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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락대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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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작성일13-06-11 10:26 조회2,8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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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락대 탐방

「안사연」은 사이버상에서 안동김씨의 뿌리와 역사인물을 연구하는, 후손들의 자발적 모임체인 ‘안동김씨사이버학술연구회’의 약칭입니다. 2001년 11월 11일 첫 답사지, 포천 금수정을 시작으로 10여 년간 백여 차례의 역사 유적답사 및 산행을 실시하였으며, 아울러 선조님의 수 많은 역사 자료를 발굴하여 홈페이지를 통해 소개하고 편람집을 만들어 대종회 서고에 비치해서 모든 종인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안사연」의 이러한 활약과 열정에 힘입어, 2012년 10월에는『충렬공김방경자료집성』이라는 대작을 성공리에 편찬 분질하였으며, 이보다 앞서 4월에는 「충렬공탄신800주년경모제전」기념으로 학자들의 논문을 망라한 ‘논총(論叢)’도 발간하였습니다. 또 11월에는 「안동김씨대종회」에서 ‘상락대’에 「충렬공탄신800주년」기념 시비(詩碑)를 건립한바 있습니다. 그리고 금년 4월에는 「중세사학회」에서 주관한 「충렬공탄신800주년」기념학술대회가 19일과 26일, 두 차례에 걸쳐 안동시민회관과 백범기념관에서 성황리에 종료되었으며, 이 때에도「충렬공자료집성」축약본을 추가로 인쇄. 배포하였습니다. 이 모두가 우리 ‘안사연’ 태동 10년의 성과물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안사연」활동, 10년에는 몇 구비의 우여곡절도 거쳤습니다. 종중의 사업이나 탐방계획을 세워도 내세울 수 있는 주최자, 책임질 수 있는 대표자가 없다보니 종종 혼선을 빚는 어려움과 오해의 소지도 많았습니다. 사이버상에서 자발적으로 만난 모임체의 한계인가 봅니다. 또 정식 단체가 아니다 보니 새로운 회원이 합류하여 융화되어 가는 시스템, 즉 구심점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러한 여러 문제를 고심한 끝에, 2013년 5월 3일에 시내 모처에서 주비위원회를 열고 기존의 ‘안동김씨사이버학술연구회’를 「안동김씨역사연구회(약칭 安史硏)」로 명칭을 변경하고 회칙을 만들어서 주비위원 만장일치로 김영환(金榮煥)씨를 초대 회장에 선임하였습니다. 그리고 신임 회장에 의한 조직도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안사연’의 지속적인 발전과 우리 안김의 역사인물과 유적등을 연구, 현양해 나가기 위한 첫 사업으로 금년 여름에『사주유고(沙洲遺稿)』김양좌(金良佐1636~1708)에 수록되어 있는 ‘회곡종회기(檜谷宗會記 1686년)’의 기록을 쫒아 ‘상락대’를 탐방하는 여름캠프를 8월 10일 ~ 8월 11일(1박 2일)로 확정 실시하기로 뜻을 세웠습니다.
(세부사항은 추후 공지) 이번 행사의 목적은...

첫 번째, 상락대 탐방으로 충렬공의 유적지를 더욱 공고히 다지고, 내외에 알리는 계기로 삼고자 함이며,
두 번째, 제2의 ‘회곡종회기’ 를 남기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에 씻겨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결과가 초래 할 수도 있습니다만, 후손으로서 마땅히 찾아보려 노력했고, 또 기록을 남겨서 백년후 또 다른 후배들이 연구 할 수 있도록 road map을 만들어 주자는 것입니다.
세 번째, 이번 여름캠프는 배(모터-보트)를 동원하여 낙동강 물길의 ‘상락대’ 푸른 절벽을 탐방함으로써 산수(山水), 자연 속에서 호연지기를 기르며, 우리 ‘안사연’과 종친들간의 친목을 도모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자 함입니다.

상락대(上洛臺)
안동시 남후면 단호리 건지산 자락에 있는 절벽을 ‘상락대’라고 합니다. 충렬공께서 관직에 나가기전(16세 이전)까지 이곳에서 할아버지(휘 김민성)의 훈육을 받으며 학문과 무예를 익히고 심신을 단련하던 유서 깊은 장소입니다. 현재 안동시에서 세운 '해설판'과 안동김씨 대종회에서 세운 '상락대 표석' '800주년 기념시비(詩碑)' 등이 충렬공의 유적지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퇴계 이황, 송암 권호문. 학봉 김성일, 백암 김륵, 강좌 권만, 전긍재 김서일, 학림 권방, 그리고 후손 사주 김양좌에 이르기 까지 안동의 걸출한 문사들이 유람하면서 유문을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현재는 '낙동강생태학습관'이 자리 잡고 있으며 주변으로 유교문화길 조성이 한창입니다.

 “내외손 66명이 모인 오늘, 이 모임이 산에서 하는 것도 아니고 물에서 하는 것도 아니며, 술마시고 즐기기 위해서도 아니고 경치에 빠져서도 아니다. 충렬공 유허(遺墟)를 찾고 유대(遺臺)를 찾아서 평생의 소원을 푼 것으로 만족한다.” 상락대는 수면에서의 높이가 1장 남짓 되었다. 배에서 내려 벼랑을 타고 올라가니 산의 허리에 바위가 평평하여 천연적으로 대(臺)를 이루었으니 가히 하늘이 만든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암석 사이에 난 부추를 손으로 뜯어 술안주로 삼았는데 달고 깨끗하며 부드러워 입에 넣자 상쾌하였으니, 세상에서 이른바 경지(瓊芝)나 요초(瑤草)가 이것이 아니겠는가. 아, 이 대에 올라서 눈을 들어 멀리 둘러보는 것은 많은 것을 구경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충렬공이 계신 것 같은 감동을 느끼기 위해서이다. 그 유풍(遺風)이 수백 년이 지난 뒤에도 오히려 상상할 수 있고 모습이 비슷하니, 이 대에서 감동하는 것이 어찌 선향(先鄕)을 찾아와 공경하는 마음이 들어서일 뿐이겠는가. 이에 김이상(金履祥)과 김이정(金履正)으로 하여금 종인(宗人) 김이겸(金以謙)과 함께 모인 사람들의 성명과 연월일을 바위에 쓰게 하였다. -병인년(1686, 숙종12) 3월 하순에 사주 김양좌는 기록한다.-

출처 : 사주 김양좌 ‘회곡동종회기‘의 내용 중에서


2013. 6. 10

안동김씨 역사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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