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루에서 고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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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11-03-23 16:03 조회1,847회 댓글3건본문
고 유 문
안동김씨사이버학술연구회 회원 일동이 선조님의 발자취를 따라 중국 답사여행 중에
이곳 황학루에 들려 척약재 할아버님에 대한 감회가 남달라 간단한 주과포를 올립니다.
명나라 홍무 갑자년(1384년) 할아버님께서는 명태조의 명령으로 현재의 남경을 떠나
운남 대리로 유배길에 오르셨습니다. 채석을 지나 황주, 관음굴을 거처 4월 말쯤
이곳 황학루를 지나 가신 듯 합니다. 이곳에서 지으신 황학루라는 시는 우리나라에서
600여년동안 후학들이 가장 많이 음미한 시로서 정평이 나 있을 정도입니다.
‘黃鶴樓前水湧波 沿江簾幕幾千家 醵錢沽酒開懷抱 大別山靑日已斜;
황학루앞 물결은 솟구치는데, 강가의 수천집이 있어도, 돈 모아 술사서 회포를 풀고 있네,
대별산은 푸르고 해는 이미 기울었구나 ’라고 번역을 해보지만 어찌 그때의 할아버님의
심정을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할아버님과 포은선생께서 함께 오르셨던 다경루를
꼭 답사하고 싶었습니다만 현재 보수중이어서 못 가보는 것이 아쉽기만 합니다.
멀리 타국에서 절친한 친구와 우연히 만나게 되어 다경루에 올라 회포를 푸셨을 당시의 정경이
눈앞에 아른 거립니다. 그 후 할아버님께서 순국하시고 2년 후 포은 선생께서 다시
다경루를 찾아 할아버님을 그리며 시를 지으신 것을 저희들은 오늘도 다시 외워 봅니다.
‘先生豪氣蓋南州 憶昔同登多景樓 今日重來君不見 蜀江何處獨魂遊;
선생의 호기가 중국 남쪽을 뒤덮었었는데 함께 올랐던 다경루를 생각하고
오늘 다시 찾아왔건만 선생은 뵐 수 없군요,
양자강 어느 곳에서 홀로 외로은 넋만 떠 다니시는가? ’
포은선생님의 이 시를 읊어보면서 그 때 선생의 절절한 느낌을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오늘 후손들이 할아버님의 유배길 중 양자강의 삼협을 비롯하여 형주성까지 가보려고 합니다.
생각같아서는 할아버님께서 돌아가신 노주 영녕현 강문참까지 가서 혼령께 제사라도
지내고 싶었습니다만 여건이 만만치 않아 다음을 미루었습니다.
할아버님의 종증조부이신 문영공께서 직접 쓰신 비석이 있던 고려혜인사도 방문하여
지금은 없어졌다고 하는 비석의 파편이라도 찾아보았으면 합니다.
아울러 우리 민족의 영원한 스승으로 존경받는 후손 백범선생의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와
숨어 지내시던 가흥도 답사하면서 백범선생의 조국독립을 위한 처절한 투쟁과
거룩한 뜻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이번 답사여행이 선조님의 숨길을 느끼면서 후손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조심스럽게 정리하고자 하오니 저희들의 가상함을 굽어 살펴 주옵소서.
간단히 술 한 잔 올리오니 흠향하시옵소서.
17대손 영환 삼가 지음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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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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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가슴 뭉클한 제문 잘 읽었습니다.
모두 건강히 다녀 오셨다니 다행입니다.
김상호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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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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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김영환님의 열정에 감복했습니다. 이처럼 조상을 위해 노력하는 분이 또 계실까.?
안사연에 참여하시는 분에 대해서는 늘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도 이렇게 좀 열심히 잘해야지 하는 마음을 늘 갖게 합니다.
김상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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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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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선조님들께서 남기신 족적의 편린을 찾아 분주한 발걸음을 하셨을 대원들의 얼굴이 생생합니다. 많이 부럽습니다. - 진취적 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