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루 충렬공 시판 탁본(173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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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작성일12-06-14 14:25 조회3,023회 댓글6건본문
金方慶新羅敬順王之後父孝印高麗人高宗朝始仕征珍島耽羅日本皆有功官至僉議中書諡忠烈上洛公
山水無非舊眼靑
樓臺亦是少年情
可憐故國遺風在
收拾絃歌慰我行
辛巳歲東征日本班
師到福州題暎湖樓
上洛公 金方慶
敬次
十載前遊入夢靑
重來物色慰人情
壁間奉繼嚴君筆
金忻方慶子以蔭補刪定都監判官從父征日本有功官至都僉議司事加三重大
匡襲封上洛公
堪咜愚兒萬戶行
子上洛君 忻
樓爲水所漂此詩
無傳崇禎丁丑裔
孫光厚得於勝覽
移揭望湖樓歲月
已久板毁字漶十五
代孫知府濰改造以
揭之時
崇禎甲申後九十年癸丑秋
출처: 경주김씨 고문서집성(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0년)
댓글목록
김용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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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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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광 후)光 厚 선조님 이 맛는지는 잘모르지만 안렴사공파 병사공손 으로 증산현감을 하신분의 묘가 여주귀백리에 계십니다 년대가 비슷하네요
김태영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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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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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홍수로 떠내려간 영호루의 시판이 전해오지 않다가 숭정 정축년(1637년)에 예손 광후(光厚)가 발견하여 옮겨 걸었으나 세월이 오래되고 글자가 훼손되어서 15대손 유(濰)가 어사로 안동에 왔다가 1733년 가을에 개조하여 보기좋게 다시 걸었다는 내용 같습니다.
정확한 번역문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김유(金濰) 1685(숙종11) ~ 1748(영조24)
자(字) 여즙(汝楫). 1710년에 문과 급제하고 청요직을 거쳐 대사간(大司諫)에 이르렀다. 안동김씨 족보 기미보(1739년)의 서문을 썼다.
부사공 天順 - 담(談) - 대래(大來) - 진(鎭) - 인상(麟祥) - 인(軔) -
지사(地四) - 응하(應河) - 익련(益鍊) - 세귀(世龜) - 중우(重禹) - 유(濰)
김영윤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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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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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귀한자료와 해설 잘 보았습니다
김영환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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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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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복사해서 다시 새겨 걸어도 좋으련만.. 가능할런지요...
김태영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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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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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예손 김광후는 못 찾았습니다.
선조님중에 1637년대 인물 아시는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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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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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아저씨, 덕분에 귀한 보물을 편히 봅니다.
드디어 보물창고를 여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