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안동문화대전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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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석 작성일10-08-09 13:05 조회2,268회 댓글1건본문
디지털안동문화대전(안동시) 소개 - 충렬공 관련 해설 요약
[개설]
1281년(충렬왕 7) 고려군과 몽골군이 연합하여 일본을 정벌할 때 충렬왕은 안동에 머물면서 전황을 파악하였다. 충렬왕이 안동에 머문 것은 당시 고려군 도원수였던 충렬공 김방경(金方慶)이 안동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일본 정벌과 충렬왕의 안동 행차]
1281년 여몽연합군이 2차 일본 정벌에 나서자 충렬왕은 왕비와 함께 순흥과 예천을 거쳐 안동에 도착하여 한 달 남짓 머물렀다. 『고려사(高麗史)』에는 당시 충렬왕과 왕비 일행이 안동으로 오는 과정이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기사를 보면, 충렬왕이 안동에 온 까닭은 전황을 파악하고, 패배했을 경우 장졸을 위로하기 위함이었다. 충렬왕이 전황 파악을 위해 안동을 선택한 이유는 당시 고려군 도원수가 안동 출신의 충렬공 김방경이었고, 또 안동이 왕비의 탕목읍(湯沐邑)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더 결정적인 이유는 전자였다.
충렬왕 일행이 안동에 오던 날 안동부사 김균(金頵)은 채붕(綵棚)을 설치하고 음악을 연주하는 큰 환영 행사를 열었다. 다음 날 전쟁에 패배했다는 보고를 받은 충렬왕은 이 사실을 원나라에 전하도록 하였으며, 안동 도착 17일차에는 도원수 김방경이 충렬왕의 행궁으로 찾아와서 알현하였다. 이 무렵 김방경은 영호루에 올라 시 한 수를 남기기도 하였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충렬왕은 안동의 영은정(迎恩亭)에 행차하여 귀한 제액(題額)을 하사하였다.
충렬왕의 안동 행차는 안동 문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안동부사 김균이 충렬왕을 위해 채붕을 설치하고 큰 환영 행사를 열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안동하회탈 발생에 모종의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소주가 몽골에 의해서 한국에 전래된 사실을 감안하면, 안동의 특산물 안동소주도 충렬왕 일행이 안동에 머물 때 안동에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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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배영동 외, 『고려 공민왕과 임시수도 안동』(안동시·안동대학교 민속학연구소, 2004)
• 안동시·안동대학교 안동문화연구소, 『고려시대의 안동』(예문서원, 2006)
• 배영동 외, 『충렬공 김방경, 고려를 지키고 안동으로 돌아오다』(민속원, 2007)
• 배영동, 「삼태사와 태사묘」(『2007 안동문화 바로 알기』, 한국국학진흥원, 2007)
• 배영동, 「안동에 온 고려의 세 임금과 안동문화」(『안동의 역사와 문화』, 2007) 外
위의 기사 외에 많은 자료가 있으나 “김돈(墩)은 익원공 김사형의 아들이다”라는 등의 일부 오류가 나타난다.
아직 완벽하게 갖추어진 홈은 아니지만 계속해서 홈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보인다.
댓글목록
김정중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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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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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이제 본격적으로 탄신 800주년 축제를 준비 해야 될 듯 합니다. 풍산읍.,녹전면과 안동시,경북도의 협조하에......
이 참에 안동이 낳은 거유들의 가장행렬도 기획 해보면 어떨지 주회 대부님 의견 좀 듣고 싶네요.
상석 대부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