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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사촌시편 46<처사안동김공전>을 접하고... 옛글 따옴(김태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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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중 작성일10-06-27 15:43 조회2,127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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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사촌시편 46<처사안동김공전>을 접하고...  
 작성자 :  김태도 
     조회수 : 231     2005-02-01 23:25:29  

사촌시편 46<처사안동김공전>을 접하고...

 

 

먼저 개인적 사사로운 정감을 이방에 올림을 여러 일가종친제현님들께 용서와 함께 양해를 구하고자 합니다.

 

처사 김공과 진중시인사이는 족숙질간이며, 초중학교동기입니다.

부족한 제가 감히 작자의 시상을 운운함은, 길가는 마소가 비웃을 일이로데, 가까이에서 본 느낌이 있기에 보시는 분들의 공감과 이해를 백분의 일이라도 살리고자 부연을 달아봅니다.

 

또한 족질진중님의 조시작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의 표시가 늦었습니다.

불민한 사람의 소치를 너그러이 용서바라며, 초상시에는 인사차릴 경황이 없이 지나쳤고,

그 이후 생활고에 바빠서 많은 세월이 지난후 우연한 기회에 정중님(진중시인의 아우)을 만나 안사연 홈페이지를 인도 받았지요.

그러나 컴맹이요 무지한 탓에 빨리 접근을 못하고 미숙하나마 조심스럽게 홈을 열곤합니다.

지난 2004년 6월 17일(목) 첫인사드리고 자주 인사 올리지 못함을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이제 저는 마음이 든든하고 부자가된 기분입니다.

홈페이지 문만열면 여러 종친님들을 뵐수있고 숭조현양사업과 목족의 친근함과 사랑을 느끼며

유익하고 재미있는 이야기, 생활의 양식이 되는 주옥같은 글들이 너무나 좋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커다란 우주공간을 우리 안사연홈으로 가득하니까요..

서론이 길었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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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7.20(화) 옮겨적음.

작성자:김진중  올린일:2004.5.2

사촌시편 46/처사안동 김공전

 

다시는 네 안부를 묻지않으마, 

 

이 승의 인연 말하지 않으마,

 

(절친한 친구의 죽음앞에 절실함 비통함을 참지 못해서 마지막 절규를 부르짖는 애통함을 표현했습니다)

 

보리가 나도록 씨동무도

 

지줄 지줄

 

옛 이야기도

 

모두 잊은 듯 꺼내지 않으마,

 

(1960년대 보릿고개를 넘긴 배고픔과 가을에 파종해서 갓자란 새싹이 추운겨울 동면을 참고 견디어온 보리씨앗 같은 동무여_ 지줄 지줄 옛이야기도_  아슴한 옛날 철부지 유년시절을 돌아보는 장면을 그렸습니다.  이 모든 옛추억이 이젠 생사의 갈림길에서 모두 부질없는 이야기구나 괴롭고 가슴아픈일이니, 모두 잊은듯 꺼내지 않으마)

 

달 지던 새벽길에 땅김 오르고

 

향기론 술이 밤새 익어도

 

묻지 않으마

 

그대 누구냐고..

 

(철들면서 청'장년기까지-고교시절 여름,겨울방학때면 서로들 모여앉아 참외,수박,사과 온갖과일 닭 서리며 때론 서투른 어른 흉내낸다고 술마시고 담배도 배웠겠죠. 각자가 객지에 흩어져 살다가 명절과 휴가철 혹은 모임이 있을때 시골 밝은 달아래 달이지고 밤이 지새도록 '부어라 마셔라' 일배일배구일배, 새벽을 지나 뿌옇게 땅김오르도록 흉허물없이 회포를 나눈 추억이며, 맛있는 미주에 향기론 술이 있으면 서로가 나누어 마시며 즐기고 담소했던 시간들.. 이젠 모두가 끝이로구나. 그대에게 전하지도 묻지도 않으리라.  그대가 먼저 날버리고 돌아올수 없는 먼곳으로 갔으니까..단념하겠다는 표현입니다)

 

꼬깨로 목마 태운 세월이야 고단해도

 

호박꽃덩굴 눈웃음으로

 

-나, 용도데이, 樹알 백성인가.

 

(초등학교 체육시간에 청백으로 나뉜 기마전과 꼬깨 목마싸움을 그리며..

기마전은(4인조)꼬깨목마전(2인조)  처사김공은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하여 힘이세고 키가 큰체형이고, 진중시인은 날씬하고 날렵한 체형이였다. 그러니 2인조 꼬깨목마전에 당연히 처사김공 목덜미 위에 진중시인이 올라탄 목마전이요. 둘 사이는 서로가 잘 통하는 점이 있었을것입니다.

-나, 용도데이 : 처사김공의 이름(용도)

 樹 : 사촌입향조께서 사촌동리 서편의 허함을 막고자 방품림으로 조림한 수령500~600년이 넘는 점곡면 사촌가로숲을 지칭하며, 현재 군'도지정 보호수로 지정 사촌문중소유로 관리하고 있음.

 樹알 백성인가 : 이말은 지형상 가로숲 동편은 숲안쪽이요, 서편은 숲밖을 칭함. 처사 김공은 동편에 살았고 진중시인은 숲서편에 살았음. 그러니 어릴적 처사김공이 진중신인을 만나면 우스게 소리로 하던 인사말이였음)

 

여기서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진중시인은 樹 : 나무"수"로 표준어로 표현했는데 고향 사촌에서는 "ㅆ"발음을 넣어서 가로"쑤"로 또는 그냥"쑤"로 표현하는 강톤으로 상통한다.

예를들면 : "쑤알백성인가~"   =>  "숲 밖에 사는 사람인가~"로 표현됩니다.

               "沼(소)" : 늪  => "쏘" 로 강톤 발음함.

지금은 생활방편이 많이 달라졌지만 우리의 유년,소년시절에 가로숲안쪽에 터전을 잡고사는 후손들은 조상님의 은덕(음덕)을 받고삶을 긍지와 보람, 자랑으로 생각했습니다.

 

다 거둬 가게나,

 

한실골ㅁ 가로수ㅁ 범아가리 갱변에다

 

웅텃가도, 도가앞도, 오리걸음 걷던길도

 

청운 사진관 빛 바랜 필름.

 

그 흔들리던 그림자까지도

 

다 거둬가게나.

 

다시는 네 안부를 묻지 않으며,

 

저승 꽃 산천 놀러가기 전엔.

 

★ 추억의 한가운데 자리했던 벗을 묻고 돌아오던 날 쓰다.

 

(한실골 : 이곳은 가로숲과 연이어지는 사촌마을 뒷산으로 7~8리의 산골짜기입니다. 우리의 선조님들의 선영이 모셔져있는 문중소유의 임야산골. 정확한 면적은 모르나 아마도 수백정보가 되리라 봅니다.

지금은 시대가 변해서 아궁이에 불은 태워서 주식을 해결하지않고, 온돌방 땔감이 대체연료나 전기로 바뀌였지만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소구르마 혹은 경운기로 땔감을 실어낸 주산지해결처였지요.

 

범어가리갱변 : 사촌마을에서 남쪽으로 건너보이는 시내강변 남안 병봉산자락에 자리한 영귀정 조금위쪽 상류에 위치한 곳으로 역사를 알수없는 옛고적부터 형성된것으로 추측되는 물맑고 수심최고 3~4m 沼(소)를 이루고 자연석으로 형성된 다이빙대 1~3층이 있던곳으로 웬만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고 여름이면 개구장이에서부터 청장년들의 목욕장소로 항상 사람이 끊기지 않던 요소지이며 강바닥은 청석과 옥자갈 굵은 모래가 보이며 금은빛 무지개색 피라미에서 꺽지,메자 등등 1급수에서 서식하는 물고기가 많은 그야말로 명경지수를 연상하는곳이다.

 

영귀정 :  송은선조님께서 일찍이 한양에 상경하시어 성균관 태학에서 유학하시고 성균진사에 입격하셨으나 연산조의 난정을 헤아리시고, 홀연히 사촌고향으로 귀향하신후 남산병봉산자락 풍광이있는 조그만한 소를 이루는 절벽바위 위에 초당을 지으시고 [영귀서당]이라 현액하셨다.

이곳에서 선조님께서는 후학을 강학하시고 기르시며, 때론 거문고를 켜시며 풍유를 즐기시고 때론 성현의 말씀을 암송하시고, 또는 자작시를 독송하시며 시무를 즐기시던 곳이다.

 

웅텃가 :  사촌마을 동북쪽에 위치한 연못(지당) - 우리들이 청소년시절 겨울철이면 얼음빙판에서 아침부터 해가질때까지 스케이트(사촌말로 시겥도)를 타고, 팽이 치며 놀던곳이요. 늦가을에서 초봄사이에 사촌에서도 풍유를 즐기는 집안 어른께서는 대형투망이란 그물로 붕어,잉어,미꾸라지등등 물고기 사냥모습을 보아왔던곳이다.  투망이란..  요즘 흔히 쓰는 초망보다가 훨씬 크고 힘이 장수가 아니면 다룰수 없는 어장이다. 투망을 한번치면 한꺼번에 물고기가 커다란 다라이로 거반걸려 올라왔다.

투망을 정리할때는 지당뚝에 커다란 팽나무가지에 걸어놓고 한참씩 정리하시던 광경이 아련하며, 지금은 지당뚝에 있던 노팽목도 사라진지 오래고, 지당물도 옛날같이 많지않으며 오염된 물이라 고기도 서식 자생이 옛과 같지 않을것이다.

 

도가앞 :  점곡면 소재지 사촌과 이어지는 동편마을 옛 말걸리 양조장앞을 지칭하며, 이곳 근처에는 유흥업소가 일찍이 성행했던 곳이다. 그러니 자연히 젊음과 패기와 혈기왕성한 청장년들이 주로 활거하던 곳이다.

 

오리걸음 걷던길 :  점곡면 중앙에 자리한 점곡중고등학교를 그림

                          수년전 학생수 부족으로 폐교. 학창시절 선생님이나 선배에게 벌받던 시절을 그림

 

청운사진관 : 안사연홈에 가끔씩 들리시는 김재익족조님의 백씨 되시는분(김재목님)께서 수십년동안 경영하시던 점곡면 소재지 유일의 사진관입니다.

 

 

이러한 추억의 배경을 그리며, 마지막 보내는 참다운 벗의 슬픔.

죽마고우의 지피지기정을 단절해야하는 순간을 표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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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그러이 봐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김정중 주저리 주저리 열린 추억송이들......
천년을 이어온 마을의 전래 되어온 이야기들 가슴에 품으며......
1960년 초반 경지 정리되기 전 개갱지쑤에서 부터 뒤뜰 까지의 물굽이와 땅 모양들......
땅버들 밭의 물굼묻이,찔레묻이 감자묻이.삼 묻이.밀사리,콩사리.완매 토끼몰이
도끼바쏘 밑에 자전차 발전기로 찌지면 메기.뱀장어 솟아 오르던 순간의 함성들

이러한 추억을 공유한
인걸의 급서 앞에 무슨 말이 필요 하리요

지금도 들릴듯한 찌렁찌렁한 학창시절 대대장의 호령소리!
진정 태도.용도 두분 형제는 사촌마을 아이들의 우상 이었어라.

이제 세월이 조금 삭혀지고
이렇게나마 표현 되고 특히나 해설을 내어 주시니 또 한번 심금을 울립니다
`여보게 나 죽으면 천냥 부조 말고 만사 한장 지어주게` 라는 옛말이 생각납니다
이방의 모든 분들께는 송구함도 있사오나
時空과 표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이와 닮은 애통함이 또한 있을진저
2005-02-02 삭제
김항용 잘 읽었습니다. 님께서 정리해 놓으신 작품평과 주석으로 시가 새롭게 태어납니다. 감사합니다. 2005-02-02 삭제
김주회 자세한 설명으로 사촌마을의 옛 정경이 되살아 나는 것 같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2005-02-02 삭제
김영윤 요절한 죽마고우이자 족숙을 보내고 쓴 글을 아우님이 해설을 해주시니 애절한 마음이 가슴으로 전해옴을 느낌니다 2005-02-02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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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상석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상석
작성일

  시어에 일일이 방점을 찍고 시인과 공감하는 기억의 궤적을 쫓아 먼저 떠난 벗을 배웅하는 만사가 압도적이며, 시의 무대가 되고 있는 사촌 언저리를 추적할 때는 또 다른 작가가 되어 공감감적 대서사시를 쓰십니다. 오랫만에 오셨네요! 빨리 건강 회복하시어 시인의 아우님이 추억하시듯 또래들이 우러러보던 늠름한 대장(우상)이 되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