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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팔문장(八文章) 우암(寓菴) 김주(金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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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작성일12-10-21 21:28 조회3,398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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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팔문장(八文章) 우암(寓菴) 김주(金澍)

 
 
 
구본만
 
 
 

▲ 구본만( 여주군향토사료관장)

우리군 향토사료관에는 조선 명종대 문장과 경학으로 명성이 뛰어났던
 팔문장(八文章)으로 유명한 우암(寓菴) 김주(金澍, 1512~1563) 선생과
 관련된 유물이 있다. 이 유물은 2005년도에 안동김씨 안렴사공파 문단
공 종중에서 우리군 향토사료관에 기증한 유물이다.

1539년 별시문과에서 장원으로 급제한 우암은 1563년(명종 18) 5월,

제학으로 있을때 선계변무사로 명나라에가서 태조의 호적을 바로 고친 
이른바 종계변무를 깨끗이 마무리한 공으로 국가 공신이 된 인물이다. 
그는 이 과업을 수행하는 도중 이질에 걸렸으나, 병을 무릅쓰고 일을 완수
한 뒤, 1563년 9월 17일 밤에 빈관(賓館) 옥하관(玉河館)에서 향년 52세
로 유명을 리하였다. 명나라 세종은 애도를 표하며 특별히 예부에 명하여 
자작나무로 관(棺)을 만들게 하고, 폐백은 자폐(紫幣, 자주색 비단)로 하여 
상례를 잘 치르게 하였다.

1563년 11월 25일, 우암의 부음을 들은 명종은 크게 슬퍼하여 조회를 이틀간 중지하고 소찬(素饌)을 
올리게 하였으며, 특별히 정헌대부 예조판서 겸 지경연 의금부사 홍문관대제학

 예문관대제학 지춘추관성균관사에 추증하였다. 또한 우암에게 전(田) 30결과 외거노비 5명을 하사하
였다.

1565년 정월 27일 여주 흥천면 귀백리 백양동에 우암의 묘를 안장하였으며 1580년 부인이 죽자 선생의 
묘에 합장하였다. 여주 귀백리는 우암의 고조부인 김환(金丸)이 충북 오창에서 이곳으로 입향한 이후 
(구)안동김씨가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다. 『우암집』에는 「묘표음기」가 실려있으나 현재 그 
비갈(碑碣)의 소재는 알 수 없다. 1590년(선조 23) 그의 공이 인정되어 광국공신(光國功臣) 3등으로 
화산군(花山君)에 추봉되었다. 시호는 문단(文端)이다.

우암은 1544년 임금에게 경서를 강의하는 시강관이 된 이후 『주역(周易)』·『강목(綱目)』·『서전(書傳)』
등을 진강하였는데, 특히 『서전』에 능통하였다. 우암은 36세되던 1547년(명종 2) 특정한 경전에 전공을
지닌 전경문신(傳經文臣)에 선발되었다. 이 당시 경회루에서 전경문신을 대상으로 강경을 할 때, 우암은 
『서전』에서 통(通)의 성적을 받았던 것이다.

1560년에는 문장양망(文章養望)으로 선발되어 왕명을 받들어 배율(排律)을 지어 올렸다. 이때 오상, 
정유길, 민기, 심수경, 이량, 이이, 임수 등 문장양망에 선발된 여러 사람들과 더불어 팔문장(八文章)이라 
불렸다. 즉 1560년(명종 15) 7월에 명종은 문장으로서 명망이 있는 신료를 선발하여 우대하는 정책을 
실시하였는데, 당시 선생의 나이 49세때 선발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몇가지 사실만으로 볼 때 우암의 
문학과 경학은 매우 높은 수준이었음을 알 수 있다.

기증된 유물 중 『광국지경록(光國志慶錄)』은 종계변무가 깨끗이 마무리된 1588년(선조 21)에 선조
임금이 종묘(宗廟)에 고하였는데, 숙종 때에 이르러 이를 다시 종묘에 고하고, 왕이 친히 지은 시에 
대하여 신하들이 지은 시를 모아 엮은 귀한 책이다. 1703년(숙종 29) 목판본 1책으로 간행하였다.
또한 우암 김주의 문집인 『우암집(寓菴集)』은 원래 모두 7권1책으로 엮어 기유년(1789, 정조13)에 
목판본(木版本)으로 간행되었으나, 내용이 소략하여 후손이 우암과 관련된 기록들을 보강하여 1934
년에 6권3책의 목활자본(木活字本)으로 중간(重刊)한 것이다.

안동김씨 문단공 종중에서는 이 『우암집』에 대해 국역사업을 추진하여 2005년 2월 27일 여주 봉황
부페에서 『국역 우암 김주문집』 출판기념회를 개최한바 있다.
안동김씨족보(安東金氏族譜)는 1778년(정조2)에 발간된 안동김씨 족보이다. 원래는 총 20권으로 제작된
 것인데, 현재 2권과 15권이 결실되어 18권만 남아 있다. 1권의 첫장에는 승정원 도승지 김광국(金光國 
1685~?)의 서문이 있다. 목판본으로 인쇄하였지만, 글씨가 뚜렷하고 정교하여 조선후기 족보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기사입력: 2010/08/26 [13:14] 최종편집: ⓒ 여주포커스

편집 2012.10.21 [20:52]

댓글목록

김발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발용
작성일

오늘은 문단공 우암 할아버님의 탄신 500주년이 되는 날.
문단공 관련 기사가 있어 옮깁니다.

김용주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용주
작성일

올려주신 글 잘보았읍니다.  참석하여 주셔서 고맙읍니다.

김영식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영식
작성일

탄신 기념행사에 멋진 사진 감사드립니다.뜻있는 기사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