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정 주위 암각문(琴臺 尊巖 瓊島) 書者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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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윤 작성일10-02-08 23:11 조회2,388회 댓글3건본문
금수정 주위에 산재한 암각문중에 瓊島가 있는데 그동안 알려져왔던(蓬萊 書)바와 다른 새로운 근거를 찾아 소개합니다
아래의 記가 쓰여진 해 신미년(1751년)으로 보아 "亭之主金氏 " 의 주인은 아래의 계보
可臣(1688-1728)-瀅(1715-1771)-宅仁(1753-1825)<문온공파 임신세보(1990년간)>로 보아서
瀅 할아버지 이십니다 단 亭之主金氏는 刻字 당시의 주인을 뜻할 수 도 있으므로 확증할수는 없다고 봅니다
번역은 윤식씨께서 수고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保晩齋集卷第八 達城徐命膺君受著 / 記
保晩齋 徐命膺 : 1716(숙종42)~1787(正祖11)
보만재집 : 1838년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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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遊山水記
金水亭
金水在永治西五六里。由亭而左。水汨㶁流。怒而爲濤。激而爲沫。綿亘六七里。
금수정은 영평읍치에서 서쪽으로 4~5리 떨어져 있다. 정자 왼쪽은 물살이 갈라져 콸콸 소리를 내며 흐르는데, 물살이 파도 치며 서로 부딪쳐 거품이 일어 6~7리나 길게 뻗친다.
至亭之側。怪石簇焉。有壁而竪者。舟而臥者。獸踞而人立者。皆靑楓倒植。遠見若苔蘚然。
정자 옆에 이르니 괴석이 조릿대처럼 모여 있다. 깎아지른 절벽을 이룬 것, 삐쭉 서 있는 것, 배 모양으로 길게 누운 것, 짐승이 웅크린 모양으로 생긴 것, 사람이 서 있는 모양으로 생긴 것 들이 모두 푸르죽죽한 신나무를 거꾸로 심어 놓은 것 같은데 멀리서 보니 이끼가 껴 있는 듯했다.
石之上刻曰洞天石門。曰白雲溪。石峯韓濩筆也。曰廻瀾石。天使許國筆也。曰金水亭。蓬萊楊士彦筆也。曰釣臺。亭之主金氏筆也。
돌 위에 ‘동천석문(洞天石門)’, ‘백운계(白雲溪)’라고 새긴 것은 석봉 한호의 필적이다. ‘회란석(廻瀾石)’은 명나라 사신 허국의 필적이다. ‘금수정(金水亭)’은 봉래 양사언의 필적이다. ‘균대(鈞臺)’1)는 정자 주인 김씨의 필적이다.
주 균대(鈞臺) : 금수정에서 세천비로 올라가는 돌계단에 위에 새겨진 ‘금대(琴臺)’를 말함.
水洄洑石底。泓澄泂澈。遊魚可數。轉而彎抱深碧。上涵亭影。又轉而縈匯漫流。以出亭右。 外列奇峯。高可數十丈。廣延數里。 方夏草樹茂密。影瀉溪水。若畵圖然。
물살이 거슬러 올라가 바위 밑에서 빙빙 도는데 물이 깊고 맑아서 아주 깊은 곳까지 훤히 보일 정도로 맑아 물 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일일이 셀 수 있었다. 물살이 바뀌면서 빙빙 돌며 짙푸른 절벽을 감싸안아 위쪽의 정자 그림자를 적시고, 다시 물살이 바뀌어 하나로 합쳐서 질펀하게 흐르며 정자 오른쪽으로 빠져 나간다. 바깥쪽에 죽 늘어선 기묘한 바위 봉우리는 높이가 수십 길이나 되고, 가히 몇 리에 걸쳐 널려 있다. (뻥이 좀 세네요.^^) 바야흐로 한여름 풀과 나무들이 빽빽이 우거져 계곡물에 그림자를 드리우니 마치 그림같다.
洲落沙出。瑩白如雪。有石在其邊。中凹窪可容數斛。上刻尊巖瓊島四大字。皆金氏筆。二詩。楊士彦也。
모래톱에서 모래가 흘러나오는 것이 눈처럼 하얗게 반짝인다. 그 강가에 바위가 있는데, 가운데가 웅덩이처럼 움푹 파여서 (술을) 여러 말[斗 ; 斛] 담을 수 있다. 바위 위에 ‘준암(尊巖)’, ‘경도(瓊島)’라고 쓴 커다란 글자 넉 자는 모두 김씨의 필적이다. 시 두 편은 양사언 필적이다.
始至亭者。涉彎抱過亭下。如鏡裏行。心目俱朗。舍馬而岸穿邨閭。繞出亭左。巖益詭水益駛。變態千萬。耳不暇謀。目不暇接。
비로소 정자에 이르러 물굽이가 둥글게 껴안은 만(灣)을 건너 정자 아래로 지나가는데 마치 거울 속을 흘러가는 것처럼 가슴이 시원하다. 말을 놔 두고 언덕의 마을을 관통해 정자 왼쪽으로 우회했더니 바위가 훨씬 더 기묘하고, 강물이 훨씬 더 빨리 흘러서 변하는 모양이 천태만상이라 눈과 귀로 보고 들을 겨를이 없었다.
緣溪而行。攀崖而上。則爽塏幽靜。飄飄有遺世獨立之想。
시내를 따라 걸어가서 벼랑을 기어 올라갔더니 시원스럽게 탁 트이고 그윽하며 조용해서 홀가분하게 속세를 잊어버리고 홀로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然後自亭左對眺奇峯。俯瞰明沙。窈窕要妙。如珍寶錯列。雖知其奇而不知所以爲奇。 夫一亭而兼有數美。 此金水之所以爲金水而最於溪亭者與。
그런 뒤에 정자에서 왼쪽을 마주 대해 기이한 바위들을 바라보고 곱고 깨끗한 모래밭을 굽어보니, 곱디곱고 지극히 오묘해서 마치 진기한 보배가 뒤섞여 열을 지은 듯해서 비록 그 기묘함을 안다고 하더라도 어떤 것이 기묘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한 정자가 여러 가지 아름다움을 갖출 수 있으나, 이곳 ‘금수(金水)의 자리[金水之所]’는 ‘금물결[金水]’뿐만 아니라 가장 뛰어난 ‘계곡의 정자[溪亭]’를 동시에 갖추고 있다.
辛未仲夏。余與李光甫,舍弟繼仲,李子承諸人來遊。太守李士中載酒網魚。晤言終日。賦詩和之。 子承畵而余爲記。
신미년 중하(仲夏 : 음력 5월)에 나와 이광보, 내 아우 계중, 이자승 등 여러 사람이 놀러 왔더니 태수 이사중이 술과 물고기를 싣고 와서 하루 종일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며 시와 부로 화답하였다. 이자승이 그림을 그리고 나는 기(記)를 썼다.
댓글목록
김영윤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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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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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참고자료
조선의 문화공간2
이종묵지음-휴머니스트-2007.05.30
책본문 94 .. 조선의 문화 공간경도(瓊島) 양사언의 바위 글씨. 신선이 사는 섬이라는 뜻이다. 금수정(金水亭) 앞에 있는데,서명응은 김확의 글씨로 보았다.... 98 페이지
*김확(1572-1633)
솔내영환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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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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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균대(鈞臺)’1)는 정자 주인 김씨의 필적이다.
鈞臺는 釣臺(조대)입니다. 釣臺 또한 琴臺의 오류입니다만....
김영윤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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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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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서명응(1716-1787)이 위 글을 쓴 해(1751)의 정자주인은 瀅 (1715-1771)公 으로 도사공(상원)의 고조이십니다
바로 위의 제 답글의 조선의 문화공간2(이종욱 지음)에서 서명응이 김확으로 보았다는 근거가 궁금합니다만 제 느낌으로도 부사공(확)이전 금옹(윤복)할아버지 사이의 한분이 아닐가 생각해봅니다
여기서의 亭之主金氏筆也는 글을 확인(방문)한 시점이 아니고 글을 쓰신 당시(언제인지 미상)를 말함이 아닐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