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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 15대 종손 이동은 옹 100년 머문 종택 떠나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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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중 작성일10-01-27 05:48 조회2,427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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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 15대 종손  이동은 옹 100년 머문 종택 떠나다 

 

3천여 조문객 애도물결 … 정치권서도 추모 잇따라
선산 `묘지산`에 모셔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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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전 10시께 발인제를 마친 검소하게 꾸며진 고 이동은 옹의 상여가 종택을 떠나고 있다. 200여명의 유족들이 만장과 굴건재복을 두른 상여행렬을 따라 가고 있다. 퇴계 16대 종손 이근필(77·왼쪽)옹이 퇴계이황 선생의 묘앞을 지날때 상여행렬이 멈쳐서자 오열하고 있다. 27일 오전 10시께 발인제를 끝낸후 유족들이 상여를 따라 오열속에 종택을 떠나고 있다.

 퇴계이황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올해가 440년째.

대대로 조상과 가문의 뜻을 받들며 `종손`의 막중한 삶을 살았던 15대 종손 이동은(李東恩)옹이 101세의 일기로 지난 23일 타계한 지 나흘째인 26일, 빈소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조문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이동은 옹이 타계한 후 빈소에는 정치권은 물론 사회각계의 조문과 추도행렬이 연일 이어졌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 정세균 민주당 대표, 박근혜 전대표 등이 조화를 보내오는 등 정치권이 이날 만큼은 한목소리로 고 이동은 옹에 대한 못내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전했다.

5일 장례기간 동안 안동의료원에 마련된 빈소에는 집안후손 등 전국에서 3천여 명에 달하는 조문객이 찾아 고인을 추도했다. 안동시는 밀려오는 조문객들의 차량 주차장 확보를 위해 시청광장에 임시 주차장을 마련하기도 했다.

서울 서초구에서 온 김순옥(59)씨는 “타계 소식을 듣고 평소 존경해 온 퇴계 선생이 생각나 그냥 막 내려 왔다”며 “한번 뵌 적 없는 고인은 우리나라의 교육의 근간인 유교 교육 활성화에 크게 이바지 한 분”이라며 흐느꼈다.

또 이동한(17대손·74)씨는 “생전 고인은 볼펜 글씨도 직접 쓰고 알아 볼 정도였으며, 보청기 없이도 라디오를 청취하는 등 건강했다”며 “지난해 의성김씨 종손의 문상도 직접 갈 정도로 정정했다”고 고인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고 이옹의 상여는 26일 밤 10시께 입제를 한 후 100년 간 머물렀던 도산면 토계리 종택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 뒤 27일 오전 10시께 퇴계이황 선생 등 대대로 선조들이 모셔진 인근 선산인 `묘지산`으로 떠났다.

27일 발인에서 18명으로 구성된 상여꾼은 앞소리꾼의 구슬픈 선창곡에 따라 복창을 반복하면서 상여분위기는 더욱 고조됐다. 이날 고인의 영정을 모신 17대손과 혼백을 모시는 상주가 선두에 섰고 이어 전통상례복식인 굴건재복을 갖춘 상주를 포함한 유족들이 뒤를 따랐다.

특히 `하계길` 앞 퇴계 이황선생의 묘소를 지날 때에는 200여명의 유족들이 한꺼번에 대성통곡 해 주변사람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오전 11시 20분께 진성 이씨들의 선산인 `근지산`에 임시 마련된 빈소에는 미처 조문하지 못한 조문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고 이 옹의 묘는 14대 이원각 춘고공의 묘 밑에 14년 전 이미 세상을 떠난 부인의 묘와 합장으로 안장됐다.

고 이옹의 장례는 27일 오후 2시 퇴계 이황선생의 묘와 불과 100여m 지척의 거리에 마련된 묘에 국민들과 유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제례절차인 하관식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한편 100세를 넘긴 고인은 평생 건강비법으로 퇴계 이황선생이 정리한 활인심방(活人心方)을 통해 건강관리를 유지해 온 것으로 알려져 세인들의 장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간략히 소개하면 <▲고치삼십육(叩齒三十六):아랫니와 윗니를 36번 마주친다. ▲적룡교수혼(赤龍攪水渾):혀로 이를 닦아 침 삼키기. ▲차수쌍허탁(叉手雙虛托):깍지 끼어 손을 위로 올리기>등으로 소개돼 있다.

안동/권광순기자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작성일

  명문가문인 퇴계 종손가의 전통 장례식 장면을 잘 보았습니다.
이 귀한 모습을 보여 주신 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