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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림촌 : 예안파 일기류에 나타난 ‘花林’, ‘花林村’, ‘花林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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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작성일09-11-12 08:59 조회2,3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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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안파 일기류에 나타난 ‘花林’, ‘花林村’, ‘花林寺’

<花林村, 花林>

• 果軒日記 四 / 戊辰年 十一月 二十四日 (1688년 숙종 14년)
食後裴益純氏去, 是日大風寒, 夕風小止而寒氣甚酷, 與三再從弟往
居仁¹, 至花林村²舍, 溫酒飮之, 至居仁夜已深矣.

* 이 일기는 오천(안동댐에 수몰된 옛 군자리)에서 화림촌을 거쳐 거인리(현 대현리 거인마을)로 간 기록이다. 현재의 감애리 말바위에서 북서쪽으로 야트막한 산을 하나 넘으면 광김 예안파 선대 묘소가 있는 거인마을이다.

1. 居仁 : 현재의 안동시 북후면 대현리의 자연마을 중 하나. 대현리는 와룡면 서현2리에 속해 있다가 1987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북후면 대현리에 편입되었다. 대현리 자연마을은 한골, 옷밭골, 널바우, 거인 4개 마을이다.

2. 花林村 : 충렬공의 조부(휘 민성) 묘소 소재지로 우리 족보에 ‘安東府西一息花林村[안동부 서쪽으로 1식(一息) 거리의 화림촌]’으로 기록돼 있다. ‘식(息)’은 ‘30리’를 뜻하는 거리 단위로, 경국대전과 태종실록, 세종실록지리지 등에 따르면 대체로 1식(一息), 즉 30리마다 역참을 설치하였다.
화림촌은 현재의 안동시 녹전면 서삼리의 자연마을 중 하나인 마암(馬巖 : 말바위) 지역의 옛 명칭이다. 서삼리는 구한말에 경상북도 예안군 서면에 속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동현리, 사천리, 이전리의 3개 리(里)를 병합하여 서면의 3개 리라는 뜻으로 西三洞(西三里)이라 하여 당시 안동군 녹전면에 편입되었다. 그 뒤 1995년 안동시와 안동군의 통합에 의해 안동시 녹전면 서삼리가 되었다. 현재 서삼리에는 텃골, 상이전, 하이전, 모란, 보현, 염불당, 마암 등의 작은 마을이 있다.

          * 조선왕조실록 - 태종 15년(1415년) 12월 14일
             ilsik.JPG

• 果軒日記 四 / 庚午年 二月 二十五日 (1690년 숙종 16년)
食後裴奉卿訪, 岱兒曉徃居仁, 余以病故, 食後作行至
花林, 遇雨而不至衣濕, 直到山所, 季父·石溪· 遁村從叔·祐弟·岱兒來看役, 錫胤徃易東, 罷齋後當來而不來, 伯賢徃在陵寺, 錫範稱以無馬, 皆不來, 可怪可歎, 雨數巡, 冠盡濕衣濕上衣而已, 暮畢役行節祀, 岱兒看役於山西, 寒戰作痛先還烏川, 可慮, 遁村從叔還烏川·石溪從叔·祐弟及余留宿.

• 果軒日記 六 / 庚寅年 三月 十五日 (1710년 숙종 36년)
曉雨灑沾石而止, 朝前發行, 踰
花林嶺, 遇智孫與之偕往居仁齋舍, 午前行墓祀, 至金鶴洞而留宿.

<花林寺>

• 梅園日記 十八 / 甲申 三月 二十四日壬子 (1644년 인조 22년)
誦書, 以健一家, 以家中不安, 避寓于
花林寺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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