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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정자 성립 천장 만 250언(金正字誠立遷葬挽二百五十言)_이수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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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작성일12-04-21 09:51 조회3,2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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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정자 성립 천장 만 250언(金正字誠立遷葬挽二百五十言)_이수광

이 자료의 원문은 한국고전번역원 『한국문집총간』의 『지봉집(芝峯集)』(이수광李睟光 지음)에서 퍼 왔습니다. 번역문은 공부삼아 작성한 것인데, 잘못 풀이한 곳이 많으니 혜량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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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란 당시 왜구에 맞서 장렬히 전사하신 정자공(김성립)에 대한 일면목을 살필 수 있는 몇 안 되는 글이다.
허난설헌에 비해 매우 왜곡된 정자공의 진면목이 밝혀질 날을 기다린다.

禁中錄 己酉十二月。止庚戌五月。 - 지봉(芝峯) 이수광(李睟光) 지음

金正字誠立遷葬挽二百五十言

金君我良執。氣高才絶倫。少小卽同袍。情如兄弟親。文藝妙一世。發軔靑雲春。奈何造物猜。長途淹驥足。壬辰海寇至。我赴嶺南幕。君時假記注。立語銀臺門。安知此一別。永作生死分。我還聞君訃。痛哭龍津夕。天乎何不仁。使君至此酷。無兒亦無壽。斯理諒難詰。扣心問天公。好惡一何謬。老洫彼何修。終身能守牖。凶短此何辜。才豐而命嗇。天公爲噓。謂我何迷惑。人生各有數。脩短非一道。曹蜍生固死。百歲未爲老。顏回死猶生。三十還非夭。壽亦何足喜。夭亦何足悼。達人貴信命。所以不怨天。天亦何爲哉。但各任其然。我聞天之言。心腸頗開豁。死生本回環。禍福相倚伏。君子盍勉旃。令名爲不朽。持此欲慰君。君其知也否。浩浩天壤間。萬事竟何有。
 

金君我良執。 김군은 나의 참된 벗으로
氣高才絶倫。 기개가 높고 재주가 매우 뛰어났는데
少小卽同袍。 어려서부터 허물없는 친구라
情如兄弟親。 정(情)이 형제처럼 친밀했다.
文藝妙一世。 군(君)은 문예(文藝)가 한 시대에 절묘하여
發軔靑雲春。 시작할 때에는 청운의 꿈으로 떨쳐 일어났건만
奈何造物猜。 어찌 조물주가 시기했던고
長途淹驥足。 장도에 오른 천리마를 막았네.
壬辰海寇至。 임진년에 해구(海寇)가 쳐들어와서
我赴嶺南幕。 나는 영남 군막(軍幕)으로 나아가고
君時假記注。 군(君)은 그때 가기주(假記注)라
立語銀臺門。 은대(銀臺) 문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었지.
安知此一別。 어찌 알았겠는가, 이 이별이
永作生死分。 영원히 생과 사를 가를 줄이야!
我還聞君訃。 내가 돌아와 군(君)의 부음을 듣고
痛哭龍津夕。 해 떨어진 저녁에 용진나루에서 통곡한다.
天乎何不仁。 아, 하늘은 어찌 매정하게
使君至此酷。 군(君)에게는 이토록 모질었는가
無兒亦無壽。 자식도 없고 오래 살지도 못했으니
斯理諒難詰。 이런 하늘의 이치 정녕모를레라.
扣心問天公。 가슴 치며 하늘에 묻노니
好惡一何謬。 하늘이 좋아하고 싫어함이 어찌 하나같이 이치에 어긋난단 말인가
老洫彼何修。 이 늙은이 하늘의 이치를 얼마나 닦아야 하나
終身能守牖。 한평생 좁디좁은 방구석만 지켜 왔건만!
凶短此何辜。 횡사(橫死)와 요절(夭折)이 무슨 허물이리
才豐而命嗇。 재주는 넘치는데 오히려 목숨이 짧았을 뿐
天公爲
噓。 하늘의 허허로운 탄식이
謂我何迷惑。 어찌하여 나를 미혹하게 하는가.
人生各有數。 인생은 제각각 운수(運數)가 있기에
脩短非一道。 목숨도 길거나 짧아서 똑같지 않다네.
曹蜍生固死。 조여(曹蜍 : 曹茂)도 태어나면 자연히 죽는 법
百歲未爲老。 백 세토록 늙지 않을 수 있겠는가
顏回死猶生。 그러나 안회(顔回)는 죽어도 여전히 살아 있으니
三十還非夭。 나이 서른은 오히려 요절이 아니네.
1)
壽亦何足喜。 장수했다고 어찌 기뻐하고
夭亦何足悼。 요절했다고 어찌 슬퍼하랴.
達人貴信命。 인생을 달관한 사람[達人]은 천명(天命)을 소중히 여겨서
所以不怨天。 하늘을 원망하지 않는 법
天亦何爲哉。 또한 하늘인들 달리 어찌 하겠는가
但各任其然。 다만 제각각 맡겨서 그에 따를 뿐.
我聞天之言。 하늘의 말을 들으니
心腸頗開豁。 가슴이 시원하게 트이네
死生本回環。 죽고 사는 것은 본래 돌고 도는 것이고
禍福相倚伏。 화(禍)와 복(福)은 서로 의지하고 숨는 것.
君子盍勉旃。 군자(君子)는 부단히 노력해서
令名爲不朽。 명성이 영원하나니
持此欲慰君。 그저 이런 말로 군(君)을 위로하는데
君其知也否。 군(君)은 아는지 모르는지.
浩浩天壤間。 가없이 넓고 넓은 하늘과 땅 사이에
萬事竟何有。 세상만사 끝내 무엇이 있겠는가.

: 인터넷으로 표현할 수 없는 글자.  (의).

 

註1) 조여(曹蜍 : 曹茂)도 태어나면 자연히 죽는 법~나이 서른은 오히려 요절이 아니네 : 조여(曹蜍)는 진나라 사람 조무(曹茂)의 자(字)이다. 『세설신어』 <품조((品藻)>에 “염파(廉頗)와 인상여(藺相如)는 죽었지만 늠름하여 생기가 있고, 조여와 이지(李志)는 살아 있어도 마치 죽은 사람과 같다.”고 하였다. 조여와 이지는 글씨를 잘 썼는데 기개가 없어 당시 사람들이 그들을 하찮게 여겼다고 한다. 이 말이 전하여 ‘조여이지(曹蜍李志)’는 ‘하잘것없는 인간’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이 구절은 대(對)를 이루고 있는데 조여처럼 하잘것없는 인간은 오래 살았어도 죽은 것과 마찬가지고, 공자의 수제자인 안회는 비록 31살의 짧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도 명성이 잊혀지지 않으므로 살아 있는 것과 진배 없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이와 동시에 정자공(서당공 김성립) 또한 왜적과 싸우다 31살(1562년~1592년)의 나이로 장렬히 순국하였기에 그 명성이 영원히 전해지리라는 뜻까지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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