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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림촌 2차 답사기_02 득관시조 이하 6대 선위 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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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식, 발용 작성일11-01-06 20:16 조회3,794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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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림촌 2차 답사기_02 득관시조 이하 6대 선위 제사

 

몰라보게 변한 상락대

13:10분 삼강주막을 출발해 중간에 마애선사공원에서 잠시 쉬었다. 뱃사공들 구성진 노랫가락이 함께 흐르던 곳으로 유장한 강물과 깎아지른 절벽이 장관이었다. 하늘에서 강물로 내리꽂힌 듯, 아니 강물에서 곧바로 하늘을 뚫을 듯 90도 각도로 솟구친 천길 만길 절벽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했다. 얼핏 상락대에서 배를 타고 올려다보는 것과 흡사했다. 건너편 강둑에서 바라보는데도 고개를 한껏 뒤로 젖혀서야 절벽 끝이 보일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그 아래로 대형 트럭들이 분주하게 오간다. 4대강 사업으로 모래를 퍼 나르는 트럭들이었다. 마치 먹이를 물어 나르는 개미 떼 같다. 장대한 절벽과 넓디넓은 모래밭에 비하면, 정신없이 오가는 트럭 행렬이 정말 보잘것없었다. 조약돌 하나가 물길을 바꾸고, 흙 한 줌이 산봉우리를 일그러뜨리거늘! 수억 년 장구한 세월이 빚어낸 절경에 모랫바람이 광풍(狂風)처럼 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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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애선사공원 인근 4대강 사업 작업 장면

14:08분 상락대에 도착했다. 이곳은 안동지역에 남아 있는 충렬공의 대표적인 유적지 가운데 하나이다. 근래에 상락대 바로 옆에 자연생태공원인 ‘낙동강생태학습관’이 들어서면서 울창한 소나무숲은 사라지고 그 일대가 몰라보게 달라졌다. 자손으로서 상락대를 원래 모습 그대로 보존하지 못해 안타깝고 죄스럽기는 하나, 세월이 흐르면서 또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일. 그나마 자연생태공원이 들어서고 상락대 표석 주위가 공원지역에 바로 잇닿아 있어 이 형태로나마 오랜 세월 전할 수 있을 것 같아 조금 위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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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강생태학습관 정문, 건물 뒤가 상락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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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강생태학습관 건물

상락대 표석 주위에는 안동시에서 안동김씨 중시조이신 충렬공의 유적지임을 알리는 안내판을 세워 놓았다. 안내판 글귀는 안동시에서 우리 안동김씨대종회에 협조를 요청해 왔는데 문구를 최종 결정하는 과정에서 우리 대종회와 안동시의 입장이 약간 미묘한 차이를 보였으나, 원래 문구 대부분이 채택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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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김씨대종회가 세운 상락대 표석. 충렬공을 사모한 상락낭자 무덤이 표석 주위에 있다고 우리 집안에 전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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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락대 안내판. 생태공원을 조성하면서 안동시에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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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판 주위에는 나무데크를 깔아서 깨끗하게 정돈해 놓았다. 다만, 우리 문중에서 800년 가까이 전해오는 상락낭자 무덤이 어디쯤인지 알아보기 어려운 점이 내내 안타깝다. 상락대 인근에 생태공원이 들어서기 전에 서너 차례 상락대에 와 봤는데도 상락낭자 무덤을 찾기 어려웠다. 또 몇 걸음 떨어진 곳에 돌탑을 세웠는데, 상락대나 충렬공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시설물이라 눈에 거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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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락대를 살펴보는 답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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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재영, 윤식, 태영, 용주, 좌회, 태우, 상석, 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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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강생태학습관 전경. 예전에는 보기 좋은 솔밭이 펼쳐진 곳이었다.

상락대 주위에서 사진을 찍고 기록을 하는 동안 때아닌 날파리 떼가 달라붙었다. 상락대 아래 드넓은 모래밭을 퍼내느라 임시로 물길을 막고, 억새와 버드나무 숲을 모조리 베어낸 때문인 듯했다. 강가에서 자라는 버드나무와 억새는 물을 정화하는 기능이 뛰어난데, 하나도 남기지 않고 맨살을 드러냈으니 날파리가 상락대 인근의 숲으로 이동한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09년 4월 충렬공실기에 수록할 사진과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은회, 발용, 영식, 윤식 등이 이곳에 들렀을 때만 해도 상락대 아래 억새밭에서 고라니가 뛰어다닐 정도였는데, 아쉬움이 너무나 크다.(<충렬공 묘소 사초 행사 보고(2009년 4월 29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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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4월 충렬공 묘지석 발굴 당시 상락대 풍광. 드넓은 모래밭과 유장한 물길, 깎아지른 절벽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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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가에서 바라본 상락대 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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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영식, 윤식, 은회

상락대 표석 뒤 마산(馬山)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생태공원을 조성하면서 올라가기 좋게 정비해 놓았다. 마산은 상락대 인근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예로부터 단호리 주민들이 수호신을 모신 곳이기도 하다. 빡빡한 일정이라 마산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14:35분경 발길을 인근에 있는 낙암정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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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락대 인근에서 가장 높은 마산. 산봉우리로 올라가는 탐방로를 설치해 놓았다.

가까운 거리라 자동차로 3분 만에 도착했다. 낙암정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안사연을 통해 소개되었으므로 자세한 설명을 줄인다. 멀리 회곡동 쪽에서 산 속에 폭 파묻힌 낙암정을 바라보는 것도 일품이지만, 낙암정 바로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취도 색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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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암정. 누각에 올라가 앉으면 드넓은 모래밭과 강물이 눈앞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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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암정 현판

 

충렬공 정자와 서애 선생 묘소

14:50분경 낙암정을 출발해 서애 유성룡 선생 묘소로 향했다. 가는 길에 회곡동으로 들어갔다. 예전에는 회곡으로 들어서는 고갯마루에서 죽주박씨 할머니 재실인 상락재가 잘 보이지 않았는데,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시원하게 한눈에 들어왔다. 15:20분경 재실로 들어가니 그 아래 가옥을 헐고 다시 지으면서 공터가 생겨 상락재가 훤하게 드러나 보인 것이다. 재실을 나와 죽주박씨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유허비 등을 재촬영한 다음 15:37분에 서애 선생 묘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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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곡동의 충렬공 유허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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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렬공 유허비. 대산 이상정 선생의 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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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평국대부인 죽주박씨 할머님 단소

최근에 충렬공실기간행위원회에서는 ‘하외낙강상하일대도(河隈洛江上一帶圖)’ 중 상락대와 회곡 인근을 그린 ‘제사곡(第四曲)’을 입수했다. 바로 이 그림에 “사곡(四曲)은 수동(壽洞)으로 상락공(上洛公) 김방경(金方慶) 장군(將軍)의 정자가 있던 곳이다.”라고 적혀 있는데, ‘수동(壽洞)’은 서애 선생 묘소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그림에 나오는 정자가 충렬공께서 소요하시던 ‘고산정(孤山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서애 선생 묘소를 찾아나서게 되었다.(충간위 카페 ‘하외낙강상하일대도(河隈洛江上一帶圖)’ 참조)

서애 선생 묘소는 회곡동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증동’이란 동네 길가에 자그마한 표석이 서 있다. 이곳에서 우회전해서 들어가면 서애 선생 묘소로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그런데 이 표석에 묘소가 1km 떨어져 있다고 적혀 있어 그만 직진해서 한참을 더 갔다가 수동교회에서 유턴해 돌아오느라 조금 지체되었다.
하지만 길가 표석만으로는 정확한 위치를 알기 어려워 산을 넘어갔다가 주민들에게 물어 보기 위해 표석 근처 방앗간에 차를 세웠는데 때마침 관광버스가 한 대 들어왔다. 풍수지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단체로 타고 온 차였다. 그들을 따라 묘소로 올라갔다. 마을 입구에서 약간 왼쪽으로 정갈하게 보이는 꽤 큰 봉분이 바로 우리가 찾던 서애 선생 묘소였다. 큰절로 선생께 인사를 드리고, 하외낙강상하일대도 제4곡에 나타난 건너편과 인근을 샅샅이 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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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애 유성룡 선생 묘비. 선생의 묘소는 단정한 선비를 연상시킬 정도로 검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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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애 선생 묘역의 문인상

그러나 이 그림만으로는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워 16:30분경 다시 회곡 쪽으로 들어가면서 중간중간 차를 세우고 그림과 주위 실물을 비교하면서 충렬공 정자를 찾았다. 몇 번을 차를 세우고 그림을 들여다본 끝에 그림과 실제 상락대 쪽 풍경이 일치하는 곳을 찾았다. 안동 시내 쪽에서 회곡동으로 들어오는 길에서 큰 다리를 지나 수백 미터쯤 가면 오른쪽 마을로 들어가는 작은 길이 나오는데 바로 그 지점이었다(사진 참조). 하지만 그 정자는 여러 기록과 충간위에서 파악하고 있는 고산정과는 위치가 달랐다. 오히려 그림에 나타난 곳은 상락대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이 그림에 나타난 정자는 또 다른 숙제가 되었지만 고산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밝혀졌다. 또한 <영가지>에 “園頭浦[在府西二十五里搴芝山下金方慶菜園後判書權輗構亭于此] 원두포(園頭浦)[부 서쪽 25리 건지산(蹇芝山) 아래에 있다. 김방경(金方慶)의 채원(菜園)이다. 뒤에 판서 권예(權輗)가 여기에 정자를 지었다.]”라고 적혀 있는데, 혹시 이와 관련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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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외낙강상하일대도 제4곡에 그려진 정자를 찾기 위해 차를 세운 곳에서 바라본 인근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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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를 세운 곳에서 건너다본 단호리 입구. 낙암정과 상락대로 들어가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는 사이 짧은 겨울 해가 지고 있었다. 오늘 저녁 능골 행사에 맞추기 위해 17:30분경 서둘러 능골로 향했다. 안동 시내로 들어가는 계평교 부근에 도착해 이곳에서 옹천으로 들어가는 작은 도로까지 거리를 측정했더니 약 14km였다. 경진보에 복야공(휘 敏成) 묘소가 “墓在安東府西一息花林村(묘소는 안동부 서쪽으로 일식 거리인 화림촌에 있다.)”고 기록돼 있는데, ‘일식(一息)’은 거리를 나타내는 단위로 30리 즉 12km를 뜻한다. 실제로 안동시청에서 옹천까지 실제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거리를 실측해 보고 싶었는데, 마침 좋은 기회였다. 계평교와 안동시청의 위도상 거리를 감안하면 안동시청에서 옹천까지 거리는 13km 정도로 추정된다. 이로 보아 복야공 묘소에 적힌 ‘일식(一息)’은 곧 ‘30리’를 뜻한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충렬공 선대 6위 제사 최초 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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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골에는 전국 각지에서 종친들이 끊임없이 들어와 충렬공 세향 준비가 한창이었다. 특히 이 날은 안동김씨대종회 출범 이후 처음으로 충렬공 선대 6위 제사를 모시기로 했기에 여느 때보다 분주했다. 충렬공 세향은 해마다 일손이 부족해 쩔쩔 매는데, 안동종친회의 배려로 안동시내에 거주하는 종친 부인들께서 감사하게도 오늘 아침부터 세향 준비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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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렬공 선대 6위 제사 준비 장면. 동수 종친이 지방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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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수재에서 분방 중인 문중 어르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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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내용 들리시죠?

18:50분 음수재에서 2010년 경인년 세향 분정이 시작돼 20:00시경 분정이 끝났다. 충렬공 선대 6위 세향 및 충렬공 분정은 아래와 같다.

   <충렬공 선대 6위 제사 분정>(존칭 생략)

       초헌 대종회장
       아헌 재은
       종헌 학응
       집례 선회
       독축 동수

   <충렬공 세향 분정>(존칭 생략)

       초헌 창회
       아헌 준회
       종헌 광도
       진설 성식
       대축 상천
       찬자 선회
       찬인 춘교
       봉향 태평
       봉로 태영
       사준 태진
       봉작 규동
       전작 재영
       시도 만길
       직일 학응

드디어 20:30분 준비를 마치고 득관시조(휘 숙승) 할아버님 이하 충렬공 선대 6위 제사(합사)가 경건하게 거행되었다. 이번 합사는 처음 거행한 행사라 예상치 못한 점이 많아 향후 더욱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참석 종친들 대부분이 행사를 주도하는 집례의 경우에는 홀기를 완벽하게 숙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을 정도였으니, 다음 해에는 완벽을 기해 이번과 같은 사례가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우리 모두가 합심해서 훗날에라도 득관시조 설단에 관한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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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렬공 선대 6위 선조 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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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헌 남응 대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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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헌 재은 전 부사공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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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헌 학응 전 제학공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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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례 준비에 한밤중까지 불을 환히 밝힌 능골 모습

21:00시 충렬공 선대 6위 제사 후 답사팀은 다시 안동시내로 나와 숙소를 잡았다. 마침 관광철이라 안동시내 숙박업소가 모두 만원이었다. 이리저리 헤맨 끝에 간신히 숙소를 정하고 한 방에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러느라 답사팀 일부는 동이 틀 무렵까지 날을 밝혔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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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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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세한 답사기 흥미있게 읽었습니다. 전체가 등재되면 본 홈에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