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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C-17C, 조선조 동(남)서인의 교류와 혼맥 서사[안김과 관련, 존칭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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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석 작성일11-01-28 17:45 조회2,696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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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C-17C, 조선조 동(남)서인의 교류와 혼맥 서사[안김과 관련, 존칭생략]

직제학공 김맹헌(金孟獻) 외손 그 이후, 아래에 열거하는 인물들은 혼맥, 나이, 당색으로 인한 탄핵과는 별도로 철학과 사상적으로는 서로 친분을 갖고 시서를 나누며 한 시대를 풍미하였다.

●은진송씨

송순년(宋順年, 직제학공 김맹헌의 사위)

송순년 - 여해(汝諧), 여즙(汝楫), 녀 ♡ 정광필(鄭光弼)

송여해(1452-1510) - 세충(世忠) - 기수(麒壽), 구수(龜壽), 인수(麟壽)

○송여해 묘비 - 정광필 찬, 유연재공 김희수(金希壽, 1475~1527) 서.

송여즙(汝楫) - 세영(世英) - 응서(應瑞) - 이창(爾昌) - 송준길(浚吉)

송기수(麒壽) - 응개(應漑), 녀 ♡ 평산 신승서, 녀 ♡ 안동 김첨(瞻)

송구수(龜壽) - 응기(應期) - 갑조(甲祚) - 송시열(時烈)

○송준길(宋浚吉, 1606-1672) - 낙서공 김자점(金自點)을 탄핵.

○송시열(宋時烈, 1607-1689) - 생략.

●평산신씨

○신승서(申承緖, 송기수의 사위) - 신흠(申欽) - 신익성(翊聖)

○신승서(申承緖, 1531-1572) - 하당공 김첨(瞻, 1542-1584))과 동서다.

○신흠(申欽, 1566-1628) - 호는 상촌으로 어려서 아버지를 잃어 외조부인 송기수(宋麒壽)에게 글을 배웠다. 서당공 김성립(誠立, 1562-1592)의 이종사촌 아우로 훗날 형의 처남이 되는 하곡 허봉의 시에 차운한 시가 「상촌고(象村稿)」에 있다.

題德陽遺稿後 次許荷谷韻

허봉(許荷谷)의 운을 이어 덕양유고 뒤에 쓰다

다음의 시문은 [한국고전번역원]의 역을 따랐다.

巫咸不可問/무함에게 물어볼 수가 없으니

天道竟胡然/천도는 끝내 어떤 건지 모를레라

忼慨匡時志/강개함은 시속을 바루려던 뜻이요

凄涼賦鵩年/처량함은 복조부를 짓던 해로세

斯人那再見/이 사람을 어찌 다시 볼 수 있으랴

一字亦堪怜/한 글자도 애처롭기 그지 없구려

秋風落日邊/가을 바람 부는 석양 아래서

洒盡懷賢淚/어진이 그리는 눈물 뿌려 다하네

※「덕양유고(德陽遺稿)」는 행주 기준(奇遵, 1492-1521)의 시문집이다. 기준은 찬(襸, 승지공 김수형의 사위)의 아들로 영상공 김석(錫, 1495-1534)의 처숙부이기도 하며 기대승(大升, 1527-1572)의 백부다.

○신익성(申翊聖) - 선조의 부마(정숙옹주)다. 몽촌공 김수(金睟)의 신도비를 찬하였다. 김수는 조부 신승서의 동서인 김첨(瞻)의 아우다.

●동서인의 인연과 만남, 사상의 교유[인물의 생년 기준]

○율곡 이이(李珥, 1536-1584) - 안동 김인갑(仁甲, 1534-1594)의 손아래 6촌 처남으로, 허봉(하곡)의 집을 방문하였을 때 김첨이 이미 와 있었다는 기록을 보면, 김첨은 하곡의 누이인 난설헌의 시부이나 나이를 초월하여 하곡 스스로 벗이라 하였고, 우성전과 하곡은 처남매부로 가깝게 지냈을 것이며, 또한 우성전은 김첨의 며느리인 난설헌의 형부가 되니 모두 함께 당색을 떠나 교유하며 지냈을 것이라 여겨진다. 동(남)서의 정치적 대립을 떠나 서로 반목하지 않고 인품과 문학적 기풍에서 교류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하당공 김첨(金瞻, 1542-1584) - 유성룡, 허봉 등과 율곡을 탄핵하였으며 난설헌 시부로 며느리의 오라버니인 허봉과 벗하였다.

○우성전(禹性傳, 1542-1593년) - 난설헌의 형부로 이황(李滉)의 문인이며 김성일(金誠日)과 교유했고 동서분당 때에는 김효원(金孝元), 유성룡(柳成龍) 등과 함께 동인을 대표했다. 하곡과 처남매부로 처제의 시부인 김첨과도 교유함.

○유성룡(柳成龍, 1542-1607) - 호는 서애, 안동 김광수(光粹, 1468-1563)의 외손자로 우성전과 가깝게 지냈으며 김첨, 김수 형제와 하곡, 난설헌, 허균 남매와 교유하였다. 김첨, 우성전, 유성룡은 동갑이다. 「난설헌집」의 발문을 써주면서 하곡(허봉)과의 친분을 기록하였다.

○몽촌공 김수(金睟, 1547-1615) - 시호는 소의(昭懿)로 난설헌의 시숙이며 난설헌이 오라버니인 하곡(허봉)이 귀양을 갈 때, 보내며 쓴 시에 차운한 시[필자 역]가 전한다. 조선조, 조카며느리의 시에 차운한 시숙의 시는 보기 드물어 사료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次姪婦韻送許美叔謫甲山

조카며느리의 운에 따라, 갑산으로 귀양가는 허봉(美叔)을 보내며------.

朝端時論變 조정의 시론 변덕스러운 까닭에

嶺外逐臣忙 철령 밖으로 쫓겨나는 신하 바쁘지만

用舍闕天數 쓰고 버리는 것 타고난 운명이라

愛憎豈我王 사랑과 미움 어찌 임금께 있을까만

悲吟同澤畔 슬피 읊음은 굴원의 못가와 같고

治臥異淮陽 누워 다스림은 회양태수와 달라

聞說甲山久 들리는 말에 갑산에 오래 머문다니

心驚淚萬行 두려운 마음에 눈물만 흐르네

※行吟澤畔 - 「어부사」에 굴원(屈原)이 쫓겨나 못가를 거닐며 읊조림.

※治臥淮陽 - 한무제 때 급암(장유)이 회양태수로 있을 때 직간을 잘 했다.

○허봉(許篈, 1551-1588) - 나이를 초월하여 같은 당색과 문학, 사상, 혼맥으로 유성룡, 김첨, 김수 형제와 우애가 두터웠으며 이이(李珥)를 탄핵한 후 갑산에 유배되었다가 이후 죽었다. 갑산으로 유배를 떠날 때, 여동생인 난설헌과 김수가 남긴 시가 전한다.

○서당공 김성립(誠立, 1562-1592) - 첨(瞻)의 아들로 상촌(象村) 신흠의 이종사촌형이며 난설헌의 지아비다.

○난설헌 허초희(楚姬, 1563-1589) - 안동 김성립(誠立, 1562-1592)의 아내로 오라버니 허봉이 율곡을 탄핵한 후 유배를 떠날 때 아래의 시[필자 역]를 썼다.

送荷谷謫甲山 갑산으로 귀양가는 오라버니(荷谷)를 보내며------.

遠謫甲山客 머나먼 갑산에 귀양가는 나그네

咸原行色忙 함원길 가는 모양 바쁘시네

臣同賈太傅 신하는 가태부와 같건만

主豈楚懷王 임금은 어찌 초회왕처럼 멍청할까

河水平秋岸 냇물은 가을 언덕에 잔잔하고

關雲欲夕陽 변방의 구름 저녁놀에 물드는데

霜楓吹雁去 단풍잎 불며 기러기 날아가니

中斷不成行 그만 멈추고 떠나지 않았으면

※賈太傅 - 중국 전한(前漢) 문제 때 학자이자 정치가인 가의(賈誼)로 굴원의 죽음을 슬퍼하여 만사를 지었다. 시숙부인 몽촌공 김수의 차운 시에 굴원이 등장한다.

※楚懷王 - 중국의 고사를 들어 거침없이 임금[선조]을 욕한 표현으로 조선조의 대표적 여류시인들인 사임당, 황진이, 매창 등이 가족애와 연인과의 애정을 노래한 시를 남긴 것에 비하여, 난설헌은 대상과 시어(詩語)에 국한됨이 없었음을 볼 때, 당시 여성으로 호방한 성격은 물론, 학문적으로도 남달리 뛰어났음을 간파할 수 있다.

○지봉 이수광(李睟光, 1563-1628) - 안동 김대섭(大涉, 1549-1594)의 사위로 허균과 동서다. 「지봉선생집」에 난설헌(동서의 누이)의 만사[필자 역]가 있다.

金正字誠立內挽 김성립 아내 만사

有美閨房秀 아름다워 규방에서 빼어났고

于歸婦道宜 시집가선 여자의 도리 마땅히 지켰네

一生鸞鏡影 한평생 거울 속 모습이며

千古柏舟詩 옛적의 지조 있는 시

綠蕙先秋折 아름다운 혜초는 가을에 먼저 꺾이고

寒泉向曉悲 차가운 샘 새벽이 되면 은혜를 베푸니

傷心人世事 마음 상했던 세상의 일은

身後更無兒 후사를 잇지 못했을 뿐이지

○허균(許筠, 1569-1618) - 안동 김대섭(大涉, 1549-1594)의 사위다. 김시양이 서장관이 되어 북경에 사신으로 갈 때 전송하며 보낸 시가 「성소부부고」에 남아 전한다.

○김시양(時讓, 1581-1643) - 인갑(仁甲)의 아들로 지봉 이수광의 상여가 가는 길에 글을 지어「지봉선생집」에 만사[필자 역]가 있다.

[挽詞]平安道觀察使金時讓 [만사]평안도관찰사 김시양

天意扶宗國, 崇高嶽降神, 西京推大筆, 元祐有完人,

二妙聲名久, 三槐器業新, 歐陽六十六, 無祿歎斯民.

임금의 뜻 따라 으뜸으로 나라를 도왔으며, 숭고함은 신이 내린 대신으로,

서경에서 대필로 천거되어, 임금을 돕는데 완벽한 사람이 있었던가?

두 가지 묘책은 명성이 자자하여, 삼정승도 공적의 새로움을 존중하였는데,

해를 헤아리니 육십육 세라, 복 없는 모든 백성이 탄식을 합니다.

※西京 - 평양이 아닌, 지봉이 역임한 관직의 다른 이름이나 그 집단, 또는 행정구역의 위치(성균관 등), 서학(西學)인 당시 천주교의 전래와 관련한 중국과의 외교에 있어 그 역할 등의 용어로 해석함.

※二妙 - 지봉의 학문적 접근 방법론과 철학적 행동, 사상의 오묘함이나 정치적 활동에 있어서의 묘안(묘책)을 의미한 것으로 보임.

※三槐 - 삼공(정승)을 지칭하며 지봉의 공적과 새로운 학문을 정승(원로)들도 존중하였다고 높이 평가함.

○덕수 이식(李植, 1584-1647) - 호 택당(澤堂)으로 상촌 신흠과 김상용의 사위인 장유(張維, 1587-1638)와 함께 문장이 뛰어났다. 충익공 김시양의 만사를 썼다.

●위 인물들이 동서로 나뉘어 정치적으로 반목하고, 때론 사상적으로 교유하며, 혼맥으로 두터운 우애를 나누던 16세기가 저물 즈음에 조선은 임진, 정유재란으로 혼란을 거듭하였다. 중국과 일본은 정권이 교체하여 새로운 문명의 시대를 열었으나, 조선의 역사는 그 이후로도 한참을 이어갔다.

●우리 안김 최초의 족보인 「안동김씨성보(경진보)」가 1580년 간행되었기에 그 무렵의 인물과 사상, 시문을 살피고 새해를 준비한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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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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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조선조 중기의 동인과 서인, 남인과 노론의 치열한 당쟁 과정에서 있었던 양 갈래의 혼맥과 교류를 잘 정리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