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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번 삭제된 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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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작성일13-03-14 11:57 조회3,2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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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된 글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들에게 알려 드립니다.

등록된 글은 문온공의 고모부(양간공 김승택의 사위)인 김광재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내용은 김광재가 아니라 김광식이다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근거로 동문선에 보면
송당공 묘지명을 목은 이색선생이 지으셨는데 김광식이라고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송당 선생 김공 묘지명 병서 (松堂先生金公墓誌銘 幷序)
이색(李穡)
지정(至正) 신사년에 내 나이 14세에 성균시에 응시했다. 고시장에 나아가 뜰 가운데 선생을 바라보니 포(袍)와 홀(笏)을 갖추고 단정히 앉아 있는데, 엄숙한 모습이 마치 태산교악(泰山喬嶽)과도 같아서 여러 선비들이 숨소리를 죽이고 감히 떠들지 못하였다. 문생이 되어서는 왕래하면서 가르침을 들으니 따뜻한 말씨와 부드러운 낯빛으로
중략--
 선생의 성은 김씨요, 이름은 광식(光軾)이고, 자(字)는 자여(子輿)이며, 호는 송당거사(松堂居士)이니, 광주(光州) 사람인 사공(司空) 김길(金吉)의 후손이다.
중략--
공은 문하평장(門下平章) 양간공(良簡公) 김승택(金承澤)의 따님과 결혼하여 자식 둘을 두었다. 아들 흥조(興祖)는 쾌활하며 큰 뜻을 가졌다
후략--

그러나 글을 자세히 읽어보면
전략
먼저 행수낭장(行首郞將) 김의(金義)의 딸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이 광식(光軾)이요, 벼슬은 선부의랑(選部議郞)에 이르렀고, 계실(繼室)은 태조의 아들 효은(孝隱)의 후손인 시랑(侍郞) 정단(丁旦)의 딸로서 3남 2녀를 낳았는데, 장남 광철(光轍)은 급제하여 벼슬이 밀직사에 이르렀고, 다음이 선생이요, 다음은 광로(光輅) 급제하였다. 맏딸은 정당문학 안목(安牧)에게 시집갔고, 다음은 밀양군(密陽君) 박윤문(朴允文)에게 시집갔다. 공의 삼형제가 이미 과거에 올라 대부인이 나라에서 주는 녹으로 그 몸을 마쳤다. 박씨의 아들 4명과 안씨의 손자 3명이 또 모두 과거에 오르니, 당시 사람들이 부러워하였다
후략

윗글로 보아  문정공 쾌헌 김태현의 첫부인(김의 의 따님)에게서 김광식을 낳고 후취부인(정단의 따님)에게서 광철 과 公(즉 이묘지명의 주인공)광로를 낳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아들이 김광식이고  셋째아들이 이묘지명의 주인공이라면 앞뒤가 안 맞는 것이었습니다.

김광식, 김광재의 아버지인 김태현의 묘지명을 보면

김문정공(金文正公) 묘지

공의 이름은 태현(台鉉)이고, 자는 불기(不器)이며, 성은 김씨--중략-

공은 좌우위낭장(左右衛郎將) 김의(金儀)의 딸과 결혼하였으나 일찍 세상을 뜨자, 다시 신호위낭장(神虎衛郞將) 왕단(王旦)의 딸과 결혼하였는데 개성군대부인(開城郡大夫人)으로 봉해졌다. 어질게 능히 가정을 다스려서, 있고 없음으로 공을 혼란스럽게 하지 아니하였으며, 아들 3인을 모두 과거에 합격시켜서 나라에서 해마다 20석(石)의 곡식을 받았다. 공은 아들이 4명이고 딸이 2명인데, 첫 부인이 1남을 낳았고 나머지는 모두 후부인이 낳았다. 광식(光軾)은 갑오년(충렬왕 20, 1294 )의 과거에 합격하여 관직이 총부의랑(摠部議郞)에 이르렀으나 먼저 사망하여 자식이 없다. 광철(光轍)은 을사년(충렬왕 31, 1305 )의 과거에 합격하여 지금 군부총랑 진현직제학(軍簿摠郞 進賢直提學)이며, 광재(光載)는 계축년(충선왕 5, 1313 )의 과거에 합격하여 지금 도관정랑(都官正郞)이 되었다. 광로(光輅)는 정사년(충숙왕 4, 1317 )의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결혼하기 전에 일찍 사망하여 관직은 가안부녹사(嘉安府錄事)에 그쳤다. 장녀는 전교령 예문직제학(典校令 藝文直提學) 안목(安牧)에게 시집가서 익양군부인(翼陽郡夫人)으로 봉해졌고, 차녀는 예문공봉(藝文供奉) 박윤문(朴允文)에게 시집갔다. 손자가 2명이 있는데 하나는 아무개로 별장(別將)이며, 다음은 아직 이름이 없다.

하략--

결론; 양간공(김승택)의 사위는 광산김씨 김태현의 셋째아들(첫부인-김광식, 후취부인 김광철, 김광재, 김광로)인 김광재가 맞다.

위 자료들은 동문선 및 김태현묘지명, 김광재묘지명의 원본을 확인하여 얻은 결과이다.
혼동이 온 것은 동문선을 번역 활자화하면서 오류가 생긴 것이다.

공신력있는 글(동문선의번역문)이라도 반드시 원문과 관계자료를 검토하여야 옳바로 접근할 수 있다는 교훈을 배웠다.

이것이 삭제한 사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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