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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내연산 보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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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작성일11-11-16 12:29 조회3,898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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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내연산 보경사

 충렬공 시제 참례후 아버님이신 상서공(휘 효인)의 유묵이 남아 있는 보경사에 들렸다.

 보경사는 602년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신라 지명법사가 진평왕에게 '동해안 명산에서 명당을 찾아 자신이 진나라의 도인에게 받은 팔명보경을 묻고 그 위에 불당을 세우면 왜구의 침입을 막고, 이웃 나라의 침입도 받지 않으며 삼국을 통일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진평왕이 지명법사와 함께 내연산 아래에 있는 큰 못에 팔면보경을 묻고 못을 메워 금당을 건립하고 보경사라고 했다. 경내에는 보경사원진국사비(보물 252)와 보경사부도(보물 430)가 있으며 조선 숙종의 친필 각판 및 5층석탑 등이 있다.

 대사성을 지낸 단양이씨 李公老(?-1224)가 비문을 짓고 당대 명필이신 상서공(휘 孝印;?-1253)할아버님께서 직접 쓰신 원진국사 승형(承逈;1187-1221)의 탑비이다. 이 비석은 1224년(고종 11)에 세워졌는데, 귀부(龜趺)는 화강암, 비신(碑身)은 사암이다. 귀부와 대석(臺石)은 한 개의 돌로 구성되어 있고 비좌(碑座)는 폭이 배면과 거의 같은 정도의 넓이로 주위에 단엽(單葉) 44연판(蓮瓣)을 새겼으며 그 위에 비신을 얹었다. 귀두(龜頭)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처럼 조각하였고 거북 등에는 육각형의 무늬 안에 ‘왕(王)’자가 질서있게 새겨져 있다. 비석의 위쪽 양끝을 귀접이한 신석(身石) 둘레에는 당초문(唐草文)을 새겨 장식하였다. 비석 둘레의 조식은 고려시대 비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며, 이수(螭首)가 없는 귀접이 형식도 비교적 하대(下代)에 속하는 보광사대보광선사비(普光寺大普光禪師碑:보물 107)와 조선시대에 속하는 억정사 대지국사비(億政寺大智國師碑:보물 16) 등에서 볼 수 있는 형식이다.

  이 탑비를 뒤로하고 왼쪽으로 전각들을 따라 산쪽을 조금 올라가면 원진국사의 부도(사리탑)이 있다. 이 부도도 보물43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못보면 후회할 것 같아 이곳에 들리시면 꼭 돌아보시기 권한다. 원진국사비각의 현판은 전에 왔을때에는 일중 김충현의 글씨로 한글현판이었으나, 지금은 탑신에 새겨진 상서공의 필체를 옮겨 만들었다.

 

 

보경사를 뒤로하고 내연산 30리 계곡에는 12개의 폭포와 기암절경이 어우려져 가벼운 산행도 또한 즐거움을 더 하니 시간 되시면 꼭 한번 들려보시기 바랍니다.

 

 

댓글목록

김영환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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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사진을 사진방에 올려 등록하려니 잘 안되어 우선 직접 올렸습니다.  잘 아시는 분 도와 주십시요. [46번 우리 홈에 사진 올리는 법]대로 해도 잘 안되네요.  좀 더 연습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