종친과 안사연 우회 종친
▲ 행사 준비를 지켜보는 문중 원로. 왼쪽부터 영국 문온공파종회장, 광도 문온공파종회 이사, 봉회 대종회장
▲ 갑작스런 돌풍과 소나기로 행사 도구를 철수한 직후 비를 피하는 안사연 회원들
낙동강생태학습관에는 어느새 안동과 사촌에서 찾아온 문중 어르신들과 종인들로 북적거렸다.
14:10분 영환 회장의 인사말과 태영 부회장의 경과보고를 시작으로 학술대회가 시작되었다. 이 자리에는 최근에 충렬공과 상락대에 대해 명문(名文)을 남긴 최성달 시인을 비롯해 이영식 의원, 상운 스님, 김정모 논설실장, 봉회 대종회장 등 내외빈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내 주었다. 내외빈 소개 자리에서 이영식 의원은 여타 성씨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청장년 모임으로 안사연이라는 특이한 조직이 종사에 참여한다는 점과 각 파종회의 적극적인 지지와 협조가 이루어지는 점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감회를 술회하였다. 봉회 대종회장은 문중 원로 소개 시에 그 동안 안사연이 종사에 큰 기여를 해 온 점을 높이 평가하면서 새롭게 조직된 안사연이 이처럼 학술대회 겸 답사 행사를 개최해 대종회장으로서 고맙다는 치하 말씀을 하였다. 아울러 귀한 발걸음을 해 주신 안동과 사촌 문중 어르신 및 사주 선생 종손 태성 씨 소개가 이어졌다. 한편, 이 자리에 참석한 대종회장 등 여러 문중 원로 및 어르신들께서 각각 금일봉을 안사연에 전달하였다. 분에 넘치는 문중 어르신들과 일가분들의 격려를 받아 안사연 일동은 송구하기 그지없으며, 금일봉은 금액을 밝히지 않으니 혜량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 금일봉(無順)
단체 : 대종회, 충렬공기념사업회, 안동시종친회, 문온공파종회, 도평의공파종회, 도평의공파 재경종친회, 문온공파 참의공계, 익원공파 수원참의공문중, 안김산악회(대구종친회)
개인 : 봉회(대종회장), 중묵(충렬공기념사업회장), 영국(문온공파종회장), 창회(도평의공파 전 회장), 광도(문온공파 종손), 희윤(도평의공파 종손), 태성(도평의공파 사주 선생 종손), 영윤(문온공파), 우회(도평의공파)
◇ 물품 및 기타(無順)
안동종친회(저녁 식사), 현묵(문온공파 광주문중, 행사용 수건), 태성(도평의공파, 천막 및 취사도구 일체), 태휘(익원공파, 주류)
▲ 낙동강생태학습관에 모인 문중 어르신과 참여 종친들
▲ 부부 동반으로 제1회 안사연 여름캠프에 참여하신 우리 문중 며느님들. 더운 날씨에 고생하셨습니다.
14:40분 태영 부회장의 행사개요 설명에 이어 영환 회장이 <고산정(孤山亭)에 대한 고찰(考察)>을 발표하였다. 영환 회장은 발표 논문을 통해 회곡은 안동김문의 천년 세거지로서 안동은 물론 전국을 통틀어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임을 강조하면서 충렬공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상락대와 고산정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또한 상락낭자 무덤에 관한 전설과 함께 영가지, 학봉 김성일 선생의 고산정 기록과 하회낙강상하일대도, 사주 선생의 회곡종회기 등의 기록을 예로 들며 충렬공의 정자인 고산정의 위치 비정에 대한 중요성을 설명하였다.(별첨 학술자료 참조 <클릭하시면 별첨자료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어 15:25분부터 두 번째 발표자로 윤만 안사연 감사가 자료집을 토대로 답사지역의 주요 유적지인 상락대, 낙강정, 배환 선생의 낙암정 등을 설명한 뒤 충렬공 연보를 중심으로 충렬공의 주요 행적과 일본정벌의 중요성, 충렬공 묘지석 등을 설명하였다.(별첨 자료집 및 충렬공김방경자료집성 참조 <클릭하시면 별첨자료를 보실 수 있습니다.>)
▲ 행사 취지를 설명하는 영환 안사연 회장
▲ 이영식 경상북도의회 의원
▲ 고산정(孤山亭) 위치를 주제로 한 영환 회장의 학술논문을 경청하는 참석자들
▲ <충렬공 김방경과 안동김문의 고향 풍산>을 발표하는 윤만 감사
15:35분경 학술대회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그 사이에 하늘이 환하게 걷히고 한낮의 강렬한 햇볕이 머리 위에서 내리쬐었다. 불과 두어 시간 전 몰아치던 강풍이 슬며시 간절했다. 매섭게 몰아치던 그 돌개바람은 폭염 속에서 강행군 중인 후손들이 안쓰러워 충렬공께서 한바탕 ‘거대한 자연의 에어컨’을 보내주신 것만 같았다.
안사연 학술대회는 종전의 단순한 캠프활동에서 벗어나 일정한 테마 또는 일정한 주제를 설정해 집중적인 탐사와 학술대회를 병행함으로써 선조 유적과 행적에 좀더 깊이 있게 다가감과 동시에 선조 현양사업의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안사연 회원의 중지를 모아 실행한 것이다.
하늘로 흐르는 상락대 강물을 걷다
15:40분경 윤만 감사의 안내로 상락대 시비(詩碑)를 둘러보며 상락대 표석 아래쪽 강물을 내려다본다. 경북북부지역 부사공종친회 광득 전 회장이 상락대 표석에서 남쪽으로 10걸음 떨어진 곳이 예전 상락낭자 무덤이라고 전해지는 자리라며 걸음을 잰다. 충렬공을 사모하던 상락낭자가 이곳에 묻혔는데 봉분에 풀이 자라지 않으면 안동김문 후손들이 번성한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몇 해 전 생태학습관이 들어서면서 상락낭자 무덤 위치를 찾기 어려워졌는데, 광득 전 회장의 증언으로 명확한 위치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광득 전 회장은 1990년대에 상락대 표석을 다시 세울 때 참여한 바 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상락낭자 무덤은 10여 평 넓이로 봉분이 꽤 컸다고 한다. 10여 년 전 이곳을 찾을 당시에는 봉분이 깎여 약간 봉긋한 상태였으며, 주위에는 풀이 전혀 자라지 않아 특이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이곳에서 충렬공의 위대한 발자취를 온몸으로 느낀 뒤 참석자 모두가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시비 뒤쪽의 오솔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마암(馬巖) 정상에서 드넓은 벌판을 조망하며 도도하게 흐르는 상락(上洛) 물결을 다시 느낀다. 얼마 전 버드나무 우거진 모래밭을 퍼냈지만, 어느새 그 자리에 모래가 쓸려와 다시 수북히 쌓였다. 조금 더 세월이 지나면 옛 모습 그대로 재현될 것 같았다. 쉼없이 흐르는 물줄기를 좀벌레 같은 미미한 인간이 어찌 거스르랴.
▲ 상락대 전경. 가운데 나무가 서 있는 지점이 상락낭자 무덤 자리이다.
▲ 상락대 시비(詩碑). 2012년 11월 22일 충렬공 탄신 800주년 경모제전 기념으로 안동김씨대종회에서 이 비를 세웠다.
▲ 상락대 표석과 해설판. 바로 앞이 천 길 낭떠러지이다.
▲ 상락대와 기념시비를 둘러보는 종친들
▲ 상락대에서 낙암정 쪽을 바라본 풍광. 유장하게 흐르는 낙동강물이 상락대 절벽을 만나 크게 휘어지면서 깊은 소를 이룬다.
16:20분 낙암정에 도착했다. 상락대 위쪽 물가에 자리한 낙암정은 도깨비가 터를 잡아 주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안동시 남후면 단호리에 자리한 낙암정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94호로 1451년(문종 1년)에 흥해배씨인 낙암(洛巖) 배환(裵桓) 선생이 처음 지었다고 한다. 그 뒤 1813년(순조 13년)에 중건한 것을 비롯해 여러 차례 수리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경관이 뛰어난 낙연(洛蓮) 언덕 위에 서향으로 자리한 이 정자는 정면 3칸×측면 2칸으로 막돌 기단 위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왼쪽 온돌방에는 온돌방 쪽에는 사각기둥을 세웠다.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누각 형식이다. 이러한 형태가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정자 양식이라고 한다. 대청마루 위쪽에 교묘하게 구성된 천장과 정자 아래쪽 기둥을 의도적으로 짧게 만든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 유교문화길 코스 중 일부인 상락대 인근 산책로. 상락대에서 마암(馬巖) 정상부로 올라가는 길이다.
▲ 흥해배씨 배환 선생의 정자, 낙암정
▲ 낙암정을 둘러보는 참가자들
여러 차례 이곳에 왔지만, 오늘은 여느 때보다 더운 날씨로 일행 모두가 땀범벅이 되었다. 그래도 일행 모두는 줄줄 흐르는 땀을 연신 닦아 가며 보고 또 본다. 낙암정에서 올라와 아스팔트 길로 다시 단호샌드파크로 내려가 16:50분경 낙강정에 도착했다.
▲ 낙강정. 안동권씨 권예 선생의 정자로 상락대 아래쪽 강변에 자리하고 있다.
▲ 낙강정 옆에 최근에 세워진 권예 선생 기적비
낙강정은 퇴락할 대로 퇴락하고, 그 옆에 ‘이조판서(吏曹判書) 마애(磨崖) 권선생(權先生) 낙강정기적비(洛江亭紀蹟碑)’가 웅장하게 서 있다. 후면 음기(陰記) 중에 “옛 上洛 金方慶公이 遺躅地였다”라고 적혀 있다. 이 글귀는 “옛날에 상락 김방경 공께서 남기신 유적지이다.”라는 뜻으로 영가지에 이곳이 충렬공의 채마밭이 있던 곳이라는 기록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글귀를 적은 듯하다. 이처럼 안동지역 명사들은 이곳 상락대 일원이 모두 충렬공의 유적지임을 오늘날까지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상락대를 포함하고 있는 ‘유교문화길’에는 변변한 ‘상락대 도로표지판’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 기울어 가는 고려를 온몸으로 지탱해 나라와 겨레를 위해 헌신한 충신이자 명현(名賢)인 충렬공을 수많은 관광객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못하는 안동시로서는 적잖은 행정착오라 아니 할 수 없다. 우리 후손들로서는 더더욱 반성하고, 강력하게 도로표지판을 비롯해 상락대 안내 입간판을 충렬공 명성에 걸맞게 설치할 것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17:10분경 행사를 종료하고 단호샌드파크장에서 자유시간을 갖는 사이 내일 탐사에 사용할 보트 운행 문제로 대여업체 사장이 방문하였다. 원래 계획에는 10여 명이 승선할 수 있는 선박을 대여해 사주 선생께서 남기신 기록을 확인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강물이 너무 얕아 선박을 접안할 수가 없어서 보트로 대체했는데, 그마저도 겨우 3명이 올라타면 강바닥에 닿아 운항할 수가 없었다. 영환 회장과 발용 씨가 보트에 승선해 상락대 절벽을 직접 접안한 뒤에 결정하기로 하였다. 며칠 전 안동 임하댐을 열어서 강바닥은 얕아도 물살이 거세 보트로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기에 벅차 보였다. 상락대 절벽을 살펴보고 돌아온 영환 회장과 발용 씨는 천하 절경이라며 감탄하면서 아쉽게도 보트 운항이 불가능할 것 같다는 의견을 회원들에게 설명하였다. 결국 내일 상락대 아래쪽 절벽 답사는 훗날을 기약하기로 하고, 18:00시 정각 상락대에서 안동시로 향했다.
▲ 상락대 절벽 접안 문제를 점검하기 위해 보트를 타고 현장으로 이동 중인 영환 회장과 발용 종친
▲ 보트 위에서 바라본 상락대 강물
▲ 마암과 상락대 절벽
▲ 상락대 절벽. 바로 밑에서 올려다보는 상락대 절벽은 경사가 90도에 가까울 뿐만 아니라 하늘을 찌를 기세로 천하절경을 이룬다.
오늘 저녁은 단호샌드파크에서 야영하며 정담을 나눌 예정이었으나, 폭염으로 야영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부부 동반으로 참여하신 분들이 상당수라 우리 집안 며느님들을 한데서 주무시라 하기에도 송구한 처지였다. 마침 안동종친회에서 저녁을 대접하겠다는 뜻을 집행부에 알려와 계획을 변경해 안동 시내에서 저녁을 먹고, 풍산읍에서 숙박하기로 하였다.
18:30분경 안동 시내 옥동손국수집에 도착해 푸짐한 음식을 배불리 먹고, 19:30분경 풍산읍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무더운 날씨에 행사에 참여하시고 저녁까지 대접해 주신 안동종친회 일가분들께 깊은 감사 말씀을 올린다.
▲ 안동종친회의 저녁식사 초대로 정겨운 시간을 갖는 문중 원로. 맨 앞 네 분(오른쪽 위에서부터), 봉회 대종회장, 광도 문온공파 이사, 동수 안동종친회장, 창회 전 도평의공파 회장.
회곡 맞은편 상고산을 오르다
이튿날 07:00경 누군가 흔들어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엊저녁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때로는 격론을 펼치느라 일행 대부분 새벽이 되어서야 잠깐 눈을 부쳤다. 08:00시 정각 예약해 둔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어제처럼 햇볕이 따갑다. 08:30분 식사를 마치고 08:50분 풍산장터를 출발해 회곡으로 향한다.
태성 씨와 위열 씨가 아침에 단호샌드파크에 짐을 내렸다가 다시 차에 실은 모양이다. 어제 갑작스런 돌개바람과 폭우, 그리고 행사일정 변경으로 그 많은 짐을 싣고 내리기를 반복했으니, 이 더운 날씨에 죄송스럽다.
회곡을 향해 가는 차 안에서 윤만 감사가 사주 선생의 <회곡종회기>를 낭독한다. 그 소리를 새겨들으며, 눈은 골짜기 사이사이에 펼쳐진 논을 살핀다. 어느덧 벼 이삭이 패고 따가운 햇볕을 받아 알곡이 익어 가기 시작한다. 짙푸른 녹색이 산기슭을 돌아 맑고 푸른 하늘로 이어져 가슴이 후련하다. 어느덧 서애 유성룡 선생의 유택이 있는 수동(水洞)을 지나 산모롱이를 돌아서니 회곡이 보인다.
09:05분 태홍 씨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상락재로 올라서니 오랜 세월 냉평국대부인 죽주박씨 설단과 충렬공 유허비, 상락재 등을 관리하고 있는 봉회 씨가 반가이 맞이한다. 09:20분 죽주박씨 할머니 단소로 올라가 인사를 드린다. 설단 규모는 전면 3.40m×측면 3.30m로 거의 정사각형에 가깝다. 09:35분 단묘에서 내려와 충렬공유허비각과 유허비 옛 좌대를 둘러보고, 몇 분은 회곡리 마을회관 앞에 있는 장군샘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 회곡동 전경
▲ 냉평국대부인 죽주박씨 할머님 단소
▲ 행사 참여 종친들. 뒷줄 왼쪽부터 재영, 은회, 윤만, 앞줄 왼쪽부터 태홍, 용주, 우회, 태영, 태우, 영국, 춘식, 태철, 봉회 대종회장, 광도, 영환, 윤식.
▲ 죽주박씨 할머님 단소로 올라가는 오솔길에서 내려다본 충렬공 집터. 앞쪽 기와집에서부터 그 옆 기와집까지 모두 충렬공 집터로 전해진다. 기와집 두채 모두 뒤쪽에 높은 축대가 쌓여 있다.
▲ 충렬공 유허비와 비각
▲ 충렬공 유허비 옛 좌대. 2005년 12월 3일 건너편 상고산 밭둑에 방치돼 있던 좌대를 안사연 회원들이 상락재 옆 화단으로 이건하였다.
10:00시 정각, 오늘 오전에 계획되어 있던 상락대 절벽 탐사를 취소하고, 곧바로 낙양담 위에 있었다는 충렬공의 정자 고산정(孤山亭)을 찾아 맞은편 상고산(上孤山)을 오른다. 고산정은 학봉 김성일 선생이 탐방한 1587년(선조 20년)만 하더라도 그 기초가 남아 있었는데, 불과 100년 만인 1686년에 사주 선생께서 남기신 <회곡종회기>에는 완전히 자취가 사라져 기왓장이나 초석 같은 옛 자취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안사연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고산정 유허를 찾기 위해 여러 차례 상고산과 하고산을 탐방했으나, 아직까지 확증을 찾지 못한 터라 오늘 탐방은 더 각별했다.
뜨거운 열기가 훅훅 느껴지는 아스팔트 도로를 걷다 녹음과 잡풀로 우거진 산속으로 들어서니 서늘한 기운이 상쾌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고산정 터를 찾느라 길도 없는 산속을 헤매며 가시에 찔리고 풀에 스치면서 잡목 사이를 뒤지느라 순식간에 윗옷과 바지가 흠뻑 땀에 젖었다. 몇 명씩 짝을 이루어 조금 넓은 터가 있는 곳이면 산을 위아래로 오르내리며 혹시라도 깨진 기왓장이라도 나올까 노심초사하며 이 잡듯이 샅샅이 뒤졌다.
한여름 산속에서 고산정 터를 찾아 헤매다
상고산 정상까지 올라가니 꼭대기가 제법 너른 고추밭이었다. 죽주박씨 할머니 설단에서 상고산을 건너다볼 때에는 작은 동산으로 보이나 직접 올라보면 몸체가 꽤 듬직하다. 정상 부근은 훤히 트여서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자리기는 하나, 확증이 될 만한 것은 찾을 수가 없었다. 다시 산 위아래를 오르내리며 정자 터가 있음직한 곳을 찾아나선다.
▲ 고산정 위치를 찾아 상고산에 오른 종친들
그러는 사이 산을 한 바퀴 돌아 자연스럽게 회곡을 관통하는 개울이 낙동강으로 빠져나가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이곳까지는 탐사하지 못했던 지역이다. 희한하게도 남서쪽으로 뻗은 지맥 등성이에 좁디좁은 오솔길이 나 있는데, 반 걸음만 삐끗해도 굴러 떨어지기 십상이다. 겨우 한 사람이 발밑을 살피며 걸어야 할 정도로 가느다란 혈이 힘차게 서남쪽을 향했는데, 땀에 젖은 몸으로 산마루를 타고 걷다 보니 어느새 회곡 입구 양수장으로 내려선다. 시각은 10:35분밖에 되지 않았는데 해는 머리 위에서 이글거리고, 옷가지는 마치 물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축축 늘어져 팔과 다리를 휘감는다.
이곳에서 상락대를 마주보는 곳에 조금 너른 암반을 찾기는 했으나, 우리가 찾는 그 바위는 아닌 것이 확실해 보였다. 상고산 혈이 끝나는 곳에 현재 양수장 건물이 들어서 있는데, 혹시 이곳이 고산정 터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괜스레 해 본다.
일행은 잠시 양수장 건물 그늘에 앉아 얼음물로 몸을 식히고, 자료집을 살펴보며 고산정 터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고고학과 민속학을 전공한 태홍 씨는 안동 시내 영호루만 하더라도 본래 물가에 세워져 있던 점과 그 외 안동지역 주요 정자들도 산간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 물가에 세워졌다는 점을 고려할 때 고산정 역시 물가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현지 사정에 밝은 태홍 씨 의견은 향후 답사 시 반영할 점이 크다고 하겠다.
바로 그때 태성 씨가 회곡에서 빠져 나오는 개울둑에서 옛 기와 조각을 발견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일제히 개울로 내려가서 기와 조각과 도자기 파편 따위를 찾느라 분주해졌다. 그만큼 너나 할 것 없이 고산정 터를 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 회곡동을 관통하는 개울이 낙동강과 합류하는 바로 위쪽 부근에서 발견한 기와 조각과 도자기 편들
▲ 기와 조각과 도자기 편을 수습하는 참여자들
▲ 개울둑 절개지에서 발견한 기와 조각. 맨 아래에 개흙층, 그 위로 모래층, 검은 탄화층, 최근에 퇴적된 진흙층 순서로 쌓여 있는데, 탄화층 아래 모래층에서 기와 조각을 여러 점 수습하였다.
▲ 상고산 맨 아래쪽 양수장 건물 부근에서 상락대를 바라본 풍광
이곳에서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와 조각과 사기 편 몇 점을 수습해 박물관에 감정을 의뢰하기로 하고, 10:55분경 상고산을 벗어나 경북중장비운전학원 마당으로 들어섰다. 옛 초등학교 자리로 현재는 폐교되고 학원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안김산악회 합류, 미래를 보다
학원 관계자의 승낙을 받고, 나무 그늘에서 더위를 피하며 대구종친회 안김산악회(회장 순회)를 기다린다. 얼마 후 11:35분경 안김산악회 일행이 도착했다. 안김산악회는 안사연의 상락대 탐방 소식을 전해 듣고 이번 제40회 산행을 안동유교문화길로 정해 정오 무렵에 합류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영환 회장은 안김산악회를 맞이하는 자리에서 서로 연계해 힘을 보태 준 점과 안김산악회의 단결력과 선조 현양사업에 감사 말씀을 전하며 안동김문의 발전과 선조 현양사업을 위해 후배 양성에 적극 힘써 주기 바란다는 소망을 전했다. 순회 안김산악회장과 재권 대구종친회장은 폭염 속에서 충렬공 유적을 답사하며 학술대회를 개최한 안사연의 노력에 깊이 감사드린다는 말씀으로 화답했다.
곧이어 미리 예약해 둔 식당에서 배달한 삼계탕과 어제 단호샌드파크에서 사용하기 위해 구매한 삼결살로 든든하게 점심을 먹으며 환담을 나누었다.
▲ 대구종친회 안김산악회(회장 순회) 회원들과 반가운 인사 장면
▲ 대회 2일째 참석자들과 안김산악회 회원들의 기념촬영
그러는 사이 시간이 흘러 어느덧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13:30분경 안김산악회가 먼저 회곡을 출발한 뒤 13:45분경 안사연 일행은 주위를 깨끗이 청소한 다음 귀경길을 서둘렀다. 올라가는 길에 삼강주막을 들르기로 하고 14:50분경 목적지에 도착했다. 마침 휴가철이라 삼강주막은 인파로 북적이는데, 잠시 땡볕을 피할 그늘조차 변변치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아쉬움을 남긴 채 15:15분경 귀경길에 올라 중앙고속도로와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통해 18:30분경 송파구 방이동 남원추어탕집에 도착했다. 이열치열이라고 뜨거운 추어탕으로 속을 달랜 뒤 안사연 회원은 각자 귀가하여 제1회 여름캠프가 무사히 종료되었다.
▲ 삼강주막. 더위를 잠시나마 피할 그늘조차 변변찮아 잠깐 둘러보고 귀경길에 올랐다.
이번 제1회 여름캠프를 발판으로 안사연에서는 학술대회와 캠프를 병행해 자료집을 축적하고, 이렇게 모아진 자료집을 기초자료로 일정 주제를 모아 새로운 책자를 간행할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이번 자료집에서 보듯이 제1집에 상락대와 고산정 자료가 집성되었듯이 향후 제2집, 제3집 등 새로운 자료집이 간행되면 이들 자료집을 다시 재편집해 전국에 산재한 선조 금석문을 모은 ‘안동김씨 금석대관’을 간행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 권으로 묶기에는 자료가 부족한 선조의 글을 하나로 모아 ‘안동김씨 명문(名文) 총람’을 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전국의 소문중에서 각기 보관 중인 문집들을 모아 수백 수천에 달하는 ‘안동김씨 문집’을 시리즈로 엮어 내고, 수많은 전적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색인집까지 펴낼 것을 기대한다. 비록 지금은 미미한 첫걸음을 떼지만 훗날 우리 후대에 500집ㆍ1000집 기념호가 간행될 때에는 창대한 간행물이 속속 이어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거대한 물결에 안사연 일동은 물 한 바가지 더한 것을 영광으로 여기며, 우리 종인들의 동참을 고대한다.
▲ 제1회 안사연 여름캠프 자료집, 창간호 『회곡동·고산정·상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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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안사연 행사에 크나큰 관심과 함께 여러 모로 배려해 주신 봉회 대종회장님과 문중 원로 여러분 및 안동김문 일가분 모든 분께 머리 숙여 깊이 감사 말씀 올리며 제1회 여름캠프 보고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사진 발용 / 글 윤식
댓글목록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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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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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잘못된 내용이 있으면 두루 헤아려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수정해야 할 내용 말씀해 주시면 바로잡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재영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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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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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이틀간의 일정 멋진기록 남기셨네요 수고 하셨어요
첫걸음 띄었으니 100걸음 1000걸음 무한한 걸음으로 내달려야 겠지요
"자료집간행"은 물론 ‘안동김씨 금석대관’ ‘안동김씨 명문(名文) 총람’ ‘안동김씨 문집’---등
안동김씨 역사를 찾아서 ---
김태영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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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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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멋진 후기 잘 읽었습니다.
우리 안사연의 이번 탐방에서 성과는 미약하였지만,
330년전 사주선생께서 남긴 기록과 이번 후기가 잘 전달되어서
훗날 또 다른 후손들이 충렬공의 유적을 찾는데
디딤돌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기록과 사진 때문에 고생하신 발용. 윤식씨게 감사드립니다.
김영환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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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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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어느하나 나를 내세우지 않고 함께 하는 안사연 회원님들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좀더 나은 행사를 기원합니다.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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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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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별첨 03 자료 <고산정에 대한 고찰> 논문 추가자료 링크된 곳에 올렸습니다.
솔내 대부님,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진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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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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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잘보았습니다.
참석하지 못한 아쉬움도 가득한채
더운날씨에 모든분들 너무너무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다음에는 꼭참석하겠습니다...
사진,글 모두 너무 상세 해서 다녀온듯....합니다...
다시한번 님들의 노고에 감사 드립니다.
김정중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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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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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이처럼 훌륭하고 다채로운 행사에 끝까지 함께 못하였슴이 아쉽습니다
정갈한 후기를 읽으며 가슴이 뿌듯해집니다
위열(在)님은 사주후손이 아니고 둘째 영해부사를 지내신 송리 성좌 할아버님 후손입니다
김영채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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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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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아직도 나는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너무도 멀리 떨어진 곳이기에
그져 마음만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안사연 활동이 새롭게 태어나면서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열심히 그리고 재미있게 일하셔요. 감사합니다.
멀리 강원도 양양에서 힘을 모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