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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의 발길 따라 중국을 가다. 둘째 날-삼협, 형주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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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11-03-27 08:25 조회2,326회 댓글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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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의 발길 따라 중국을 가다. 둘째 날-삼협, 형주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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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가호텔 썬샤인레스토랑]

  3월 18일(금) 07:00시 모닝콜 이전에 일어나 목욕재계하고 영가호텔 1층 썬샤인레스토랑에서 아침식사를 뷔페식으로 하였다. 우리의 다음 답사여행지인 삼협[싼샤]는 의창에서 약 40K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데 이동에 걸리는 시간은 약 1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이동하는 도중 회화나무와 같은 상록수가 가로수를 이루고 있는데 잎이 회화나무보다 큰 것으로 볼 때 회화나무는 아닌 것 같다. 추정컨대 항주에서 본 향단나무가 아닌가 한다. 삼협댐을 가려면 전용도로를 이용하여야 하는데 이곳을 통과하려면 이곳만의 현지가이드 안내가 필수적이다. 이 가이드의 역할은 전용도로 통과까지만 도우미 역할을 하고 하차한다. 우리는 작년까지만 해도 중국에서 가장 길고 지금도 호북성에서는 제일 긴 3660m의 터널을 통과하고[작년에 8590m의 터널이 새로 완공됨] 다리 아래로 펼쳐진 협곡과 장강 건너편에 펼쳐진 기암괴석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삼협댐을 향하여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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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뚱 모습을 지닌 모공산]

  전용도로에서 현지가이드의 설명이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저 산봉우리 가운데 모택동[마오쩌뚱]이 누워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하여 다들 쳐다보고 아! 그렇구나하고 신기해하는데 나만 보이질 않고 이해가 되질 않는다. 심호흡을 하며 생각을 달리하여 몇 번을 다시 바라다보니 그제서야 모택동이 누워있는 모습이 보였다. 삼협댐 입구 주차장에서 하차하여 삼협댐 셔틀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검사장으로 갔는데 삼협댐의 중요성에 비례하여 중국공안의 안전검사가 까다롭게 진행되었다. 의창시 인구는 460만명으로 1985년까지만 하여도 단순한 중국의 농촌마을이었다고 하는데 1986년부터 삼협댐 공사가 시작되면서 기술자 및 관계자 가족이 살게 되면서 형성된 도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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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협댐 모형]

  장강 삼협은 중국 최대의 강이자 이집트의 나일강, 브라질의 아마존강, 미국의 미시시피강과 함께 세계 4대 하천의 하나인 양자강[양쯔강]이 사천[쓰촨]대분지에 모여들어 중경[충징]에서 가릉강과 합류, 거대 물결이 구당협(瞿塘峽)과 무협(巫峽)을 거쳐 서릉협(西陵峽)으로 빠져나가는데 바로 이 세 협곡을 일컫는 총칭이다. 삼협 중에서도 가장 물살이 거센 곳이 무협으로 그 폭이 30m 밖에 안되어 양자강의 거센 물결이 빠져나오는 소리가 10리 밖에서도 들릴 정도로 요란하였다고 한다. 댐을 막기 이전에는 어찌나 물살이 빨랐던지 척약재 할아버지 시 〈파촉〉에도 배를 타고 올라가지 못하고 100여명의 선원이 배를 끌고 올라갔다는 묘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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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협댐 최고봉 185고지 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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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협댐에 사용된 사면체 구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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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협 최고봉 185고지에서 보는 삼협일대 전경 : (좌)수문과 수력발전 (우)선박 통과 갑문]

  우리가 이곳 삼협을 답사여행을 하고자 하는 목적은 척약재 김구용 할바버지가 유배 중 이곳 삼협을 통과하면서 남긴 몇 편의 시가 있기 때문이다. 척약재께서 행례사로 명나라로 떠난 것은 1384년 1월 15일이었고, 공께서 사천성 노주[쓰촨성 루저우] 영령현 강문참에서 병사하신 것은 7월 11일이었다. 척약재께서 명나라의 수도 남경으로 압송되어 가서 운남성 대리[윈난성 따리]로 유배길을 떠난 것은 적어도 한 달쯤 뒤였을 것으로 운남 유배 한시는 약 5개월에 걸친 기간 중에 창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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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문과 수력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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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문 윗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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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문 아래쪽]

  유배를 당하게 된 이유는 행례사로 요동에 갔던 척약재께서 고려와 요동의 도지휘사 사이에 사사로이 교통하였다는 점과 그 자문에 ‘馬五十匹’을 ‘馬五千匹’로 잘못 적어서 명 태조가 ‘말 오천필’을 요구하였으나 그것을 조달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고려 조정에서의 친원파와 친명파 사이의 정치적 대립이 바탕에 깔려 있고, 친명파에 속하는 김구용에 대해 친원파였던 이인임 등이 명 태조의 요구를 묵살함으로써 결국 유배당하게 된 사정이 있었다고 본다.

  척약재께서 삼협을 통과하면서 지으신 한시 한편과 공마(貢馬) 5,000필(명 태조 주원장은 원나라와의 싸움에서 많은 말이 필요하였고, 따라서 고려 조정에 매년 말 1,000필과 금 은 등 다수의 품목을 조공하라고 요구하였는데, 고려 조정은 5년동안 말을 보내지 못하였음)로 인하여 운남 성 대리[윈난성 따리(건축자재 중 대리석이란 이름은 바로 대리석이 많이 나는 이 지명 대리에서 유래한 것임)]로 유배를 가시면서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당뇨병을 지니셨던 당신의 건강에 대한 안타까움을 노래한 한시 두편을 소개한다. 이 한시들은 척약재 할아버지를 대표할 수 있는 명시로서 후세에도 많은 시인들에게 회자되었던 한시이다.   

 

[帆急(범급) / 돛단배가 빨라서]

帆急山如走(범급산여주) / 범선이 빠르니 산은 달리는 듯하고

舟行岸自移(주행안자이) / 배가 나아가니 언덕은 절로 움직이네.

異鄕頻問俗(이향빈문속) / 타향이라 자주 풍속을 물어보고

佳處強題詩(가처강제시) / 아름다운 곳이라 억지로 시를 짓네.

 

吳楚千年地(오초천년지) / 오나라와 초나라가 천 년을 누린 땅인데

江湖五月時(강호오월시) / 강과 호수는 오월의 시절이네.

莫嫌無一物(막혐무일물) / 물건 하나도 없다고 싫어하지 말게

風月也相隨(풍월야상수) / 바람과 달이 응당 서로 따르고 있네.

 

暮宿淸江口(모숙청강구) / 날이 저물어 맑은 강어귀에서 자며

籬邊繫小船(리변계소선) / 울타리 가에 작은 배를 매어 두네.

隔牕聞鶴唳(격창문학려) / 창 너머로 학의 울음소리를 듣고

欹枕伴鷗眠(의침반구면) / 베개에 기대어 갈매기를 짝하여 자네.

 

霧重山仍雨(무중산잉우) / 안개가 짙더니 산에는 비가 내리고

風恬浪作煙(풍념랑작연) / 바람이 조용하니 물결은 안개가 되네.

曉看茅屋處(효간모옥처) / 새벽에 띳집이 있는 곳을 보니

淳朴一山川(순박일산천) / 순박하기가 다 같은 산천이네.

 

山漸周圍水漸淸(산점주위수점청) / 산은 점점 둘러싸고 물은 점점 맑아지는데

泝流船疾浪花生(소류선질랑화생) / 올라가는 배 빨라지니 물결 꽃이 피어나네.

茂林脩竹無人處(무림수죽무인처) / 무성히 자란 대나무 숲속 사람이 없는 곳에

時聽幽禽一兩聲(시청유금일량성) / 때마침 두마리 새 울음소리 그윽히 들려오네.

 

[感懷1(감회1)]

十幅雲帆一信風(십폭운범일신풍) / 열 폭 구름 돛 사이로 미풍이 불고

江山都是畫圖中(강산도시화도중) / 강산은 아름다운 그림 같은데

誰知萬里西征客(수지만리서정객) / 그 누가 알리오, 만리 서쪽으로 유배 가는 몸

心與滄波日夜東(심여창파일야동) / 마음은 물결 따라 동쪽 고국으로 향하는 것을


[感懷2(감회2)]

死生由命奈何天(사생유명나하천) / 죽고 사는 운명 천명을 어찌하랴

回首扶桑一惘然(회수부상일망연) / 머리 돌려 동쪽 고국 바라보니 아득하구나.

良馬五千何日到(량마오천하일도) / 좋은 말 오천 필은 언제나 보내주려나

桃花門外草芊芊(도화관외초천천) / 복사꽃 핀 문밖에는 풀들만 우거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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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협댐 위 장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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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협댐 최고봉 185고지에서]

 

  이곳 삼협댐에서의 관람시간은 2시간이다. 삼협댐에서 가장 높은 곳은 185고지인데 전망대가 있다. 이 전망대에서 삼협댐, 5단계 갑문 등 삼협의 장강일대를 한 눈에 볼 수가 있다. 삼협댐에서 배가 갑문을 통해 오르는데 1단계에 40분이 소요되어 댐 위까지 오르는데 걸리는 시간은 200분(3시간 20분)이 소요된다고 한다. 삼협댐은 2006년도에 완공되어 담수를 하는데 3년이 걸려 2009년 8월 경 수위 175m에 43억톤의 물을 담은 세계 최대의 댐이 되었다. 이러한 세계 최대의 댐을 완공하기까지에는 120만명의 이주민이 발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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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협기념공원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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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협기념공원에서 본 삼협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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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협댐을 배경으로 인증샷]

 

  12:00경 삼협을 출발하여 온 길을 되돌아 의창, 형주으로 향한다. 형주 답사여행 또한 척약재 할아버지의 시가 있기 때문이다.

 

[형주(荊州)]

行到江陵憶仲宣(행도강릉억중선) / 행차가 강릉에 이르러 중선을 추억하는데

登樓賦語至今傳(등루부어지금전) / <등루부>의 말이 지금까지 전해지네.

天涯流落知誰甚(천애류락지수심) / 하늘 끝에 유락한 것을 누가 알겠는가?

回首雲南最可憐(회수운남최가련) / 운남을 향해 머리 돌리니 가장 가련하네.

 

漢家昭烈倚關張(한가소렬의관장) / 한나라 소열제는 관우와 장비에게 기대었는데

無命其如感歎長(무명기여감탄장) / 그와 같았어도 천명이 없었으니 탄식이 길어지네.

流水浮雲千古態(류수부운천고태) / 흐르는 물과 뜬 구름은 천 년 전의 모습이니

至今愁殺武安王(지금수살무안왕) / 지금까지 무안왕(관우)을 대단히 근심스럽게 하네.

 

表裏淸和美丈夫(표리청화미장부) / 겉과 속이 맑고 온화한 미장부가

相逢說盡洞庭湖(상봉설진동정호) / 동정호에서 서로 만나 이야기를 다하였네.

荊州惜別情懷惡(형주석별정회악) / 형주에서의 애석한 이별에 정회가 사나우니

他日巴陵憶我無(타일파릉억아무) / 훗날 파릉에서 내가 없음을 추억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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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구룡대주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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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곤한 끝에 버스에서 잠깐 잠을 잔 사이에 형주고성에 도착하였다. 시계를 보니 13:40분이다. 호북성 형주시 중급인민법원 앞에 있는 금구룡대주점에서 현지식으로 점심식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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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주고성 관광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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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주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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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 후 형주고성에서 문루가 남아있고 크기가 가장 크며 가까운 동문을 구경하였다. 동문에는 형주고성이 1982년 국무원에 의해 전국 24곳의 명성 중에 하나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다. 또 성과 성문이 옹성으로 이중구조로 되어 적군이 앞 성문을 깨뜨리고 들어오게 되더라도 뒷 성문에 막혀 그야말로 독안에든 쥐 모양이 신세가 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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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주고성 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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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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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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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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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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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 : 왼 손에 창이 들려 있었으나 떨어져 나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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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 : (전좌)유비, 제갈공명 (후좌)장비, 관우, 조운]

  형주성은 삼국시대 촉한의 관우가 축성했다고 전한다. 관우는 이 형주성을 10년간이나 지켰으며, 따라서 이 성에는 관우와 관계되는 유적이 많다. 특히 이곳은 옛날부터 전략적으로 요충지였기 때문에 역대 정권들은 이 지역을 확보하려고 쟁탈전이 벌어졌으며 삼국시대에는 수많은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르면 관우는 이곳에서 전사하여 목은 조조가 있는 낙양으로 가 그곳에 묻혔고, 몸은 이곳 형주에 묻혀 결국 관우의 묘는 두 곳이라고 한다. 형주고성의 전체 모습과 인증샷을 찍기 위하여 밖으로 나와 해자와 어우러진 형주고성의 경관을 구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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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주고성과 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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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증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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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봉등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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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국제공항(국내선)

  15:40분 형주고성을 출발하여 1시간 남짓 달린 끝에 휴게소 한 곳을 들린 후 18:44분 무한공항에 도착하였다. 이곳 무한공항 국내선 출입구에 있는 ‘성양방’에서 현지식으로 저녁식사를 푸짐하게 한 후 국내선 중화남방항공 편을 이용하여 상해 포동[푸둥]국제공항으로 이동하기로 되어 있다. 오늘 저녁까지 5끼니를 현지식으로 하였는데 기름기가 많은 음식이라 그런지 아니면 소화가 되기도 전에 또 식사를 하게 되어 그런지 아무튼 뭘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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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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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양방 내부]

  저녁 후 탑승장으로 옮겨 어제 오늘 2일동안 우리를 잘 안내해주었던 김성민 씨와 고정범 씨, 그동안 수고 많았다는 인사를 나눴다. 20:00시 안전검사를 마친 후 20:40분 출발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데 염려하지도 않았던 비행기가 20분이나 지연 도착을 하였다. 따라서 21:00시에 야간비행을 한 끝에 22:17분 푸동국제공항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푸동국제공항은 서울 인천국제공항과 1~2위를 다투는 규모를 가지고 있다. 이곳 푸동국제공항에서도 현지가이드로 역시 교포출신인 현청송 씨가 우리를 안내해 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버스가 22:50분 출발하여 1시간 여 상해에 관한 일반상식을 들으면서 진데일리호텔로 향하였다. 푸동공항에서 시내까지는 약 35km 떨어진 거리이다. 푸동공항에서 룽양루역까지 직통으로 자기부상열차가 운행하고 있는데 최고시속 431km로 약 1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제 자기부상열차는 상해의 명물이 되었다고 한다. 23:50분 진데일리호텔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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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 진데일리호텔]

  이동 간에 가이드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상해는 동서 120Km, 남북 100Km로 서울의 10배 크기이고, 인구는 2,300만명이지만 호적상 인구는 1,300만명이라고 한다. 이것은 아무나 상해 시민이 될 수 없는 것이고 상해 시민에게는 그만큼 큰 특혜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상해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은 약 15만명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중국에는 23개성, 5개 직할시, 5개 자치구, 2개 특별행정구가 있는데 상해는 북경[베이징], 천진[톈진], 중경[충징], 광동[광저우] 등 5개 직할시에 포함되어 국가적으로 중점도시로 육성시키고 있다고 하며,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수준이 높은 도시가 광동성의 심천[선전], 그리고 상해, 항주[항저우], 북경 순이라고 한다. 내일 아침 모닝콜은 07:00시 다음 답사여행지 가흥으로의 출발은 08:3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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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해 진데일리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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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데일리호텔 레스토랑]

 

댓글목록

김주회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주회
작성일

  金九龍大酒店
(깜짝이야)백범 선생님 술 드시던 술집???
참고로, 중국에서는 酒店, 飯店, 賓館은 호텔(여관)이구요
술집은 食堂이에요.
옛날 중원에서는 객관은 술 마시고 밥 먹는 집이라고 생각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주점, 반점은 호텔이에요.

김정중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정중
작성일

  저는 金九容大酒店 인데 용자를 잘못 쓰건가 생각(ㅎㅎ) 했습니다
척약재 할아버님의 답사길이라서......
***
마오쩌뚱 모습을 지닌 오봉에서 오봉은 모공산(毛公山) 이라지요.

김상석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상석
작성일

  선조님들의 발자취를 따라 떠난, 중국기행! 잘 보았습니다. 함께하지 못하여 섭섭하고 안타깝지만 또 다른 여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었던 좋은 기회라 여기며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유익하고 알찬 기획으로 방안을 모색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윤만님의 후기에 답글 올립니다! - 호연지기 

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작성일

  잘 읽고 있습니다.

김상대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상대
작성일

  안사연의 활동에 늦게나마 참여하게 되어 감개무량하며 함께하면서 많은 것을 일깨우고 왔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