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의 발길 따라 중국을 가다.-다섯째 날 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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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11-04-02 20:12 조회2,457회 댓글4건본문
선조의 발길 따라 중국을 가다.-다섯째 날 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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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주에서 꿈과 같은 이틀간의 답사여행을 마치고 2011. 3.21(월) 09:05분 항주 백서국제호텔에서 체크아웃하고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및 노신[루쉰, 구 홍구(훙커우)]공원을 탐방하기 위하여 출발하였다.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 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다. 그것도 많은 내리는 것이 아니고 조금씩 추적추적 내린다고나 할까 그렇다. 또 여행 중이지만 오늘이 월요일이란 생각을 하니 괜시리 월요병의 증세가 잠시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버스 안에서 가이드가 우리의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하여 중국의 이모저모에 대하여 설명을 해주었다. 중국에서는 잉어 요리가 나왔을 때 머리 부분은 손님, 꼬리부분은 접대하는 사람, 즉 돈을 내는 사람이 먹고, 좌석에 앉을 때도 동쪽에 앉는 사람이 돈을 낸다고 한다. 회전식 식탁에 앉았을 때 손님은 입구 쪽의 반대편 정 중앙자리에 앉고 주인은 입구 쪽으로 앉는다. 백주[배갈]용 유리잔에 모서리가 조금 튄 잔이 나오는데 중국에서는 오래된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오히려 더 좋게 생각한다고 한다. 우리는 튀거나 금이 간 유리잔이 나오면 당장 방방 뛸텐데. . . . .
중국에서는 산중의 산을 안휘성의 황산(1,860m)이라 하는데 ‘황산을 보고 나면 오악을 보지 않는다.'고 하고 서양 사람들은 ’황산을 보고나면 동양화를 이해한다.‘고 할 만큼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산이다. 황산을 관광하기에는 4월 중순부터 5월 말까지가 가장 좋은 시기라고 한다. 참고로 오악이라 함은 동악 산동성의 태산(1,532m), 서악 협서성의 화산(2,437m), 남악 호남성의 형산(1,265m), 북악 하북성의 항산(2,052m), 중악 하남성의 숭산(1,512m)이 그것이다.
09:59분 비가 계속 내리는 중에 가흥 인근의 한 휴게소에 들려 잠시 의관을 정제할 휴게시간을 가진 다음 이내 상해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또다시 무료함을 달래려고 넌센스 퀴즈며, 장기자랑을 하며 이동을 하였다. 예를 들어 산토끼의 반대말(거꾸로 된 말) 7개는? 즉시 ①끼토산 ②집토끼 ③죽은토끼 ④염기(알카리)토끼 ⑤강(바다)토끼 ⑥훔친토끼 등 뭐 이렇게 6개를 즉시 맞췄다. 마지막 하나를 맞추지 못하여 숙제로 내줬는데 오늘 상해 탐방을 마치고 호텔로 들어온 늦은 시간에 재영아저씨 영부인께서 전화를 주셨다. 숙제 내준 것 알아냈다고, ⑦판토끼라고, 우아 대단한 집념이라 아니할 수 없다.(다음날 답 판토끼를 맞추신 이야기를 일행에게 말함)
[동지걸대주점]
어쨋거나 이렇게 한담과 잡담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11:50분 중국요리의 대명사 격인 광동 요리집 동지걸대주점에 도착하여 중국요리의 진수를 맛보았다. 이 시각에도 비는 추적거리며 계속 내리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지 : 상해시 노만구 마당로 306-4호]
[상해 임시정부 청사 입구]
12:49분 동지걸대주점을 출발하여 13:14분 백범 김구선생의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에 도착하였다. 상해는 양자강[양쯔강]의 하류인 황포강[황푸강]이 흐르고 있다. 그래서 황푸강 동쪽을 푸동지구라 하고 서쪽을 푸서지구라고 한다. 그리고 독일 폴크스바겐 공장이 상해에 있어 시내 택시가 모두 폴크스바겐 일색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북경[베이징]의 택시는 우리 한국의 현대자동차 공장이 있어 현대차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상해는 1842년 아편전쟁의 결과로 맺은 난징조약 이후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열강의 조계지로 나뉘게 되었는데 상해 임시정부 청사는 프랑스의 조계지 내에 있었다.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창설되어 수차에 걸친 이전 끝에 1926년 7월 이곳 보경리 4호(현 마당로 306롱 4호)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가 1932년 4월 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 의거 이후 일부는 가흥으로 일부는 항주로 옮겨갔다. 외부에서 본 청사 건물은 적색 벽돌로 지은 3층 건물인데 보수를 하였다고 하나 허름하기 그지없다. 이 청사는 상해시 정부와 대한민국 독립기념관 등 한·중 양국의 협조로 이곳을 떠난지 60년만인 1993년 4월13일 1차 복원하였고, 2001년 12월 건축물을 전면 보수하고 전시 시설을 확장하여 역사에 길이 남을 유적지로 단장하였다.
[좌측이 앞면, 우측이 뒷면임 : 사진은 실제 모양보다 큼]
그러나 안내 책자도 없음은 물론 그 흔한 안내 팜플렛이라고 해야 손바닥 반정도 크기에 불과하다. 부끄럽다 못해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심정일까?
[백범 김구선생 흉상]
시청각교육실에는 한국 백범 김구기념사업협회에서 기증한 백범 김구선생 흉상이 모셔져 있다.
[독립군들이 사용하였다는 태극기]
[부엌]
[백범 김구선생 집무실]
청사 건물 내부 또한 비좁은 편인데 독립군이 사용하였다고 하는 태극기도 걸려 있고, 부엌, 김구 선생의 집무실, 부속실, 전시실도 있고, 매헌 윤봉길 흉상도 모셔져 있다.
[매헌 윤봉길의사 흉상]
이렇게 백범 김구선생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해 임정정부 창사 탐방을 마치고 나니 13:40분이다. 탐방 후의 소감은 앞으로 조금 더 신경을 써서 외관 보존에 노력하고 관련 책자도 제작하여 판매하고 안내 팜프렛도 제대로 제작하여 배부하였으면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들은 상해를 방문하게되면 한번은 반드시 이곳을 탐방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그런 시공의 장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입장료는 15위안(2,700원/1인)이다.
[중국 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자대회 개최 건물]
[공산당대회 건물을 지나서 소광장]
상해 임정청사에서 걸어서 2~3분 거리에는 중국 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자대회(1921. 7.23)가 열려 중국 공산당이 탄생된 2층 건물이 있다.
[루쉰공원(구 홍구공원) 북문]
다음은 윤봉길 의사가 1932년 4월29일 일본 국왕의 생일축일인 천장절과 상해사변 승리 축하 기념식에서 도시락 폭탄을 던져 상해사변의 승장 시라카와 대장과 일본인 거류민단장 가와바다를 폭살 의거한 홍구[훙커우]공원, 현 노신[루쉰]공원을 탐방하였다. 노신[루쉰]공원은 상해 임시정부 청사에서 20분 거리에 있다. 입장료는 15위안(2,700원/1인)이다. 한국 충청남도에서 태어난 윤봉길 의사(호:매헌)는 현장에서 체포되어 그 해 12월 19일 일본 가나자와에서 25세의 장렬한 일생을 마쳤다.
[루쉰공원안에 소공원 '매원'이 있고 이곳에 윤봉길의사 기념관 '매헌'이 있음]
[윤봉길의사 기념관 매헌이 있는 매원 입구]
[윤봉길의사 업적소개 및 의거현장 표석]
[윤봉길의사 기념관 '매헌']
[매헌 윤봉길의사 영정과 흉상]
[매헌 윤봉길의사에게 주었다는 백범 김구선생 시계]
[이 사진 앞에서 무슨 말이 필요한가!]
[매원 앞 루쉰공원 호수]
[매원 앞 루쉰공원 호수]
루신공원에도 봄비는 계속 내리고, 봄비에 백목련과 개나리가 희고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기 일보직전이다. 공원길을 따라 들어가면 호수 못미처 좌측으로 공원 안에 정원과 기와집이 보인다. 바로 윤봉길의사 기념관 매헌이 있는 매원이다.
[매헌 윤봉길의사 의거터 : 팬지로 장식된 장소임]
[루쉰동상과 묘가 있는 곳]
[루쉰 동상]
[루쉰 묘 : 루쉰 묘 앞이 윤봉길의사 의거장소임]
그리고 이곳에서 1~2분 거리에 팬지꽃으로 장식된 윤봉길의사 의거터가 있고 그 뒤에는 노신 묘와 동상이 있다. 노신[魯迅, 루신, 1881~1936]은 중국 근대문학을 확립시킨 문인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큐정전(阿Q正傳)》이 그의 대표작이다.
[9곡(曲)다리]
[만두 안을 빨아 먹는 것으로 이름난 집]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상해 방문시 들렸다는 음식점]
[상해의 이름난 정원 '예원' 입구]
15:15분 노신공원 탐방을 마치고 30분 거리에 있는 상해 옛거리를 관광하였다.
[오미관]
[오미관에서]
상해 옛거리에서 17:00시 까지 자유시간을 가진 후 17:30분 석식 장소인 오미관에 도착하여 저녘식사를 하였다.
[상해서커스 상설 공연장]
[상해서커스 상설공연장 로비]
[곡예사들이 서커스 공연이 모두 끝나고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는 장면 / 우측 구형통이 오토바이 경연장]
19:30분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상해서커스를 관람하러 갔다. 요금은 180위안(32,400원/1인)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남녀 곡예사가 흰 천으로 된 끈에 매달려 공중에서 펼쳐 보이는 아슬아슬한 가슴 졸이는 곡예연기였고, 다음은 둥근 구형 통 안에 오토바이 7대가 들어가 펼쳐 보이는 오토바이 곡예였다. 예전에는 오토바이 8대가 들어가 곡예를 펼쳤으나 사고가 발생하는 바람에 7대로 줄였다고 한다. 오토바이 곡예사 월급은 한국 돈으로 약 800만원/월 정도라고 한다.
21:00시 오늘의 모든 일정을 끝내고 21:40분 무한에서 상해로 왔을 때 묵었던 진데일리호텔로 다시 돌아와 여장을 풀었다. 내일 아침 모닝콜은 07:00시, 출발시간은 08:30분이다.
댓글목록
김윤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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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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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이번 답사여행에 대한 글과 사진을 올리는데는 여러가지 한계가 있습니다. 함께 다녀오신 모든 분들이 사진도 올려주시고 미흡하고 빠진부분은 채워주셔야 하겠습니다. 특히 상대 감사님의 사진은 원낙 사진의 량이 방대하고 또 락이 잠겨 있는 부분도 있고 하여 시간이 많이 거리겠습니다. 간추려서 홈페이지에 추가로 올려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김상호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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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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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윤만 선생 참으로 훌륭하오이다. 선조의 발길을 찾아 이렇게 열성을 다하시는 모습 배울점이 많습니다. 나는 이리 저리 핑게만 가지고 국내에 있는 선조사적지도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는데...
하여간 감개무량입니다. 이번에 중국 선조사적지 답사에 참가하신분들께 칭송을 드립니다.
김정중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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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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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여행중에도 동분서주, 여행후엔 이렇듯 대작을 내놓으시니 존경스럽네요.
너무 부담 갖지 마시고요.
마지막날분도 염치없이 기대합니다.좋은날 되세요~!!
김상대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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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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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열성에 감사를 드립니다.
기행과 관련하여 올려주신 사진들을 총 6개의 폴더로 올려드렸으나 2개의 잘못된 폴더의 형성으로 잠금장치가 있는 것으로 혹자 오해가 있으셨을 듯합니다. 사실은 저를 도와주고 있는 여직원의 미숙으로 빈 폴더가 형성되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미흡했었던 점에 대해서 양해를 구합니다. 혹시 제위께서 올린자료가 유실된 점이 있다면 다시 한 번 확인하신다음 올려주시면 공유하는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webhard.co.kr(kplsd)입니다. 011-328-0781 김상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