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독립만세운동 순국열사 김상헌[金相憲]에 대한 고찰[考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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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근 작성일13-07-01 15:43 조회2,918회 댓글1건본문
자료실 등재가 안되어 게시판에 글을 올립니다.
3.1.독립 순국열사(烈士) 김 상헌(金 相憲)
공(公)의 자(字)는 여장(汝長) 이며 휘는상헌(相憲)이다.
부(父)는 휘우호(諱佑浩)이고. 공의 조부(祖父) 호필(好弼)은 슬하에 형제를 두셨는데
형(兄)이 좌호(佐浩)이며 제(弟)는 우호(佑浩)로 작명하였다.
공은 1893년 고종30 년 계사(癸巳) 10월8일 에 현(現) 천안시 병천면 송정리에서 출생 하였다.
부친 좌호는 슬하에 형제를 두셨는데 형은 상덕(相德)이다
공의숙부(叔父)이신 우호(佑浩)께서 후사가 없어 공이 출계(出系)하여 입적(入籍) 하였다.
공은 1919년 기미(己未) 3.1.만세시 아우내 장터에서 왜경(倭警)에 맞서 만세를 외치다가 왜경이 쏜 총탄을 맞고 순절 하였다.
이때 공의 나이는 27세 열혈 청년 이었다. 아드님 명응(明應)은 6세때 이다.
배(配)는 의령남씨(宜寧南氏1890 庚寅 - 1936 丙子 壽47) 이다.
의령남씨 께서는 공의 순절에 너무나 비통하여 아우내 장터에 있는 왜경의 지서에 찾아가 투석하며 항거하다
왜경에 체포되어 심한 고문을 받고 투옥되어 옥살이를 하였다
이때 가족들은 6세인 아들 명응씨를 업고 면회를 다녔다니 얼마나 비통한 일인가?
공의 손자 태희씨의 증언에 의하면 조부인 상헌 열사 께서는 왜경의 총탄에 순절한 것이 아니고
만세군중의 맨 앞에서 만세를 주도해 웨치다 일본헌병의 칼에 맞아 현장에서 순절 하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공이 독립만세를 부르고 이를 준비하며 주동하신 분들 및 단체에 협력하신 사실들은 자료가 없어 아쉬울 뿐이다.
공은 우리문중 竹溪公 奉事公 承旨公 夏鼎系를 이어가는 종손가계(宗孫家系) 로써 문중의 명예를 빛내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흔쾌히 몸을 바치신 위대한 열사 이시다.
3.1.만세 이후 조국의 광복시 까지 나라없는 일제의 식민치하에서 헤아릴수 없는 핍박과 감시 속에서 살아 남느라
그 가족 및 집안 사람들의 고초가 어떠했겟는가?
지금 우리들은 선열들의 살신성인의 위대한 행동으로 민족을 위해 항쟁하심을 망각 한채 살아감이 부끄럽기 만 하다.
공의 행상을 안동김씨 제학공파 경오보(庚午譜)에는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기록 하고잇다.
公 己未 三.一.運動時 於 竝川市場 抗 倭被賊 彈 而 殞 (공 기미 3.1.운동시 어 병천시장 항 왜피적탄 이 운)
공의 직계후손(直系後孫)으로는 손자(孫子) 태희(泰熹) 이며 증손(曾孫)은 현식(玄植)과 홍식(弘植)이다.
글 ks相根
# 사진은 아래 파일로 첨부합니다.
댓글목록
김영환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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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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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훌륭하신 업적이 있기에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제 컴에서는 사진이 보이지 않으니 관리자에게 문의해애 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