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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님의 발자취를 따라 중국 답사여행(7)-항주 육화탑, 서호, 성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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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11-03-16 11:02 조회1,8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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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화탑(六和塔 ; 리우허타)

북송 개보(開寶) 3년(970년)에 지어진 것으로, 전당강(錢塘江) 북쪽 연안에 위치해 있으며 전단강의 대역류를 막고자 하는 기도를 반영하여 세운 탑이다.

이탑의 이름인 육화(六和)라는 의미는 원래 불교에서의 규약인 '육합(六合)' 즉, '천지사방(天地四方)'의 의미다. 당시 건축계의 거장인 유호(喩皓)가 ≪목경삼수(木經三首)≫를 근거로 하여 설계하여 외관은 13층이며, 내부는 7층으로 나선형 계단을 이용하여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다. 전체 높이는 59.89m이며, 중국 목조 건축 분야의 걸작으로 평가되어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중 하나로 지정되어 있다.

지금은 항주에서 꼭 들러가는 유명 관광지로 탑에 올라 전경을 감상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육화탑에는 전당강과 관련된 전설이 있다. 전당강은 바다쪽 매우 넓은 하류가 위로 올라오면서 병목처럼 이 육화탑 앞에서 갑자기 좁아져 가끔 바닷물의 역류 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전당강은 바다처럼 파도가 치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강에 속한다고 한다. 특히 음력 8월 18일 전후의 만조때가 되면 시속 25Km로 5미터 내외의 높은 파도가 쳐서 해난사고가 가끔 일어난다. 심할 때는 10m 해일까지 일어났다고 안내원이 설명한다.

전당강에서 고기잡이을 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한 어부가 있었다. 그런데 이 어부가 어느 날 높은 파도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 이때는 강물이 가끔 해일을 일으켜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던 때이다. 어부의 아들은 아버지를 뺏어간 강물을 원망하며 날마다 전당강가 높은 바위에 올라가 강물을 향해 돌팔매를 하였다.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눈이오나 비가오나 강물을 향해 돌을 던지니 물 속의 용왕은 그 소리와 물결로 정신이 어지러웠다 요즘말로 스트레스를 받아 신경이 예민해진 것이다. 용왕은 신하를 시켜 그 이유를 알아보게 했다. 신하가 강 밖으로 나와 돌멩이를 던지고 있는 소년을 만나 그 까닭을 물었다. 그리곤 돌아가 용왕께 그 사연을 보고했다. 용왕은 소년의 아버지를 위한 위령탑을 세우게 하고 앞으로는 8월 18일 만조때를 제외하곤 큰 해일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소년에게 약속했다. 소년도 용왕의 뜻을 받아들이고 그 이후론 돌팔매를 하지 않았다.

지금 육화탑이 있는 곳은 파도가 높고 해일이 범람하는 전당강의 강가에 있다. 따라서 옛날부터 강물에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많은 현장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원혼들이 주변을 맴돌았을 것이다. 그 사람들을 위한 위령탑은 다음에 올 재난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살아있는 사람들의 간곡한 기도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여기에 탑을 세우고 사람들은 빌었다. 강물이여, 범람하지 마소서! 우리 가족을 보호해 주소서! 전당강가 육화탑 전설은 이래서 현실성을 갖는다.

서호(西湖)

아름다운 여인 서시(西施)를 닮은 서호(西湖 ; 시후)

서호는 항주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유명한 4대미인(서시,양귀비,왕소군,초선)중 하나인 서시(西施)를 기념하는 의미로 '서자호(西子湖)'라고도 불린다. 서시에 대해서는 실제 인물인지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월나라 왕인 구천(勾踐)이 오나라의 왕 부차(夫差)에게 바쳤던 인물로, 결국은 구천의 계략대로 오나라왕 부차가 서시의 미모에 빠져 나라일을 돌보지 않게 되었고, 오나라가 멸망에 이르게 되었다. 중국의 역사상 양귀비 등과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미인으로 꼽힌다. 서호는 삼면이 산으로 둘러 쌓여 있으며, 호수에는 소영주, 호심정, 완공돈 등 3개의 섬이 떠있다. 총 면적은 60.8㎢이며, 그 중 수역의 면적은 5.66㎢이다. 서호는 안개가 끼었을 때나, 달 밝은 밤 또는 일출 때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준다.

서호 10경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은 단교잔설(斷橋殘雪), 평호추월(平湖秋月), 소제춘요(蘇堤春曜), 곡원풍하(曲院風荷), 화항관어(花港觀魚)다.

단교잔설은 민화 백사전 속에서 백소정과 허선이 만난 무대가 된 곳이다.

평호추월은 넓이 400평방미터의 전망대며, 소제춘요는 소동파가 쌓은 둑인 소제는 철따라 아름다움이 변한다. 곡원풍하는 소제의 북서에 펼쳐진 풍경으로 여름에 특히 아름답다.

또 화항관어는 봄에 모란꽃을 보며 용정차를 마실 수 있는 운치있는 곳이다.

오산성황각(청황거 [城隍閣] )

황악루, 등왕각, 악양루와 더불어 이른바 '중국 강남 4대 누각'으로 불린다. 높이 41.6m의 7층 건물로 오나라 왕 손권(孫權)이 진을 쳤던 곳으로 유명한 우산[吳山, 오산] 꼭대기에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의 난간에 오르면 동편으로는 첸탕강(江)의 모습, 북쪽편으로는 항저우의 시가지를 볼 수 있으며, 서쪽으로는 시후호(湖)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항저우의 야경을 바라볼 수 있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누각 1층에는 항저우시 공예연구소 직원을 비롯한 1만여 명이 투입되어 2년 동안 3억 원의 제작비를 들여 만든 <남송항성풍정도(南宋杭城風情圖)>라는 유명한 입체 조소작품이 있다. 이 작품은 길이 31.5m, 높이 3.65m 규모로 1,000여 채의 가옥과 3,000여 명이 넘는 인물을 통해 남송시대의 생활풍속과 시후호의 전설, 10대 민간고사 등을 표현하고 있다. 2층에는 소동파, 백거이 등 항저주 역사에서 의미있는 인물 28명의 조각 등 다양한 조각상이 있으며, 3층에는 찻집이 들어서 있다. [출처] 청황거 [城隍閣 ] | 네이버 백과사전

성황각의 아래에는 청나라 시대부터 열려오던 야시장이 있습니다. 역사가 오랜 야시장이니 만큼 매우 번화 하였으며, 중국인들과 외국 관광객들이 북적 댑니다. 사람이 북적대다 보니 소매치기도 많습니다. 이곳을 가실때는 항상 개인 물품을 잘 챙기셔야 합니다.

청화방옛거리 용정차농원

항주에는 유명한 요리도 많이 있습니다. 첫번째로 꼽는것이 항주의 거지닭입니다. 항주 거지닭의 유래는 예전 거지들이 닭을 잡아 땅 속에 파묻어 놓았는데, 황제가 이곳을 지나가다가 그곳에서 노숙을 하게 되었답니다. 닭을 파 묻은곳 위에서 모닥불을 피웠는데 맛있는 향기가 나서 그곳을 파보니 노릇노릇하게 익은 닭이 나와 먹어보니 그 맛이 일품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궁중에 들어가 그 방법대로 요리를 지시하였고 그 요리가 거지닭의 유래 입니다. 거지닭은 닭의 내장을 제거하고 그 속에 버섯과 야채를 넣고, 연잎으로 감싼뒤, 황토를 발라 익힌 닭입니다. 우리의 황토오리 요리와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지만, 우리 입맛에는 잘 맞는 편은 아닙니다. 또 한가지의 유명한 요리는 동파육입니다. 동파육은 소동파선생이 즐겨 먹었다고 해서 이름이 붙혀 졌다고도 하고, 소동파 선생이 직접 개발했다고 해서 이름이 붙혀 졌다고도 합니다. 동파육은 돼지의 삼겹이나 오겹살 부위를 기름에 튀긴뒤 간장에 오래도록 조려서 먹는 요리입니다. 우리의 입맛에도 잘 맞는 요리입니다.

항주하면 용정차의 산지로도 유명합니다. 용정차는 원래 용정이라는 샘물 이름에서 유래 하였다고 하며, 용정이라는 샘 주위에 용정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그 절에서 키운 차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용정차는 깊은 향과 부드러운 맛, 맑은 녹색, 그리고 참새 혀와 같은 모양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용정차는 팔팔 끓는 물에 우려 드시는것이 아니라 70~80도 정도의 물에 우려 드시면 가장 좋은 맛이 나고 1등급 차는 5번까지 우려 드실수 있습니다. 5번중에 2~3번째가 가장 좋은 성분이 우러 나오며, 다 우려 드신 녹차잎은 그냥 씹어 드셔도 되고, 생채를 무치거나 밥을 하실때 넣어 드셔도 됩니다.

답사에 동참하여 주신 회원 여러분 감사합니다. 솔내 김영환(016-363-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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