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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연습- 경북 예천 용궁 회룡포와 삼강주막(내성천,반변천, 낙동강을 이룬 산 삼거리 물 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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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중 작성일11-11-12 02:47 조회4,7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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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포원경  ( 9월과  11월의 전경입니다 상쇠놀이 농악대 모습을 각색의 벼로 심었더군요)

 

낙동강변의 전통한옥과 서원건축, 봉화의 닭실마을에서 안동의 병산서원까지
글·사진 / 김경래(OK시골 대표, 월간 마을 발행인)
낙동강 상류에는 지류인 내성천과 반변천이 흐른다. 낙동강은 내성천과 반변천을 만나야 비로소 낙동강다운 모습을 갖추게 되는데 그 주변으로 전통한옥과 서원 등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우리나라 산천에서 나는 목재로 지은 100년이 넘은 집들을 찾아보았다.


강원도 태백에서 발원한 낙동강은 봉화, 안동, 예천을 거친 후 영남의 공업지대 젖줄이 되어 남해로 흐르는 강이다. 낙동강 상류에는 경관이 수려한 마을들이 많아 예로부터 집성촌, 종택, 유명한 서원들이 많다. 대표적인 곳이 안동을 중심으로 한 봉화와 예천이다. 이들 지역은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과 반변천이 흐르며 그 물길을 따라 전통 한옥 등 많은 건축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 전통 목재로 지은 유서 깊고 아름다운 집들이다.
봉화에서 가장 유서 깊은 마을은 닭실마을이다.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 상류인 봉화군 봉화읍 유곡1리에 자리 잡고 있다. 닭이 알을 품고 있는 지세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었는데 영남 4대 길지 중 한 곳이다. 조선 중종 때 문신 충재 권벌이 이곳에 정착해 청암정을 짓고 후학을 양성하면서 안동 권씨들의 집성촌이 되었다. 권충재는 안동출신으로 연산군 때 대과에 급제해 개혁정치를 했던 인물이다.
닭실마을 주변은 울창한 소나무 숲과 아름다운 암석으로 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지금은 도로가 생기면서 봉화에서 고개를 넘어 진입을 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마을 입구의 석천계곡을 통해 들어왔다. 계곡의 중간쯤에는 석천정사가 있고 좀더 안으로 들어오면 닭실마을이 있다. 양지 바른 곳에 충재 권벌의 종택이 있는데 종택 마당 끝에는 청암정이란 정자가 있고 그 아래 충재가 있다. 청암정은 크고 넓은 거북모양을 한 자연석 위에 올려 지은 정자로 빙 둘러 연못이 만들어져 있다. 그 주변으로는 향나무, 왕버들나무, 단풍나무, 소나무가 우거져 있어 운치를 더한다.
봉화를 떠나 내성천 물길이 닿는 곳은 영주다. 영주 내성천은 낙동강의 모양새를 닮아 강폭이 넓고 모래사장이 발달했다. 이곳에서 만나는 대표적인 마을이 무섬마을이다.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에 있어 수도리전통마을이라고 하는 무섬마을은 영주시 평은면을 지난 내성천과 영주의 서쪽을 관통하는 서천이 합류하는 곳에 있다. 마을의 3면을 내성천이 감싸고돌기 때문에 마을은 하나의 섬처럼 보인다.
마을이 생긴 것은 1250년께로 거슬러 올라간다. 반남 박씨인 선비 박수가 터를 잡은 후 250여 년 전 박씨 문중과 혼인한 예안 김씨도 뿌리를 내렸다. 번성할 때는 120여 가구가 살았던 마을이었다.
영주를 지난 내성천은 예천으로 흐른다. 예천에서 만나는 내성천의 백미는 선몽대다. 퇴계 이황의 종손이자 문하생인 우암 이열도가 1563년 세운 정자다. 선몽대가 유명한 것은 정자 그 자체보다 주변의 경치 때문이다.
선몽대를 지난 내성천은 용문면에 이르러 회룡포라는 또 하나의 절경을 선보인다. ‘육지 속의 섬’으로 불리는 이 마을은 안동 하회마을이나 영주 무섬마을과 같은 ‘물돌이마을’이다. 회룡포는 용이 비상하는 것처럼 내성천 물이 휘감고 돈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물이 태극무늬 모양으로 350°를 휘감고 돌아가며 만들어 놓은 마을 모양은 풀잎에 매달린 물방울과도 같다. 강변을 따라 펼쳐진 백사장은 산속에서 특이한 경관을 자랑한다.
회룡포를 용이 승천하듯 휘돌아 내성천이 닿는 곳은 삼강주막마을이다. 이곳에서 내성천은 금천을 만나 낙동강으로 어우러진다. 세 물길이 만난다고 하여 삼강마을이고 강을 건너기 위해 선비들이나 장사꾼들이 모여들어 배를 알아보던 곳이라 주막이 번성했기에 주막거리라 불렀다. 지금은 왕복 4차선으로 다리가 놓여 있어 쉽게 낙동강을 건널 수 있지만 예전에는 배를 이용했다. 그렇게 사람들이 모여 나루가 되었고 주막이 생겼다. 이곳 삼강나루터에는 대홍수가 나기 직전인 1934년까지 보부상과 사공들의 숙소가 있었다. 당시에는 안동과 예천, 봉화, 영주, 청송, 영양 등 경북 북부지방은 물론 영월 등 강원도 남부지방의 길손과 보부상까지 삼강나루를 찾았다. 장날이면 나룻배가 하루 30여 차례나 오갈 만큼 분주했다. 2005년, 이곳에서 70년간 주막을 운영하던 주모 유옥년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경상북도는 그 문화·역사적인 가치를 인정하여 2005년에 민속자료로 지정했다. 2007년에 초가지붕을 한 주막의 옛 모습과 보부상 및 사공숙소를 복원해 관광객을 받고 있다.
낙동강의 지류 중 반변천 주변으로도 유서 깊은 마을들이 많다. 반변천은 경북 영양군 북쪽에 솟아 있는 일월산에서 발원해 남쪽으로 흐르다 영양읍 북쪽에서 장군천을 만나 청송군을 거쳐 안동시로 들어오는 물길이다. 반변천 하류에 임하댐이 있고 댐을 거치면 곧바로 안동 시내가 된다.
반변천변의 대표적인 마을이 안동 임하의 내앞마을이다. 내앞이란 이름은 반변천이 앞에 있어 붙은 이름으로 영남의 4대 길지 중 한 곳이다. 의성 김씨 종택이 있는데 규모가 크다. 55칸이나 되는 저택으로 내부구조도 복잡하다. 행랑채가 일직선으로 자리 잡고 그 가운데 대문이 나 있다. 집안에는 동쪽에 □자형 안채가 있고 대문과 마주보는 쪽문 서쪽에 사랑채가 있다.
내앞마을을 지난 반변천은 안동시내에서 낙동강과 합류한 후 풍산의 들판을 서서히 적시며 풍천으로 흘러든다. 낙동강이 풍천으로 들면서 만나는 명소가 병산서원이며 이어 물길이 닿는 곳이 하회마을이다. 낙동강변의 가장 아름답고 유서 깊은 마을이고 낙동강에서 가장 가치 있는 지역으로 낙동강의 백미가 바로 이곳이다.
안동시내에서 풍천면을 찾아가면 우선 하회리를 만날 수 있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하회마을을 다녀가면서 더욱 유명해진 전통마을이다. 낙동강이 감싸고돌면서 만들어 놓은 절묘한 모양의 명당이다.
이름 값 때문에 다른 전통마을과 다르게 하회마을은 그 주변이 매우 번화하다.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고 다양한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다. 주차비와 입장료를 따로 내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상업화가 많이 되었다.
이런 분주함을 뒤로하고 하회마을 앞을 지나 낙동강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비포장길을 만날 수 있다. 비포장길을 타고 산굽이를 돌아가면 만날 수 있는 마을이 풍천면 병산리다. 병풍처럼 펼쳐진 낙동강변의 산이 있어 병산이라 부르는 곳으로 병산서원이 있어 더욱 아름다운 마을이다. 병산서원은 조선시대 서원 건축물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전신은 고려 말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으로 풍산 유씨의 사학이었는데, 1572년에 유성룡이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병산서원 앞으로 배롱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그 앞에 출입문인 복례문이 있다. 복례문을 들어서면 강의실인 만대루가 높다랗게 있고 그 안쪽으로 건물들이 계단과 함께 겹겹이 포개져 보인다. 정면의 끝에 서원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인 입교당이 있고 양 옆으로는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있다. 서책과 목판을 보관하는 장판각과 사당인 존덕사가 뒤편에 자리잡고 있다.
병산서원이 아름다운 것은 건물 어느 곳에 있든 앞을 내다보면 병산이 가득 들어오고 산 밑을 흐르는 낙동강과 백사장도 건물 안까지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병산서원은 그렇게 늘 열려 있는 공간이다.
낙동강 물길은 병산서원 앞을 지나게 되는데 4㎞(10리) 정도 내려가면 하회마을이 있고 하회마을을 지난 낙동강은 예천의 삼강주막에서 내성천을 만나 몸집을 키운다.

 

 
 
봉화 닭실마을 전경
 
예천의 내성천변 선몽대 앞 백사장
 
봉화 닭실마을의 청암정과 충재
 
영주 내성천변에 자리잡은 무섬마을
 
반변천변 내앞마을의 의성 김씨 종택의
 
 
 
우리나라 서원건축의 백미로 꼽히는 안동 풍산의 병산서원
 
내성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예천 삼강주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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