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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영의정공 사적비건립 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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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호 작성일11-06-19 12:53 조회1,443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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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제위에게

증 영의정공 휘 홍도 사적비 건립 축시를 별첨 파일로 로딩합니다.

마음을 담은 글로 읽어 보아 주시고 의견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사적비 비문에 나오는 "귀인시책"에 대하여 책문한 내용이 하도 송골하여 이 면을 통해 소개합니다.

당시 휘 홍도할아버님의 대쪽같은 선비의 사상과 의지와 용기가 어떠했는지를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贈領議政公 諱 弘度 碑文中 貴人試策에 관한 策問資料

▣조선왕조실록, 명종 11년 병진(1556,가정 35), 5월5일 (임술)▣

사예 김홍도가 지어 올린 대책을 가지고 관원에게 책문을 시험하다

사예(司藝) 김홍도(金弘度)가 지어 올린 대책(對策)을 가지고【선시 선종(善始善終)의 글제로 삼아 독서당(讀書堂) 관원에게 책문(策問)을 시험하였다.】 정원에 전교하기를,

홍도의 대책【*.】을 보니, 비록 그 뜻은 나라를 걱정하고 임금을 사랑하는 정성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으나 말이 대체로 오활하여 번잡하고 절실하지 못하다. 전일의 대책【전일에도 독서당 관원에게 책문을 시험했다.】 역시 이와 같더니 이번의 대책 또한 이와 같다. 정원에서는 이런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하였다.

정원이 아뢰기를,

김홍도의 대책으로 인하여 전교가 계시니, 신들은 몹시 의혹스럽습니다. 예로부터 인군이 책문을 내는 것은 반드시 방정(方正)하고 극간하는 사람을 취하고자 함이요, 신하가 대책하는 데는 반드시 시대의 잘못을 구제하고 인군의 그른 마음을 바르게 할 수 있는 말을 진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언한 말이 임금의 마음에 거슬려도 반드시 도(道)에서 구하는 것입니다. 신들이 지금 김홍도의 대책을 보니, 옛사람들이 진언하던 뜻을 깊이 얻었는데도 상께서 그의 말이 대체로 번잡하다고 여기시니, 신들은 언로(言路)에 방해될까 두렵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정원에서 나의 생각을 자세히 알지 못하고서 아뢰었다. 그의 견해가 절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연히 내 의사를 말하였을 뿐이지, 간하는 말을 듣기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하였다.

【*김홍도의 대책은 대략 다음과 같다

1. “신이 듣건대, 옛날에 재변을 응대하는 데는 실질적인 것으로 하였고 겉치레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商)의 태무(太武)가 덕을 닦자 상곡(桑穀)이 죽었고 송경공(宋景公)이 선언(善言)을 하자 형혹성(熒惑星)이 물러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상께서 몸을 삼가시는 실효(實効)가 없고 신하들은 하늘을 감동시킬 성심(誠心)이 부족하여, 자신을 책망하고 말을 구하는 것이 옛일에 빙자하는 허식에 지나지 않고, 재변을 만나 사면(辭免)하는 것이 책임만 메우려는 일상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2. 왜구가 겨우 물러가자 연회가 빈번히 거행되고 혜성(彗星)이 겨우 없어지자 금방 정전(正殿)으로 돌아오셨으며, 상께서 늦은 밤에 생각하시는 일이란 고작 내수사(內需司)에 소속된 집을 복호(復戶)해주는 것과 환관들이 쓸 학사(學舍)에 대한 것뿐이고, 공경대부들이 올리는 건의란 고작 삿갓[笠]의 높낮이나 옷소매의 넓이에 대한 일일 뿐입니다. 그러니 천재(天災)와 시변(時變)이 거듭 나타나는 것이 과연 무엇이 괴이할 것이 있겠습니까?

3. 아! 당(唐)의 명황(明皇)·덕종(德宗) 같은 유종의 미를 바라기란 역시 어렵지 않겠습니까. 천명(天命)은 한번 끊어지면 다시 이을 수 없고 인심은 한번 떠나면 다시 합할 수가 없는 것인데, 백 년 사직의 귀중함과 억만 창생의 생명을 전하께서는 어찌 척연(惕然)히 염려하실 것을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대신은 국가의 일은 이럭저럭 처리하면서 자기 집만을 이롭게 하고 소신(小臣)은 유유히 시간이나 보내면서 제 몸만을 보존하고 있으며, 대간(臺諫)은 오로지 상을 공격하는 것으로 비원(備員)의 계책으로 삼고 수령(守令)은 재상을 잘 섬기는 것으로 발신(發身)의 계책으로 삼습니다. ▶군상(君上)의 명이 경상(卿相)에게 행해지지 않고 조정의 영(令)이 군현에 행해지지 않으며, 언로가 막히어 선비들의 습속이 날로 꺾여가고 부세(賦稅)를 거두는 것이 너무 가혹하여 백성들의 원성이 날마다 늘어갑니다. 외진 지역에는 무기를 든 도적이 많고 변방(邊方)에는 난을 일으키는 백성이 있으니 전하께서는 시국(時局)이 어떠한 때리고 생각하십니까?

4. 신은 진승(陳勝)과 오광(吳廣)같은 사람이 진(秦)나라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적미(赤眉)와 황건적(黃巾賊)이 한(漢)나라에만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두렵습니다. 그러므로 신은 끝마무리를 삼가라는 말로써 전하를 위하여 아뢰겠습니다.

5. 아! 재변을 삼가면 나라가 다스려지고 재변을 소홀히 하면 혼란해집니다. 전하께서는 수년 전에 우종(雨種)의 이변이 있을 때는 곧 널리 고사(古史)를 상고해 보라고 명하시더니, 지금은 위태로운 많은 재변이 계속 이어지는데도 심상한 일로 보고 계시니, 이는 재변을 근심하는 염려가 차츰 끝맺음을 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6. 신은 바라건대, 늘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간(諫)하는 이를 상주면 나라가 흉하고 간하는 것을 막으면 망하는 법입니다. 전하께서 즉위하신 처음엔 잠(箴)을 지어 올리는 자가 있으면 포상하시는 은전(恩典)이 있더니, 오늘에는 초야에 있는 선비들이 곧은 말을 한 번이라도 진언하면 오히려 언책(言責)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바른말 듣기를 즐겨하는 정성이 점차 끝맺음을 온전히 못하는 것입니다. 신은 원컨대 항시 곧은 말을 너그럽게 용납하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저기 관광이나 하고 안락에 처함은 옛사람들이 경계한 것인데 근일 거둥하는 사이에 자못 이를 즐기는 일이 늘어가니, 신은 편안히 노는 것을 일삼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7. 총명을 자부하는 것은 식자(識者)들이 우려하는 바인데 근일에 정사를 처리함에 있어서 너무 좀스러운 조짐이 많으니 정사를 지나치게 좀스러이 처리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잗단 예절을 자랑하지 말라는 것은 소공(召公)이 경계한 것인데, 오늘날 무역에 있어서 금법이 점차 허물어지고 있으니, 신은 기이(奇異)한 물건을 귀하게 여기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여알(女謁)이 많은 것은 성탕(成湯)이 자책하던 일인데, 지금 뇌물을 바치는 길이 점차 열려지고 있으니 신은 근습(近習)들에게 가려지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은혜와 포상이 함부로 베풀어지는 것은 도리어 요행의 길을 열어 놓는 것입니다. 그런데 근년 이래로 나라를 속이는 일이 풍속이 되어 왕성(王成)처럼 거짓으로 호구(戶口)를 늘여 속임수로 작위(爵位)와 상(賞)을 받는 자가 있습니다.

8. 허위의 조짐을 자라나게 해서는 안 되니, 신은 명분을 따르고 실질을 책려하시기를 바랍니다. 형벌이 그 죄에 맞지 않으면 단지 그 당시만 넘기려는 폐단이 생기는 것인데 근년 이래로 기강이 확립되지 않아 하휘(何徽)처럼 적의 풍문만 듣고 허물어져 달아나고도 목숨을 보존한 사람이 있으니 이와 같은 쇠약한 조짐을 자라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신은 바라건대 법에 의거하여 정죄하시기를 바랍니다.

9. 환관들이 제멋대로 날뛰는 것은 예부터 있어온 걱정거리입니다. 내수사 제조(內需司提調)를 설치한 이래로 그들의 간여가 사실상 많아지고 있습니다. 신은 바라건대 환관들에게는 소제(掃除)하는 일만을 맡기기를 바랍니다.

10. 이단(異端)의 흥행은 오늘날에 있어서 커다란 걱정거리입니다. 선종(禪宗)과 교종(敎宗)에 물들은 이래로 그들과 교통(交通)하는 조짐이 날로 심해집니다. 신은 바라건대 승려들이 맘대로 그 세력을 펴지 못하게 하기를 바랍니다.

아, 무릇 이 열 가지 조짐의 잘못이 있게 된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느슨해지고 하찮게 여기는 마음이 방자해진 데서 기인한 것입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경계하시고 삼가소서.”】

사신은 논한다. 홍도의 책문은 당시의 병폐를 절실하게 지적한 것이다. 비록 제술시험으로 인하여 발표한 것이기는 하지만 실로 오늘날 식자들 모두가 같이 걱정하는 일들이다. 상이 그 진언을 아름답게 여겨 포상, 권장하더라도 군왕의 위엄 아래에 오히려 언자(言者)들이 말하지 않을까 두려운데, 하물며 노골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낯빛을 보이는 데이겠는가. 오늘날의 내수사(內需司)의 폐단과, 환관들의 거리낌 없는 행위와 승려의 급격한 증가는 한심하다고 할 만하다. 요컨대 이 몇 가지의 폐단들은 전적으로 상께서 간하는 말을 따르지 않는 데에서 연유한 소치이니, 슬프다.

사신은 논한다. 김홍도의 책문은 단지 끝을 삼가기를 처음과 같이 해야 된다는 말로써 당시의 폐단을 낱낱이 열거하면서 가끔 기롱과 풍자의 말을 하였을 뿐이고 실제로 과격한 말과 바른 의논으로 임금을 지적하여 인주(人主)의 노여움을 격동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상께서 이미 간언을 듣기 싫어하는 마음이 있어 스스로 자기의 지혜를 만족히 여겨 선언을 듣기를 좋아하지 않은 모습이 사람을 천리 밖에서 막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조정에는 상의 면전에서 직간하는 신하가 없고 초야에는 임금께 항표(抗表)하는 선비가 없게 된 까닭이다.

【원전】 20 집 336 면

【분류】 *정론(政論) / *인사(人事) / *역사-사학(史學)

● [주D-001]대책(對策) : 과거 과목인 제술(製述)의 하나. 곧 경전(經傳)의 뜻이나 정치에 관한 문제 등을 묻는 데 대하여 자기의 견해를 진술하는 것. 책문(策問).

● [주D-002]상곡(桑穀)이 죽었고 : 상과 곡은 모두 나무 이름. 은 태무(殷太武) 때 상과 곡이 조정 뜰에 나서 하루 만에 한 아름이나 자랐다. 그것을 본 태무가 두려워서 이척(伊陟)에게 물으니 이척이 “요얼(妖孼)은 덕을 이기지 못한다고 했는데 제(帝)의 정치에 결점이 있는가 봅니다. 그러니 제께서는 덕을 닦으소서.” 하였다. 태무가 그 말에 따라 덕을 닦으니 상과 곡이 말라 죽었다는 고사(故事). 《사기(史記)》 권2 은본기(殷本紀).

● [주D-003]송 경공(宋景公)이 선언(善言)을 하자 형혹성(熒惑星)이 물러갔다고 합니다. : 임금이 선심(善心)을 가지고 있으면 모든 재앙을 물리칠 수 있다는 뜻. 춘추 시대 송 경공 때 형혹성(熒惑星)이 송 나라의 분야(分野)에 나타나자 경공이 모든 잘못을 자신에게 돌리고 자책하니, 형혹성이 물러갔다는 고사. 《사기(史記)》 권38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

● [주D-004]왕성(王成)처럼 거짓으로 호구(戶口)를 늘여 속임수로 작위(爵位)와 상(賞)을 받는 자가 있습니다. : 한 선제(漢宣帝) 때 사람으로 교동상(膠東相)이 되었을 적에 매우 정치를 잘한다는 명성이 있었다. 유민(流民) 8만여 구(口)를 안집시킨 공으로 관내후(關內侯)에 봉해졌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왕성이 거짓으로 호구(戶口)를 증가해 보고하고서 상을 받았다.” 고도 했는데, 이를 가리킨 말. 《한서(漢書)》 권89 순리전(循吏傳).

 

 

 

 

김상호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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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남애공(영상공)과 경수묘역을 소재로 한 명 축시를 잘 감상했습니다. 그리고 남애공(영상공)의 조정과 국가를 위한 굳건하고 날카로운 귀인 시책도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