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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경남 관찰사 휘 사묵 공의 새로운 묘비가 세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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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식 작성일10-01-11 18:47 조회2,004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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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사공 휘 사묵 공의 묘비문을 년전에 지었음을 알려드린 바가 있습니다. 일생을 강직함과 올곳음으로 사시고 나라의 강건함과 종묘사직의 수호를 위해

 

고군분투 하셨으나 나라의 망함은 막으시지 못하신지라 그 부끄러움을 초의로 자신의 몸을 가리우고 망건으로 하늘의 빛을 가리신 채 일제의 작위도

 

내 던지시고 사시다가 돌아가셔서 선영이 있는 충주 엄정 논리동에 안장되어 계신 분 이십니다. 직계손이신 태균 종숙의 부탁을 받고 어렵게 어리석음을 무릅쓰고

 

묘지문을 지어드린지 두어달이 지나 새롭게 단장한 묘비석을 건립하셨다는 기별을 받잡고 이제깔끔하게 정리된 묘비를 보여드릴 수 있어 족손으로 무에인가 미력함

 

이라도 보탠것 같아 마음이 편안합니다. 명문가에서 상것이 나올리가 있겠습니까? 옛것을 밝혀 오늘을 살피고 내일의 길을 일러줌이 남아 있는 저희가 해야할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진은 항용님께 부탁 드리옵고 제가 염치를 무릅쓰고 지었던 묘지문은 첨부해 봅니다. 그리고 종인님들의 올 한해 뜻하시는 모든 일들이 성취되

 

시길 빕니다.

 

경기․경남 양도 관찰사 김사묵 묘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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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죽과 청송의 푸르름은 겨울이 되어서야 알 수 있다는 성현의 말씀은 경기․경남 양도의 관찰사를 지내신 공을 두고 이른 말이리라.

 

공의 휘(諱) 는 사묵(思黙) 이고 本은 (선)안동((先)安東)으로 시조는 신라 경순왕의 손 평장사(平章事) 휘 숙승(叔承)이고 중시조는 고려조 정국정난공신 첨의령(僉議令) 상락군(上洛郡) 개국공(開國公) 휘 방경(方慶) 이시다.

 

觀察使公의 18대조이신 익원공(翼元公) 휘 사형(士衡) 공은 조선 개국 1등공신 上洛府院君에 좌의정을, 익원공의 증손 문정공 휘 질(礩) 공은 보사공신. 좌의정이다. 관찰사공의 10대조 휘 계현(繼賢) 공은 임란 호성공신 3등이며 영암군수를 지냈다. 9대조 휘 적(辶易 ) 공은 3도 수군 통제사, 8대조 휘 익휘(益輝) 공은 명천도호부사를 지냈다. 7대조 휘 감(戡) 공은 사헌부 감찰, 5대조 휘 근(根) 공은 흥원현감․ 대흥군수를 지내셨다. 공의 고조부 휘 재혁 공은 통덕랑을, 증조 휘 호(壕)공은 증종3품 통훈대부규장각 직각.배위는 숙인 전의 이씨 이시다. 조부의 휘는 원복(源福)이시며 증 종 3품 통정대부 규장각부제학, 배위는 숙부인 순흥안씨 이시다. 공은 증 가선대부 규장각 제학을 지낸 부 휘 전(橏), 증 정부인 밀양박씨 사이의 2자로 태어났다. 형님인 통훈대부 전 중추원 의관 휘 양묵(養黙) 공은 백부 휘 구(構) 와 백모 평양조씨에게 계출하였고 형제간의 우의는 각별했다.

 

관찰사공은 1856년 4월 2일 충주 엄정 논리동에서 나서 자랐다. 한학에 조예가 깊어 향리에서 후학을 가르치다 고종 25년(1885년)에 급제 벼슬길에 들어섰다.

 

1895년 유람신사단원, 1897년(광무 원년)에 중추원 참서관(參書官), 1900년에는 중추원 참사관, 1902년 7월 5일 평리원 수반검사. 1905년 3월 7일 경무청 경찰국장. 동년 9월에 경무사로 승진되었다. 1907년 5월 30일 정2품 내부경무국장, 동년 6월 28일 경상남도 관찰사. 1908년(순종1년) 6월 11일 경기관찰사로 목민의 도리를 다하였다.1909년 3차에 걸쳐 순종황제를 소견․ 수행하여 황제의 총애와 아낌이 이와 같았다.1910년(순종3년)2월에 종묘사직의 수호에 진력한 공으로 훈3등 훈장을 받으셨다. 경술국치 후 일제(日帝)는 공의 영향력과 충직함을 이용할 목적으로 1910년 10월 17일 중추원 찬의의 직을 주었으나 공은 즉시 의원면직을 하시었다. 이후 공은 일체의 공식 활동을 접으시고 자택에서 은거 하던 중 교육만이 나라를 되살릴 비책임을 자각, 1920년 6월 27일 조선교육회에서 부회장으로 활동 중 1921년 4월12일 졸하여 향리인 논리동 선산하에 안장되었다.

공은 배 달성서씨(達城徐氏)와 무후인지라 휘 재행(在行) 공으로 하여금 공의 뒤를 잇게 하였다. 재행 공은 명회(明會)와 장회(章會)를 두었다. 명회는 태민(泰民), 태억(泰億). 태국(泰國). 태욱(泰郁)을 두었고, 태민은 국군 소위로 복무 중 한국전쟁 시 행불되었으며, 태억은 윤식(崙植), 대식(大植)을, 태국은 정식(庭植), 형식(亨植)을 두었다. 태욱은 재식(宰植)을, 장회는 태학(泰鶴), 태균(泰均)을, 태학은 영식(寧植)을, 태균은 진식(振植)과 홍식(泓植)을 두었다.

 

공의 증손 태균 종숙이 공의 행장을 살펴 구비(舊碑)를 대신할 비문을 짓기를 재삼 부탁하므로 비록 재주 없으나 공의 고결한 생애를 흠모하는 족손(族孫)으로 삼가 銘 한다.

 

학문을 배우고 뜻을 세움은 나라를 위함이로다.

향리에서 뜻 세워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내 몸 보살핌 없이 진력을 다했네.

국운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자 충심을 다했으나

뜻 함께할 동지가 없었네.

나라 잃은 부끄러움 선대조의 묘하에서

초의로 가리고자 했으나 가릴 수 없었네.

공은 자신의 이름 감추고자 하였으나 망국의 어두운 밤하늘에서

선연히 빛남을 어찌 감출 수 있으리오.

 

2008년 8월 맹하에 불민한 족손 완식 짓다

댓글목록

관리자님의 댓글

profile_image 관리자
작성일

  예, 감사합니다.
사진과 명문의 묘지명을 본 홈 익원공파 내의 충주 엄정 문정공계 소파종회란에 올리겠습니다.
그런데 묘비 세운 일시, 찬자, 서자, 묘비 크기, 묘비석 석질, 설립 장소, 등을 부탁드립니다.

김완식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완식
작성일

  세운일시: 2009년 10월 8일
글을지은사람: 김완식(익)
글을 새긴 사람: 김기원
재질: 오석
세운장소: 충북 충주 엄정 논리동  선영

김완식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완식
작성일

  묘비석의 크기: 54cm (넓이) x 150cm (높이) x 24cm (두께)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