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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C-17C, 조선조 동(남)서인의 교류와 혼맥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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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석 작성일11-02-15 14:31 조회1,9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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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C-17C, 조선조 동(남)서인의 교류와 혼맥 서사[안김과 관련, 존칭생략]

참판공(휘 彦黙) 이하, 왕실과 문숙공(휘 悌甲) 외손의 학맥과 정치사.

●김언묵(彦黙, 1472-1506) ♡ 의성 김익겸의 녀 - 석(錫), 녀 ♡ 이문건

김언묵은 신수근(임영대군 외손, 연산 처남, 중종 빙장)의 처조카로, 연산조에 불사하였다가 중종반정이 일어난 해에 몰하였으며, 동서인 반남 박용(朴墉, 1468-1524)은 인종비 인성왕후(仁聖王后, 1514-1577)의 아버지다.

●이문건(1494-1567)은 최초의 한글 묘비문(한글영비)을 짓고 현존하는 한국 최초의 육아일기 「양아록(養兒錄)」의 저자로 이황(퇴계), 처조카 김제갑과 충북 괴산의 화암서원(花巖書院)에 나란히 배향되었으며, 장조카 이휘(李煇, 홍건의 자)는 처남 영상공(휘 錫)의 사위다.

○성주 이윤탁(李允濯) ♡ 고령 신회(申澮)의 녀[한글영비 주인공 내외]

이윤탁 - 홍건(弘楗), 충건(忠楗), 이문건(文楗)

●김제갑(悌甲, 1525-1592) ♡ 전주 이옥정(玉貞, 임영대군 증손)의 녀

김제갑은 인종비(인성왕후)의 이종사촌 오라버니인 영상공 석(錫)의 아들로 퇴계(이황)의 문인이며 이이(율곡)를 탄핵하였다. 사위는, 고령 신응구(벽오 이시발의 빙장)와 양천 허한(허적의 父)이다.

●신응구(應榘, 1553-1623)는 성혼(成渾), 이이(율곡)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박장원의 스승이자 이시발의 빙장이다. 고조부 신용개는 문경공 김수동(壽童, 만보당)의 신도비[유연재공 書]를 찬하였다.

○고령신씨 계보

신숙주(申叔舟) - 면(沔) - 용개(用漑) - 한(瀚) - 여주(汝柱) - 발(橃) - 응구(應榘) - 량(湸) - 익상(翼相, 1634-1697)

●박장원(朴長遠, 1612-1671)은 호가 구당(久堂)으로 어릴 때 아버지를 잃고 외가에서 자라며 외조부와 신응구에게 수학하였고 남인의 탄핵으로 흥해로 유배를 가기도 하였으며 저서로 「구당집(久堂集)」이 있다. 증손 박문수(1691-1756)가 외손자인 이광좌(소론의 영수)에게 학문을 배웠다.

○고령박씨 계보

박훤(朴烜) - 장원(長遠) - 선(銑) - 향한(恒漢) - 박문수(文秀)

●이광좌(李光佐, 1674-1740) - 박장원의 외손자로, 외사촌의 아들 박문수를 가르쳤다.

○경주이씨 계보

이항복(恒福, 백사) - 성남(星男) - 시현(時顯) - 세구(世龜) - 이광좌

●이시발(李時發, 1569-1626) - 호는 벽오, 시호 충익(忠翼)으로 1602년, 충렬공 김방경 묘지(墓誌)를 찬하였다. 처 외조 안동 김제갑의 조카인 충익공 김시양(時讓, 1581-1643)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여 쓴 만사(挽詞)가 「벽오유고(碧梧遺稿)」에 남아 전하는데 그 말미에 사돈 간임을 밝히고 있다.

○碧梧先生遺稿卷之八 - 附錄[挽詞] 金時讓荷潭[하담 김시양]

間氣人生傑, - 중략 - 今朝悼亡淚, 非但爲姻親

생략 - 지금(오늘) 조정(아침)에서 죽음을 슬퍼하며 흘리는 눈물은, 오직 사돈[姻親]을 위한 것입니다!

그 외 이식(택당), 이원익(오리), 김상용(선원), 신흠(상촌), 이수광(지봉), 이민구(지봉의 자) 등이 지은 만사가 유고에 실려 있다.

○본가 : 안동 김공언(公彦) - 도(燾) - 녀 ♡ 이대건(李大建) - 이시발

○처가 : 안동 김제갑(悌甲) - 녀 ♡ 고령 신응구(應榘) - 녀 ♡ 이시발

위와 같은 혼맥으로 충익공 이시발(1602년 경상도관찰사)과 충익공 김시양(1626년 경상도관찰사)은 경상감사로 재임하며 충렬공 묘비건립과 묘지 찬, 묘역의 수호 등에 큰 역할을 하였다.

●허한(許僩) - 허치(許穉), 허적(許積)의 아버지다.

○허적(許積, 1610-1680) - 김제갑의 외손자로 남인(탁남)의 영수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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