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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답사자료 (1) 다경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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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9-09-17 12:45 조회2,5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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多景樓

楊子渡。望北固山悼金若齋。 洪武癸丑。與先生同登北固山多景樓 포은 정몽주

양자강에 도착하여 북고산을 바라보면서 척약재를 애도하다. 홍무계축년에 포은선생과 척약재선생은 함께 북고산 다경루에 올랐었다. (*홍무계축년은 1373년이다)

 

先生豪氣盖南州。선생의 호탕한 기질은 중국 남쪽을 뒤덮었으니

憶昔同登多景樓。그대와 함께 다경루에 올랐던 것을 생각하고

今日重遊君不見。오늘 다시 찾아왔지만 그대는 볼 수 없구려

蜀江何處獨魂遊。 그대의 외로운 넋은 양자강 어느 곳에서 떠다니시는가

先生於洪武癸丑。貶雲南。歿于蜀中路上。척약재 선생은 홍무계축년에 운남으로 귀양는 도중 돌아가셨다.

*여기에 홍무 계축년은 1373년이므로 홍무 갑자(1384년)이 맞다.

번역;고전번역원

 

 

潤州甘露寺多景樓次韻   척약재 김구용

윤주 감로사에서 다경루에서 차운하다.

 

倦游聊復此登樓。유람에 지쳤지만 애오라지 다시 이 누각에 오르니

天豁風微意欲秋。하늘이 넓고 바람이 없어 가을이 가까운 듯하네

南北江山雲自起。남북의 강산에는 구름이 절로 일어나고

古今興廢水空流。고금의 흥폐에도 물은 덧없이 흐르네

錢塘想見千年物梁武時古器 전당은 천년 묵은 옛 물건인데( 전당은 양나라 무제때 옛 그릇이다.)

玉笛吹笙萬里愁。옥저와 생황소리는 만리의 근심이네

賴有高僧如惠遠。혜원과 같은 고승이 있어서

夕陽歸去更回頭。석양에 돌아가며 다시 머리를 돌이키네

 

江流漠漠鳥飛還。강물은 아득히 흐르고 새는 날아 돌아오는데

天近雲霞手可攀。하늘은 놀에 가까워 손으로 당길 수 있을 듯 하네

始信此樓無價處。이 누각의 값을 헤아릴 수 없는 것을 비로소 믿겠거니

望中相作畫圖看。바라보니 그림을 보는 듯 하네.

번역; 성범중(울산대 교수)

 

척약재 선조께서는 聖節使인 正使 成元계(手+癸)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것은 명 태조 주원장이 즉위한지 5년 후인 1372년 8월부터 이듬해(1273)년 7월까지 약 1년간이다.

포은선생도 1372년(공민왕21)4월에 서장관으로 洪師範 과 함께 명나라 수도에 도착하였다가 8월에 귀국하던 중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배가 파선되어 홍사범은 익사하고 구사일생으로 포은선생은 목숨을 구해 다시 명나라 수도(남경)로 되돌아왔다.

이 때 두분이 만나 명승지를 관광하시면서 윤주 감로사에 있는 다경루에 올라 시를 지으신 것이다. 포은선생의 다경루 시는 전하지 않으나 척약재께서 차운하신 것으로 보아 포은선생의 시도 있었을 것이다.

그후 척약재께서 1384년 1월 15일에 행례사로 명나라에 가시던 중 요동에서 체포되어 명나라 수도 남경으로 압송되어 황제의 명으로 운남 대리위로 유배 가시던 중 노주 영녕현 강문참에서 병사하시었으니 그해(1384년)7월 11일이다.

그후( 우왕 12년(1386, 홍무 19년) 2월 고려에서는 명에 정몽주를 파견하여 세공의 삭감을 청원하였고 명 태조는 흔쾌히 받아들여 ‘3년에 1회 조공, 공마(貢馬) 50필’로 확정되었다.) 포은선생은 다시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옛 일을 생각하며 이 시를 지으신 것이다.

 

감로사 다경루

 

감로사는 중국 江蘇省 鎭江市 北固山 後峰위에 있는 절이다. 중국 삼국시대 東吳 甘露 원년(265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그 후 여러 차례 허물어짐과 건립됨이 계속되었다. 산꼭대기의 凌雲亭을 康有爲가 고쳐서 [江山第一亭]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곳의 多景樓는 감로사 풍경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한다. (척약재 김구용의 문학세계에서)

 

전장 둬징러우 [鎭江 多景樓(진강다경루)];중국 장쑤성[江蘇省] 전장시[鎭江市] 진산[金山] 간루사[甘露寺] 뒤편의 베이구산[北固山]에 있는 누각.

베이구러우[北固樓]·춘추러우[春秋樓]·샹쉬러우[相婿樓]·수좡러우[梳妝樓]라고도 불렸다. 화사한 그림이 가득한 대들보와 하늘로 쳐들린 처마를 가진 화량비첨누각(畵梁飛檐樓閣)으로서 웨양[岳陽]의 웨양러우[岳陽樓]와 우한[武漢]의 황허러우[黃鶴樓]와 더불어 3대 명루(名樓)로 꼽힌다. 송나라의 서화가 미불(米芾)이 쓴 '천하 강산 제일의 누각'이라는 현판으로 유명하다. 당나라 때 건립되었으며, 둬징러우(다경루)라는 명칭은 당나라 때 재상을 지낸 이덕우(李德祐)가 지은 〈임강정(臨江亭)〉의 '다경현창유(多景懸窓牖)'라는 시구에서 따왔다. 2층 규모에 회랑이 사방으로 통하며 가는 곳마다 진풍경을 이룬다. 누각에 올라가 멀리 바라보면 빼어나고 운치 있는 다양한 산수경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멀리 동쪽으로는 출렁이는 강물이 일사천리의 기세로 흐르고, 서쪽에는 웅기중기 산봉우리가 첩첩하고 멀리 희미하게 멀어져가는 산봉우리들이 푸른 하늘과 어우러져 혼연일체를 이룬다. 가까운 진산은 배경이 선명하여 단아함을 뽐내고, 맞은편 기슭에 양저우[揚州] 문봉탑(文峰塔)이 어렴풋이 보인다. 또 아래를 굽어보면 시적 정취와 그림 같은 경관이 절로 감탄을 쏟아내게 한다. 베이구산 최고의 명소로서 구양수(毆陽修)·소동파(蘇東坡)·신기질(辛棄疾)·육유(陸游) 등 역대 유명 문인들이 숱한 명구(名句)를 남긴 곳이기도 하다. 누각 동쪽에 돌기둥의 방정(方亭)이 있는데 옛날에는 북고정(北固亭)이라고 불렀다. 명나라 숭정제(崇禎帝) 때 건립된 이 정자는 베이구산의 가장 높은 곳에 지어져 마치 하늘에 닿은 것처럼 보인다 하여 능운정(凌雲亭) 또는 마천정(摩天亭)이라고도 불렀다. 삼국시대에 유비(劉備)의 부인이 된 손권(孫權)의 누이 손부인(孫夫人)이 유비가 백제성(白帝城)에서 병사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애통해하며 이 정자에 올라 제사를 지낸 뒤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한 데서 유래하여 제강정(祭江亭) 또는 임강정(臨江亭)이라고도 불렀다. 청나라 말기의 캉유웨이[康有爲]는 정자에 바라본 경관에 감동하여 '강산제일정(江山第一亭)'이라 칭송하였다. 정자 밖에는 담장과 회랑이 있고, 그 안에는 돌책상과 돌의자가 있다. 정자에 올라 멀리 바라보면 주변의 물빛과 산색이 한눈에 들어오고, 특히 달밤의 경치는 한결 더 아름답다. (두산백과사전에서)

 

다경루에서 눈온 뒤에[多景樓雪後]   이제현(李齊賢)

 

높은 다락에 오르니 공중에 가득한 눈이 반갑더니 / 樓高正喜雪漫空

갠 뒤에 바라보니 더 한층 기관일세 / 晴後奇觀更不同

만 리 하늘은 은세계를 둘렀고 / 萬里天圍銀色界

육조의 산들은 수정궁을 안았네 / 六朝山擁水精宮

창해에 솟는 햇빛은 거나한 눈을 흔들고 / 光搖醉眼滄溟日

초목 휩쓰는 바람이 시 짓는 창자에 스며드네 / 淸透詩腸草木風

우스워라, 구구이 무슨 일에 골몰하여 / 却笑區區何事業

10년간 번잡한 거리 땀 흘리며 다녔나 / 十年揮汗九街中

 

다경루에서 권일재를 모시고 옛사람의 운으로 함께 지음

[多景樓陪權一齋用古人渭賦  ] 이제현(李齊賢)

 

양자강 남쪽, 옛 윤주 / 楊子津南古潤州

환락은 몇 번이고 시름은 얼마였던고 / 幾番觀樂幾番愁

고기가 미끼를 탐하듯 나라일 본 영신들 / 佞臣謀國魚貪餌

새가 모이를 기르듯이 백성 걱정하는 간리들 / 點吏憂民鳥養羞

바람에 풍경이 뎅겅, 밀물이 포구에 들고 / 風鐸夜喧潮入浦

어둠속에 누역 오뚝, 비가 다락에 휘뿌리네 / 煙蓑暝立雨侵樓

중류에 돛대를 침은 내 일이 아니로세 / 中流擊楫非吾事

하늘 가 범려의 배를 한가히 바라보네 / 閑望天涯范蠡舟

[주D-001]중류에 돛대를 침 : 진(晉) 조적(狙逖)이 원제(元帝)에게 청하여 군사를 통합해서 북벌(北伐)할 때 양자강을 건너며 돛대를 치면서 맹세하기를, “중원을 밝히지 못하고 다시 건너면 이 강과 같으리라.” 했다. 드디어 그가 석륵(石勒)을 격파하고 황하 이남의 땅을 회복했다.

[주D-002]범려(范蠡)의 배 : 범려(范蠡)가 계교를 써 오(吳)를 멸한 뒤에 벼슬을 버리고 미인 서시(西施)를 데리고 오호(五湖)에 떠 놀았다 한다.

 

감로사 다경루(甘露寺多景樓)  권한공(權漢功)

 

북고산에 올라 윤주를 바라보니 / 北固登臨望閏州

한 병 술로 고금의 시름 씻기 어렵네 / 一尊難洗古今愁

물결이 내달으니 강은 아직 성난 듯 / 浪奔江勢猶含怒

나라가 망했으니 산은 지금도 부끄러워하누나 / 國破山顔尙帶羞

회해의 풍연은 옛 성터에 이었고 / 淮海風煙連古壘

금초사의 종소리는 높은 다락에 들려오네 / 金焦鍾鼓殷岑樓

지난 날의 흥망을 뉘더러 물어볼꼬 / 憑誰與問興亡事

모래의 갈매기들만 배 가까이 오는구나 / 唯有沙鷗近葉舟

 

 

다경루(多景樓)에서 계담(季潭)에게 주며[多景樓贈季潭]  정몽주(鄭夢周)

 

평생에 기른 호연지기를 펴려거든 / 欲展平生氣浩然

모름지기 감로사 다락 앞에 와보소 / 須來甘露寺樓前

옹성의 화각 소리는 석양이 비낀 때 / 瓮城畫角斜陽裏

과포의 돌아가는 돛은 가랑비 내리는 물가에 / 苽浦歸帆細雨邊

옛 가마엔 아직도 양 나라 세월 머물러 있고 / 古鑊尙留梁歲月

높은 난간은 곧장 초의 산천을 위압하네 / 高軒直壓楚山川

올라서 반나절이나 중을 만나 얘기하니 / 登臨半日逢僧話

동한의 8천 리 길을 내 잠깐 잊었네 / 忘却東韓路八千

 

**중국의 삼대 누각;강소성 진강시 다경루. 호북성 무창현 황학루. 호남성 동정호 악양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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