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선생님을 모신 서원-계담서원-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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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작성일11-12-29 11:37 조회2,835회 댓글2건본문
계담서원(桂潭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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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충청북도 괴산군 감물면 ❏배향인물: 안 향(安 珦) 이 황(李 滉) 이 이(李 珥) 안문개(安文凱) 안종원(安宗源) 안숭선(安崇善) 이석형(李石亨) 김일손(金馹孫) 주세붕(周世鵬) 이지함(李之菡) 안명세(安明世) 안덕린(安德麟) 안 술(安 述) 최익현(崔益鉉) 김 구(金 九) 홍범식(洪範植) 연병호(延秉昊) ❏창건연대: 1824년(순조 24) ❏향사일: 봄. 가을 |
연 혁
1824년(순조 24), ‘계담사(桂潭祠)’로 창건돼 안명세(安明世) 선생의 춘추정필 정신을 기리어오다, 25년 후 하담(荷潭) 안 선생을 추배하고 있던 중, 고종 8년(1871년)에 전국 서원 훼철령에 의해 일부 부재로 망선암을 세우고 자손들에 의해 보존되어 오다, 지난 1991년 중산 안동준 옹에 의해 괴산, 연풍, 청안, 음성, 충주향교의 유림과 전교들의 찬의를 받고 성균관의 승낙을 받고 ‘계담서원’을 창건하게 된 것이다.
서원에 추서된 인물은 출생연대 순으로 안향(安珦) · 이황(李滉) · 이이(李珥) · 안문개(安文凱) · 안종원(安宗源) · 안숭선(安崇善) · 이석형(李石亨) · 김일손(金馹孫) · 주세붕(周世鵬) · 이지함(李之菡) · 안명세(安明世) · 안덕린(安德麟) · 안술(安述) · 최익현(崔益鉉) · 김 구(金 九) · 홍범식(洪範植) · 연병호(延秉昊)씨 등으로 18명현을 배향하고 봄, 가을로 나누어 두 번 제향 봉행하는 제례의식을 실천하고 있다.
배향인물
1)주벽-안향(安珦, 1243~1306)
고려 후기의 명신(名臣)·학자. 본관은 순흥(順興). 초명은 유(裕)였으나 뒤에 향(珦)으로 고쳤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들어와 문종의 이름이 같은 자였으므로, 이를 피해 초명인 유로 다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자는 사온(士蘊), 호는 회헌(晦軒)인데, 이는 그가 만년에 송나라의 주자(朱子)를 추모해 그의 호인 회암(晦庵)을 모방한 것이다. 밀직부사 부(孚)의 아들로 흥주(興州 :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군 풍기)의 죽계(竹溪) 상평리(上坪里)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강주우씨(剛州禹氏)로 예빈승(禮賓丞) 성윤(成允)의 딸이다.
1260년(원종 1) 문과에 급제해 교서랑(校書郎)이 되고, 이어 직한림원(直翰林院)으로 자리를 옮겼다. 1270년 삼별초의 난 때 강화에 억류되었다가 탈출, 1272년 감찰어사가 되었다. 강화탈출로 인해 그는 새삼 원종의 신임을 받게 되었다. 1275년(충렬왕 1) 상주판관(尙州判官)으로 나갔을 때에는 백성들을 현혹시키는 무당을 엄중히 다스려 미신을 타파, 민풍(民風)을 쇄신시키려 노력하였다. 그 뒤 판도사좌랑(版圖司左郎)·감찰시어사(監察侍御史)를 거쳐 국자사업(國子司業)에 올랐다. 1288년 우사의대부(右司議大夫)를 거쳐 좌부승지로 옮기고, 다시 좌승지로서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었다.
고려는 충렬왕대에 와서는 원나라의 완전한 속국이 되어 관제도 변경되었다. 원나라는 정동행성(征東行省)을 고려에 두었는데, 1289년 2월에 그는 이 정동행성의 원외랑(員外郎)을 제수받았다. 얼마 뒤 좌우사낭중(左右司郎中)이 되고, 또 고려유학제거(高麗儒學提擧)가 되었다. 같은 해 11월에 왕과 공주(원나라 공주로서 당시 고려의 왕후)를 호종하고, 원나라에 가서 주자서(朱子書)를 손수 베끼고 공자와 주자의 화상(畵像)을 그려 가지고 이듬해 돌아왔다. 3월에 부지밀직사사가 되었다.
1294년 동남도병마사(東南道兵馬使)를 제수받아 합포(合浦)에 출진했고, 이어 지공거(知貢擧)가 되고, 같은 해 12월에 지밀직사사
댓글목록
김영환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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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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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배향인물에 대한 상세한 자료는 짤렸습니다. 출처는 다음까페. 한국서원이야기입니다.
재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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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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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감물 계담서원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자료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