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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제현수첩(己卯諸賢手帖)-김공예. 김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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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작성일11-12-13 16:42 조회3,513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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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제현수첩(己卯諸賢手帖)
홍문관 박사 안처순(安處順:1493∼1534)이 부모 봉양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 갈 것을 주청하자 기묘사화 전년인 1518년(중종 13) 구례현감에 제수하였다. 이 때, 동료와 친구들이 이별을 아쉬워하며 써준 송별의 글을 모아, 안처순의 사후에 제책한 것이다.
1603년(선조 36) 김인후(金麟厚)의 발문과 함께 당시의 전라도관찰사 한준겸(韓浚謙) 등의 주선에 따라 한석봉(韓錫奉)이 표제를 쓰고 관청 소속의 장인의 손에 첩으로 만들어졌다. 1829년(순조 29) 전라감영에서 다시 제본한 것을 순흥안씨 종중에서 소장하다가 1994년 5월 2일 보물 제1197호로 지정하였다. 
여기에는 조광조(趙光祖)·성세창(成世昌)·김정(金淨) 등 사림파(士林派)의 기묘명현(己卯名賢) 24명 중에 우리 안동김문(安東金門)의 김공예(金公藝). 김익(金釴) 두 분 선조님의 시(詩)가 함께 수록 되어 있다.

[友人安順之 以弘文博士歸養 特除求禮縣 諸友皆歌詠其行 予亦述懷以贈]
친구인 안순지(安順之)가 홍문관 박사(弘文館博士)로 재직(在職)하다가 부모 봉양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청하자 주상(主上)이 특별히 구례 현감(求禮縣監)을 제수(除授)하였다. 이 때 여러 친구들이 모두 그의 떠나감을 노래로 읊거나 또는 회포를 써서 주다.


昵侍經筵過五春 / 경연(經筵)에서 가까이 모시고 다섯 번 봄이 지났으니
幾回千里望雲頻 / 몇 번이나 천 리 멀리 부모 생각에 구름을 바라보았는가.
一朝乞縣優辭許 / 하루아침 고을을 청하자 우대하여 허락하시니
五馬還南寵渥新 / 오마(五馬) 타고 남쪽으로 돌아감에 은총이 새롭네.
身上佩刀成氣像 / 몸에 찬 칼은 기상(氣像)을 이루었고
客中行盖出風塵 / 나그네의 일산(日傘)은 풍진을 벗어났네.
嗟余縶宦無休息 / 슬프다, 나는 벼슬에 매여 쉴 수 없어서
曾不江頭送故人 / 일찍이 강가에서 벗을 전송하지 못하네.


경연(經筵) : 조선시대에 왕에게 경사(經史)를 강독하고 국가의 중요한 일들을 논의하는 자리
오마(五馬) : 다섯 마리의 말. 전하여 태수(太守)를 달리 이르는 말. 원래 태수의 수레는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였는데, 이외에 한 마리의 말을 곁말로 따라 다니게 한 데서 이와 같이 부르게 되었음.

김공예(金公藝: 1485~1537)
자(字) 중아(仲雅)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부친은 현감 김계(金堦)이다. 일찍이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의 동부승지(同副承旨)와 예조참의에 이르렀다. 청백함을 스스로 지켰으며, 부모가 연달아 상을 당해 여묘(廬墓)를 짓고 살다가 상중에 별세하였다. “오래 살고 일찍 죽는 것은 천명에 달려 있으니 내 다시 무엇을 한하겠는가. 다만 국가의 은혜를 받았는데 털끝만큼도 보답하지 못하니, 이것이 마음 아프다”라고 하였다. 그의 묘는 충북 청원군 오창읍 양지리(陽地里)에 있으며, 묘갈문을 성세창(成世昌)이 짓고 김노(金魯)가 썼다.

[送順之赴任] 부임하는 순지(順之)를 전송함.

▲영가(永嘉) 군거(君擧) 김익(金釴)

蒼蒼萬生命 / 창창한 만백성의
憂樂在一人 / 근심과 즐거움이 한 사람에게 달려있다네.
皇天眷東方 / 황천(皇天)이 우리 동방을 도와서
聖明御楓宸 / 성명하신 군주 풍신(楓宸)에 계신다오.
宵旰肩一心 / 밤낮으로 한결같은 마음을 다하여
撫育以慈仁 / 인자(仁慈)하게 백성들 어루만지고 기르시네.
州郡或未宣 / 주군(州郡)에서 혹 선정을 베풀지 못하면
惠澤豈及民 / 은택이 어찌 백성에게 미치겠는가.
九重深且邃 / 구중궁궐 깊고 또 그윽하니
懷抱安能伸 / 회포를 어찌 잘 펴겠는가.
親民無過此 / 백성을 친애함은 이 수령보다 더함이 없으니
字牧當日新 / 백성을 날로 새롭게 애육(愛育)해야 하네.
旣富方有敎 / 넉넉하게 해주고 나서 가르쳐야 하니
率先不外身 / 솔선수범은 자신에게 벗어나지 않는다네.
躬行乃可推 / 몸소 행하여야 이에 미루어갈 수 있으니
仁愛自孝親 / 인과 사랑은 어버이에게 효도함에서 시작되네.
萬物苟得性 / 만물이 만일 본성을 얻는다면
境庶涵聖恩 / 온 백성들이 성은(聖恩)을 입으리.
譬如物萌芽 / 마치 식물에 싹이 터서
方遇天地春 / 천지의 봄을 맞는 것과 같다네.
民性古猶今 / 백성의 본성은 예나 지금이나 같으니
敎養先哲鄰 / 가르치고 기름은 명철한 신하를 먼저 해야 하네.
吏散民訟息 / 아전들 흩어지고 백성의 송사(訟事) 그치니
庭草寂無塵 / 뜰의 풀도 조용하여 먼지가 일지 않네.
竹影侵梅窓 / 대나무 그림자 매화 창가에 드리우고
風月若有欣 / 바람과 달은 기쁜 듯 맞이하네.
明窓棐几靜 / 밝은 창가에 비자나무 책상 조용한데
薰香事天君 / 향을 살라 천군(天君)을 섬기네.
聖賢卷裏對 / 성현(聖賢)을 책 속에서 대하니
天心養靜存 / 천심(天心)을 고요할 때 보존하여 기른다네.

김익(金釴: 1484~1548)
자는 군거(君擧)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부친은 경력(經歷) 언홍(彦弘)이다. 조광조(趙光祖)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519년 급제하여 언사(言事)를 담당 했다. 1519년 기묘사화에 조광조 등이 투옥되자, 유인숙(柳仁淑)·공서린(孔瑞麟)·홍언필(洪彦弼) 등과 함께 조광조와 같이 옥에 갇히겠다고 소(疏)를 올렸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1521년 송사련(宋祀連)의 무고로, 안당(安塘)·안처겸(安處謙) 부자 등이 처형된 신사무옥(辛巳誣獄)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 1545년 명종이 즉위한 후 용담현령 등을 지냈다. 묘는 경남 산청군 생초면 월곡리에 있다.

안처순(安處順: 1493~1534)
자(字)는 순지(順之)이고 본관은 순흥(順興)이다. 호는 기재(幾齋) ·사재당(思齋堂)이며, 남원 출생으로 1514년(중종 9)에 문과 급제하였다. 홍문관박사 ·로 있다가 구례 현감으로 나아 갔다. 1519년 기묘사화로 파직, 축출되었으나 1533년에 복직되어, 성균관학관(成均館學官) ·경성교수(鏡城敎授) ·전적 ·양현고주부(養賢庫主簿) ·봉상시판관 등을 역임하였다. 조광조가 이끈 중종대의 사림파에 가담하였다. 구례현감으로 부임할 때 국왕에게 향교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임지에서 《근사록》을 간행하여 보급하였다.남원시의 영천서원(寧川書院)에 제향되었다.안처순에게 보내진 서찰을 모은 서간집. 『기묘제현수첩(己卯諸賢手帖』이 보물 제1198호로 지정되어 전한다.

  

댓글목록

김영환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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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귀한 자료 잘 보았습니다.  김공예선조님의 필체를 감상할 수 있네요.
김익 선조님의 글은 안 보이네요.

김용주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용주
작성일

안렴사공파 승지공 휘 김공예 할아버님의 친필 잘보았읍니다
제학공파 정언공 휘 김익 할아버님의 친필이 안보입니다.
대부 귀한자료 올려주셔서 감사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