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란 무엇인가? [일반적 고찰]
페이지 정보
김상근 작성일13-07-03 12:07 조회2,906회 댓글1건본문
족보란 무엇인가?
족보란 한혈통의 계보로서 부계를 중심으로 혈연관계를 도표 식으로 나타낸 책이며 조상을 숭배하고 혈족의 단결을 도모하며 후손으로 하여금 화목의 미풍을 이루고자 함에 그 목적이 있다.
족보(族譜)는 시조(始祖)부터 역대 조상의 얼과 우리나라의 역사가 담겨져 있으며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이 족보에 실려 있어 나와 집안의 뿌리를 알 수 있는 한 집안의 사책이다.
이에 따라 옛날부터 족보는 집안의 보물처럼 소중히 간직하고 이를 대할 때는 상위에 모셔놓고 정화수를 떠서 절을 두번한 후에 경건한 마음으로 살아계신 조상을 대하듯 하였으며 자신의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므로 성족 파벌과 문중가승을 분명히 하며 항렬 존비와 관련적서등을 명백히 하고 있는 것이다.
족보는 멀리 중국 6조 시대에 조상의 관력과 혼인관계등으로 우족과 관족을 벌하려는 데서 시작되어 발전하여 내려오다가 송 대에 와서 한혈족의 역사를 모두 기록하게 되었고 전 가족을 수록하게 되는 발전을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족보는 세계에서 부러워 할 정도로 잘 발달된 족보로 정평이 나있으며, 계보학의 종주국으로 꼽힌다.
외국에도 '족보학회'나, 심지어는 족보전문 도서관이 있는 곳이 있는 등 가계(家系)에 대한 관심이 많지만 우리처럼 각 가문마다 족보를 문헌으로까지 만들어 2천년 가까이 기록 해온 나라는 없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의 계보학 자료실에는 600여종에 13,000여권의 족보가 소장되어 있다.
성씨 관계의 가장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는 족보는 원래 중국의 6조(六朝)시대에 시작되었는데 이는 왕실의 계통을 기록한 것이었으며, 개인의 족보를 갖게 된 것은 한(漢) 나라 때 관직등용을 위한 현량과(賢良科)제도를 만들어 과거 응시생의 내력과 조상의 업적 등을 기록한 것이 시초이다.
특히 중국 북송(北宋)의 문장가인 소순(蘇洵), 소식(蘇軾), 소철(蘇轍)에 의해서 편찬된 족보는 그 후 모든 족보의 표본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족보는 고려왕실의 계통을 기록한 것으로 고려 의종(18대, 1146~1170)때 김관의(金寬毅)가 지은 『왕대종록(王代宗錄)이 처음이다.
그러나 고려사를 보면 고려 때에도 양반 귀족은 그 씨족계보를 기록하는 것을 중요시하였고, 관제(官制)로서도 종부시(宗簿寺)에서 족속보첩을 관장했다는 것으로 보아 당시의 귀족 사이에는 보계를 기록 보존하는 일이 실제로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사대부 집안에서 사적으로 간행되기 시작하였으나, 1476년(조선 성종7년)의 안동 권 씨 성화보(安東權氏 成化譜)가 체계적인 족보 형태를 갖춘 최초의 족보이다.
17세기 이후 여러 가문으로부터 족보가 쏟아져 나오게 되었으며 대부분의 족보가 이 때 만들어 지기 시작했다.
조선 초기에 간행된 족보의 대부분은 족보간행을 위해 초안을 하고 관계 자료를 충실히 보완한 뒤 간행에 착수하여 내용에 하자가 없었다.
그러나 이후의 족보들은 초안이나 관계 자료의 검토, 고증도 없이 자의적으로 간행된 것이 많았다.
그리하여 자의적인 수식이 가하여 졌음은 물론이며 조상을 극단적으로 미화하고, 선대의 벼슬을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조작하고, 심지어 명문 집안의 족보를 사고팔거나 훔치는 경우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사대주의 사상에 젖어 시조의 유래를 중국에 두어 기자(기원전 1122년 우리나라에 왔다고 함)를 따라 우리나라에 왔다고 하거나, 중국의 인물을 고증도 없이 조상 이라고 하는 식으로 족보를 꾸미기도 하였다.
그 이유는 당시 중화사상에 물든 일반적인 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며 족보를 간행함으로써 자신의 가문의 격을 높이려는 마음에서 야기된 것이었다.
--------------------------------------------------------------------
♦. 보첩이란
보첩이란 한 종족(種族)의 계통을 부계(父系)중심으로 알기 쉽게 체계적으로 나타낸 책으로, 동일혈족(同一血族)의 원류를 밝히고그혈통을 존중하며 가통(家統)의 계승을 명예로 삼는 한 집안의 역사책이다.
보첩은 원래 중국의 6조(六朝)시대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는 제왕연표(帝王年表:왕실의 계통)를 기술한 것이었으며, 개인적으로 보첩을 갖게 된 것은 한(漢)나라 때 관직등용을 위한 현량과(賢良科)제도를 설치하여 응시생의 내력과 그 선대(先代)의 업적 등을 기록한 것이 시초가 된다. 특히 북송(北宋)의 대문장가인 3소-소 순, 소 식, 소 철 - 에 의해서 편찬된 족보는 그 후 모든 족보편찬의 표본이 되어왔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왕실의 계통을 기록한 것으로 의종(毅宗)때 김관의(金寬毅)가 지은 [왕대종록(王代宗錄)]이 그 효시(嚆矢)라 할 수 있다. 또한 사대부의 집에서는 가승(家乘)이 전해 내려왔는데, 체계적으로 족보의 형태를 갖춘 것은 조선 성종 7년(成宗 7 : 1476)에 발간된 안동 권 씨 성화보(安東權氏 成化譜)이고, 지금과 같이 혈족(血族)전부를 망라한 족보는 조선 명종(明宗)때 편찬된 문화유씨보(文化柳氏譜)로 알려져 있으며 지금까지 전해온다.
♦. 이와 같은 보첩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가. 대동보(大同譜)
같은 시조(始祖) 밑의 중시조(中始祖)마다 각각 다른 본관을 가지고 있는 씨족 간에 종 합 편찬된 족보이다.
즉 본관은 각기 다르되, 시조가 같은 여러 종족 이 함께 통합해서 만든 보책(譜冊)이다.
나. 족보(族譜)
관향(貫鄕)을 단위로 같은 씨족의 세계(世系)를 수록한 보첩으로, 한 가문의 역사를 표시 하고 가계(家系)의 연속성을 나타내는 보책(譜冊)이다.
다. 세보(世譜)와 세지(世誌)
한 종파(宗派)이상의 동보(同譜)·합보(合譜)로 편찬되었거나, 어느 한 파속(派屬)만 이 수록되었을 경우이며, 이를 세지(世誌)라고도 한다.
라. 파보(派譜)
시조로부터 시작하여 어느 한 파속(派屬)만의 명·휘자(名·諱字:이름자)와 사적(事蹟)을 수 록한 보책(譜冊)이다.
마. 가승보(家乘譜)
본인을 중심으로 편찬하되, 시조로부터 시작하여 자기의 직계존속(尊屬:자기의 윗대)과, 비속(卑屬:자기의 아랫대)에 이르기까지 이름자와 사적(事蹟)을 기록한 것으로 보첩편찬의 기본이 되는 문헌이다.
바. 계보(系譜)
한 가문의 혈통관계를 표시하기 위하여 이름자만을 계통적으로 나타내는 도표(圖表)로 서, 한 씨족 전체가 수록되었거나 어느 한 부분이 수록된 것이다.
사. 가보(家譜)와 가첩(家牒)
편찬된 형태나 내용의 표현이 아니라 집안에 소장되어 있는 보첩을 말한다.
아. 만 성보(萬姓譜)
만성대동보(萬姓大同譜)라고도 하며, 모든 성씨의 족보에서 큰 줄기를 추려내어 집성(集 成)한 책으로 족보의 사전(辭典)구실을 하는 것이다.
◆.족보 용어(族譜 用語)
★.본 관
본관(本貫 : 貫鄕)이란 시조, 중시조의 출신지와 혈족의 세거 지를 가리키는데, 동족의 여부를 가리는데 중요하며 씨족의 고향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성씨의 종류가 적어서 일족일문 (一族一門 : 같은 혈족의 집안)의 수가 많아지게 되어 성씨만으로는 동족을 구분하기가 곤란하므로 본관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성씨
나라에 큰 공(功)을 세워 공신(功臣)에 녹훈된 사람이나 다른 나라에서 귀화해 온 사람에게 포상의 표시로 왕이 본관이나 성씨, 이 름을 하사했다고 한다. 그 유형에 따라 예를 들어보면,
- 천강성(天降姓 - 하늘이 내려준 성): 박(朴), 석(昔), 김(金)
- 사관(賜貫), 사성(賜性), 사명(賜名):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본관, 성, 이름
- 토성(土姓) : 토착 상류계급의 성
- 속성(屬姓) : 사회적 지위가 낮은 성
- 입성(入姓) : 타지방으로부터 이주한 성
- 귀화성(歸化姓) : 외국으로부터 귀화한 성
★.비조·시조·중시조
비조(鼻祖)란 시조 이전의 선계(先系) 조상 중 가장 높은 분을 말하며, 시조(始祖)란 초대(初代)의 선조, 즉 첫 번째 조상(祖上)을 이른다.
중시조(中始祖)란 시조 이후에 쇠퇴하였던 가문을 중흥시킨 분을 말하는 것인데, 이는 전 종문(全宗門)의 공론에 의하여 정해지는 것이며, 어느 파 단독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세와 대
세(世)란 예컨대 조(祖)·부(父)·기(己)·자(子)·손(孫)을 계열의 차례대로 일컫는 말이며, 대(代)란 사람이 나면서부터 30년간을 1대로 잡는 시간적 공간을 일컫는 말이기 때문에 부자간이 세로는 2세이지만 대로는 1대, 즉 30년간의 세월이 한 번 경과하였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선조로부터 아래로 후손을 가리킬 때에는 '세(世)'를 붙여서 시조를 1세(世), 그 아들은 2세(世), 손자는 3세(世), 증손은 4세(世), 또 현손은 5세(世)라 일컬으며, 그와 반대로 선조를 말할 때에는 대(代)를 붙여서 일컫는다. 그러므로 후손을 말할 때에는 누구의 몇 세손, 그와 반대로 선조를 말할 때에는 누구의 몇 대조라 일컫는다.
★.아명과 관명
옛날에는 어렸을 때 부르는 아명(兒名)이 있고, 남자가 20세가 되면 관례를 올리면서 짓게 되는 관명(冠名)이 있었다. 관명을 흔히 자(字)라고 하였다. 자는 집안 어른이나 스승, 선배 등이 성인이 된 것을 대견해 하는 뜻으로 지어 주었다.
★.호와 시호
옛날에는 부모가 지어준 이 름은 임금, 부모, 스승과 존장의 앞에서만 쓰이고 다른 사람들은 함부로 부를 수 없었다. 동년배, 친구, 그 외 사람들은 자로써 불렀다.
한편 어린 사람이나 격이 낮은 사람, 또는 허물없이 부르기 위해서 호(號)를 지어 불렀다. 호는 남이 지어 줄 수도 있고, 스스로 짓기도 했다. 호는 요즘도 쓰인다.
신하가 죽은 뒤에 임금이 내려 주는 호를 시호(諡號)라고 하였다. 시호를 내려 주는 것을 증시(贈諡)라고 하였으며, 죽은 뒤 장례 전에 증시하지 못하고 훨씬 뒤에 증시하게 되면 그것을 추증시(追贈諡)라고 하였다.
★.함과 휘
살아 있는 사람의 이 름을 높여서 함(銜)이나 명함(名銜)이라 하고, 더 높여서 존함(尊銜)이라고도 한다. 반면 돌아가신 분의 이 름은 휘(諱)라 한다.
사손(嗣孫)과 사손(祀孫)
사손(嗣孫)이란 한 집안의 종사(宗嗣), 즉 계대(系代)를 잇는 자손을 말하며, 사손(祀孫)이란 봉사손(奉祀孫)의 줄임말로 조상의 제사를 받드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출계와 계자
후사(後嗣)란 세계를 이을 자손을 말한다. 후사가 없어 대를 잇지 못할 때에는 무후(无后)라고 쓴다. 무후는 무후(無後)와 같은 의미이다.
무후가(无后家)로 하지않고 양자를 맞아 세계를 이을 때는 계자(系子)라고 써서 적자와 구별한다. 계자의 경우는 세표에 생부(生父)를 기록한다. 또 생가의 세표에는 출계(出系)라고 쓴다. 양자를 들일 때는 되도록 가까운 혈족 중에서 입양한다. 또 호적이 없는 자를 입적시켜 세계를 잇게 하는 경우는 부자(附子)라고 쓴다. 옛날에는 적자 이외의 자로 세계를 잇고자 할 때는 예조(禮曹)의 허가를 얻어야 했으며 파양(罷養)을 하고자 할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생졸
생(生)은 출생을, 졸(卒)은 사망을 말하는 것인데, 70세 이상에 사망(死亡)하면 수(壽)○○라 하고, 70세 미만에 사망하면 향년(享年)○○라 하며, 20세 미만에 사망하면 요절(夭折), 또는 조요(早夭)라고 표시한다.
★.실과 배
배우자를 말하는 것인데, 실(室)은 생존한 분, 배(配)는 작고(作故)한 분을 구분하는 것인데, 생졸(生卒) 구분 없이 배(配)로 통용하는 문중(門中)도 있다.
★.묘소
묘소란 분묘의 소재지를 말하는 것으로 족보에는 '묘(墓)'자만을 기록하고, 좌향(坐向 : 묘가 위치하고 있는 방향, 방위)과 석물(石物), 또는 합장 여부를 기록한다.
묘소의 방향이 자좌(子坐)로 되어있으면 고인의 머리 쪽이 정북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뜻으로, 우리가 보는 묘지의 방향은 정남향이 된다.
좌우(左右)는 사자(死者)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므로 묘를 바라보는 쪽에서는 정반대가 되므로 좌는 동(東)쪽, 우는 서(西)쪽으로 보면 된다.
합봉(合封), 합묘(合墓)는 부부를 한 봉분에 합장했다는 말이고, 쌍봉(雙封)은 같은 묘소에 약간의 거리를 두고 두 봉분을 나란히 만들었다는 것이다.
합장(合葬)을 할 경우는 남편은 오른쪽, 부인은 왼쪽에 묻는데 이는 사자(死者)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묘를 바라보는 사람은 정반대가 된다.
고려시대에는 불교의 영향 때문에 화장을 많이 하였는데, 조선시대에 와서는 유교의 영향으로 중(僧)을 제외하고는 토장(土葬)을 하여 분묘가 발달하였다.
분묘의 형태는 시대와 나라, 지방, 문화생활, 계급에 따라 그 형식을 달리 하나 대개의 경우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에 의거하여 설치한다. 산을 뒤로 두고 앞으로는 물이 흐르며, 좌우의 청룡(靑龍)과 백호(白虎)가 앞의 주산(主山)보다 약간 높게 위치한 곳에 앞은 몇 층의 단상(壇狀)을 만들고 주위에 호석(護石)을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다.
사대부(士大夫)의 무덤 주위에는 망주(望柱 : 무덤 앞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를 세우고 석인(石人 : 돌로 만든 사람의 형상)을 배치하였으며, 분묘 앞에는 상석(床石 : 제물을 놓기 위해 돌로 만든 상)과 묘표(墓表)를 두고 신도비(神道碑), 묘비(墓碑), 묘갈(墓碣)을 세우는 것이 보통이었다.
★.묘표와 묘지
묘표(墓表)란 일명 표석이라고 하는데 고인의 관직 이 름과 호를 앞면에 새기고, 뒷면에는 사적 또는 비석을 세운 날짜와 비석을 세운 자손들의 이 름을 새겨 무덤 앞에 세우는 비석이다. 묘지(墓誌)는 지석(誌石)이라고도 하며, 천재지변 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묘지를 잃어버리는 사례가 종종 있는데 그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금속판, 돌, 도판(陶板) 등에 고인의 원적과 성명, 생년월일, 행적, 묘의 위치 등을 새겨서 묘 앞에 묻는 것을 말한다.
★.묘비와 비명
묘비(墓碑)란 묘소 앞에 세우는 비석의 총칭이며, 비명(碑銘)은 비에 새긴 글로서 명문(銘文), 비문(碑文)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에는 고인(故人)의 성명, 본관, 원적, 성행(性行), 경력 등의 사적(事蹟)을 기술한다.
★.신도비와 묘갈
신도비(神道碑)는 임금이나 고관의 무덤 앞의 길목에 세
댓글목록
김재용님의 댓글
![]() |
김재용 |
---|---|
작성일 |
이런 자료 올려 주셔 감사 합니다. 정말 대종회가 활성화 되는듯 하여 반갑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