西厓先生逝世四百周年追慕祭典을 마치면서 ----- 따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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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중 작성일08-12-21 12:36 조회1,755회 댓글1건본문
安東市와 西厓柳先生逝世四百周年追慕事業準備委員會의 공동주최로 새로운 천년 西厓의 가르침이란 주제로 「西厓柳先生逝世四百周年追慕祭典」을 2007년 5월10일부터 2008년3월2일까지 근二個年에 걸쳐 25개에 달하는 다양한 행사를 先生의 世居地 安東을 비롯한 京鄕各地에서 전국의 추모객들과 전 국민들의 관심속에 성황리에 거행하였습니다.
본 行事를 개최한 근본취지는 미증유의 국난인 임진왜란을 극복하여 再造山河의 위업을 달성하신 西厓柳成龍先生의 逝世四百周年을 맞아 선생께서 몸소 보여주신 나라를 사랑하고 백성을 섬긴 거룩한 정신과 실천하신 實用政策등 훌륭한 업적을 재조명하여 후세들에게 귀중한 遺産을 물려주려는 것이었습니다. 추모행사를 주관하고 준비하기위하여 2005년9월14일 西厓先生의 師門내지 門人家門代表와 세의가 돈독했던 家門代表및 國家發展에 크게 공헌하신 指導級人士들로 「西厓柳先生逝世四百周年追慕事業準備委員會」를 결성하고 忠武公 李舜臣장군의 후손인 李種南 前 監査院長을 準備委員長으로 西厓先生의 후손인 本人을 副委員長겸 實務委員長으로 선출 했습니다.이듬해 개최된 제2차 준비위원회 총회에서 安東市와 공동주최하기로 의결하고 金暉東 安東市長을 共同 委員長으로 선출해서 安東市와 협동함으로써 대과없이 追慕祭典을 마무리 했습니다. 慶尙北道와 共同主催機關인 安東市가 補助金을 지급해주고 準備委員들 및 각계각층의 독지가들과 豐山柳門 분들이 힘을 모아 誠金을 헌성해 주어서 財源이 모자람 없이 조달되었습니다. 安東市內 각 機關團體여러곳과 뜻을 같이하는 독지가 여러분도 후원과 협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번행사에서 특별히 언급 할 것은 國內의 世誼가 돈독했던 家門 후손들과 政見을 달리해 교류가 소원했던 家門후손들은 물론 海外에서의 일본 임진왜란 당사자 후손들과 명나라 이여송장군 후손들이 다함께 河回 忠孝堂 한 지붕 아래 모여 西厓先生 靈前에 참배하고 뒤이어 거행된 개막식에서 지난일 들에 대해 반성하고 화해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는 점입니다. 일본측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총사령관 우키다히데이에(宇喜多秀家) 장군의 후손인 아사누마 히데도요(전沼秀家)와 일본군 선봉장 고니시 유끼나가(小西行長)장군의 후손인 고니시 다카노리(小西尊德)등 다수가 참석하여, 고니시 다카노리선생은 개막식에서 「화해의 불」을 점화했고 아사누마 히데도요 선생은 柳成龍先生에게 드리는 헌사를 하면서 西厓先生과 韓國國民들에게 자기 先祖가 일본측 총대장에 임명되어 조선을 침략해 막대한 피해를 입혔음을 선조를 대신해서 진심으로 사과하는 감격의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이는 政府次元이 아닌 民間外交로 성취한 흔치않은 結實이라고 평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 측에서는 명나라 李如松장군 후손인 리저미엔(李澤綿) 리쓰거(李革士) 두분이 참석하여 리쓰거 선생은 「화해의 불」을 점화했고 리저미엔 선생은 추모헌사를 했습니다. 나아가 5월12일(土) 오후3시 개막식에서 「400년만의 화해」라는 話頭로 韓 ․中․ 日 代表가 화해의 合火式을 거행함으로써 歷史的記錄을 남겼습니다. 河回마을 忠孝堂 告由祭에 사용한 불씨에서 採火한 횃불을 공동위원장인 金暉東 安東市長과 李種南 前 監査院長이 壇上에 계신 네분 (柳寧夏 西厓宗孫, 李天鏞 栗谷李珥先生宗孫, 리쓰거 李如松 장군 後孫, 고니시 다카노리 小西行長의 후손)께 전달하여 이 불을 合火 시킴으로써 진정으로 화해하는 모습을 全 人類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準備委員會가 행사 계획을 수립하면서 100年을 주기로 거국적으로 종합행사를 거행한 전례에서 교훈을 얻으려고 노력했지만 쉽게 대상을 찾을 수 없어서 2001년에 거행한 「退溪先生誕辰500周年記念行事」를 주로 참고했습니다. 그러나 追慕行事는 誕辰行事와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추모행사에 합당한 행사를 준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퇴계탄신500주년행사는 慶北道․安東市가 主催者가 되어 政府豫算으로 행사계획을 수립하여 해당 公務員이 주축이 되어 행사를 추진했지만 금번 追慕事業은 西厓柳先生追慕事業準備委員會가 主催者가 되어 모금한 金額에 慶北道․ 安東市의 補助金을 합해서 財源을 조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따라서 종합적인 행사계획을 수립하여 시행하는데 소요되는 財源을 조달하려면 여러 가지의 制約이 따르기 마련이어서 재원 조달상황에 발맞춰 행사의 우선순위를 정해나갔습니다 행사 당시만 돋보이는 일회성내지 이벤트성 행사 보다는 기록으로 남아서 後世들에게 共有財産으로 길이 남길 價値가 큰 것에 우선순위를 두었습니다. 또한 政府豫算支援이 있었기 때문에 公共性을 배려해서 便益이 社會내지 國民에게 널리 파급되도록 노력했습니다. 우선순위의 상위를 차지하여 역점을 둔 몇 가지 행사를 소개합니다.
첫째, 대규모로 개최한 학술대회였습니다, 저의 예산으로 서울과 안동에 나누어 별개로 학술대회를 개최하였으며 陸軍士官學校와 韓國漢文學會가 그들의 자체예산으로 학술대회를 개최했기 때문에 그 類例를 볼 수 없을 정도로 그 규모가 방대하였을 뿐만 아니라 당대를 대표하는 國․內外 代表學者등이 基調내지 主題發表를 담당하여 學界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서울에서는 5월10일 국립중앙박물관대강당과 5월11일 육군사관학교 화랑회관에서, 안동에서는 5월15일 시민회관에서 성대하게 대회를 개최하였으며, 이와 별도로 4월14일 韓國漢文學會에서 西厓先生逝世400周年 2007年度 春季學術發表大會를 개최하여 追慕祭典의 비중을 드높혔습니다.
韓國 史學界를 대표하는 李成茂박사, 李泰鎭박사, 鄭萬祚박사가 기조 논문을 발표하고 사계의 권위자 여러분이 각 분야의 주제논문을 발표하고 지정토론자들과 열띤 토론을 했습니다. 이번 학술대회의 성과를 논한다면 과거의 西厓硏究는 西厓先生의 탁월한 공로와 그 위대성을 드러내고 서애선생에 대한 일부의 비판에 대해 일일이 변백하는데 힘을 쏟았지만 금번에는 서애선생의 功力의 토대가 무엇이고 그 연원은 어디에서 비롯 됐는가 하는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했다는 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학술대회의 성과를 이성무, 이태진, 정만조, 이헌창 교수들이 편집위원이 되어 單行本『류성룡의 학술과 경륜』「태학사」 발행을 간행하여 各級 圖書館에 기증하여 知的財産을 國民모두가 공유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나아가 기조발표자와 주제발표자들이 다 같이 참여하여 2次에 걸쳐 集談會를 개최하고 그 결과를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기조논문을 포함시켜 단행본『류성룡의 국가경영』을 발간하여 각급도서관에 기증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둘째, 서애류성룡 선생의 傳記를 발간하여 당시 활동 상황을 돌아보고 업적을 되새겨 후세들에 게 살아있는 교육 자료로 활용하는 동시에 國際化時代에서 韓國社會를 선도할 참다운 指導者像 내지 師表의 像을 정립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한가람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李德一박사가 장기간에 걸쳐 집필하여 『설득과 통합의 리더 류성룡』(5월10일) 「역사의 아침 발행」을 간행하여 절찬리에 판매 중에 있을 뿐 아니라 2007년도 문화관광부 우수도서로 선정되었습니다. 西厓先生의 행적을 연대순으로 하나씩 살펴봄으로써 정치, 경제, 외교, 병법 등 전 분야에 걸친 그의 指導力을 일곱 가지로 압축해 보여 주었습니다. 선생은 전란극복을 위해 자신이 속한 계급의 身分的 特權까지 타파했습니다. 그 때문에 兩班 士大夫들의 저항에 부딪혀 불행한 종말을 맞이했다고 결론지우고 서애선생의 삶은 기존 黨派나 兩班 士大夫들의 시각이 아니라 歷史의 보편적 시각으로 되돌아보아야한다고 했습니니다. 그의 인생은 過去가 아니라 現在이며 우리의 未來 라는 것입니다. 李泰鎭(서울대 人文大學長)박사는 서애선생을 實學의 開祖라고 자신 있게 발표했고 李德一박사는 현 정부의 實用政策을 구축해온 역사속의 實用 主義者로 西厓 柳成龍, 正祖大王, 다산 丁若鏞을 꼽고 그 시초를 임진란 때 西厓先生이 실시한 압록강 中江鎭에 연 국제무역시장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셋째, 여러 가지 종류의 영상물을 제작 하여 보급하는데 역점을 두었습니다. 映像物이 미치는 막강한 영향력을 감안하여 서애선생의 활약상과 업적을 영상물에 담아 현시대의 모든 분들에게 서애선생의 진면목을 각인 시킬 뿐만 아니라 후세들에게도 널리 알려 올바른 指導者像 내지 師表의 像을 정립할 필요성이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安東市가 일찍이 2005년 豫算에 필요한 만큼의 액수를 책정하여 지원했습니다.
공영방송인 KBS韓國放送이 독자적으로 계획을 수립하여 KBS역사기획「임진왜란, 그 반성의 기록 징비록」을 제작하여 2007년4월29일 오후10시~11시까지 방영했습니다. 또한 (주) 민족영상이 저의 西厓柳先生逝世四百周年追慕事業準備委員會의 예산 뒷바침으로 西厓柳成龍逝世四百周年 추모다큐멘터리 『조선의 하늘을 떠받치다, 나라를 구한 명재상 서애 류성룡』41분량과 20분 분량 두 종류의 CD를 다량 제작하여 배포 했습니다. 더우기 豊山柳門을 비롯하여 각급 도서관, 박물관뿐만 아니라 각급 학교에 다량 배포해서 널리 보급시켰습니다. 나아가 安東MBC가 예산의 지원 없이 독자적으로 계획해서 특별 제작한 서애류성룡서세400주년특집 「조선선비, 백성을 돌보다」를 2007년7월26일(목) 오후11시~12시까지 방영했습니다. 그리고 서울MBC 에서도 2008년3월10일 오후3시~4시 까지 재방영했습니다.
넷째, 追慕事業準備委員會는 추모제전의 全貌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권의 白書에 담거나 畵報集에 담아 발간함으로써 400주년추모사업의 의미와 감동을 총 정리하여 후대에 그 뜻을 전승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冊子들이 다가올 500주년 나아가 연이어 거행하게 될 추모사업의 典範이되고 길잡이가 되는 역사적인 記錄物이 되길 기대하여 모든 행사를 포괄해서 수록했습니다.
다섯째, 유물․유품의 순회전시를 전국에 걸쳐 개최한 점도 역사기록으로 남을 것입니다. 國立中央博物館에서 2007년5월29일~7월8일까지 기획특별전을 개최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개관이래 최초로 역사인물로서는 서애선생을 선정해서「하늘이 내린 재상 류성룡」특별전을 개최하여 선생을 다시 조망 했을 뿐만 아니라 圖錄『하늘이 내린 재상 류성룡』(국립중앙박물관 편저) 을 발간해서 널리 보급했습니다. 이어서 壬亂史 專門博物館인 國立진주박물관에서 유물․ 유품을 그대로 옮겨 2007년9월11일~10월28일까지 유물전을 개최하였으며 先生의 世居地인 安東 韓國國學振興院 유교문화박물관에서도 국립진주박물관에서 전시했던 유물․유품을 그대로 옮겨 2007년12월10일~2008년3월2일까지 특별전시회를 개최함으로써 순회전시회의 대미를 장식했습니다.
逝世400周年行事가 2007년 당해년도 記念行事로 마감된다면 水平的으로 그 업적이 집합하는데 그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금번의 추모행사를 契機로 서애선생에 대한 연구가 단절 없이 지속되어 서애선생의 업적이 종합적으로 조명된 硏究結果物이 축척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유수한 大學의 硏究機關의 硏究陳이 硏究計劃을 수립하여 연구를 하는 것이 필수불가결의 요건 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後孫들의 가일층 의 분발이 수반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西厓柳先生逝世四百周年追慕事業準備委員會
實務委員長 柳漢晟(高麗大 名譽敎授)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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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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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앞으로 2012년은 우리 충렬공께서 탄생하신 지 800주년이 됩니다.
이때 우리도 기념대회를 하게 된다면 위 글은 중요한 타산지석이 되리라 봅니다.
정중님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