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공 묘소를 새롭게 정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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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윤 작성일08-12-17 20:39 조회1,936회 댓글0건본문
충렬공묘지문(이시발 지음)번역 -솔내 영환 (2003-01-14 18:52:00 )
.....................전략.................................
參奉金坼生員金坪. 以外裔居墓下. 與姓孫參奉慶達(建의오기) 在近諸孫. 謀易他石以新之. 且加封植. 來語余.
余於公. 爲母姓十三代孫. 嘗拜公之墓. 爲之助其資. 仍識其梗槪云.
참봉 김탁과 생원 김평등 여러 후예가 묘 아래에서 거쳐하였는데, 후손 참봉 경달(慶達)과 가까이
사는 여러 후손들과 함께 다른 돌로 바꿔서 새롭게 하기를 꾀하고, 장차 이를 북돋아 세우고자 하여
,
찾아와 내게 말하였다.
나는 (충렬)공에 대하여, 어머니의 성(외가)으로 13대 후손이 되니, 일찍이 공의 묘소에 참배하였고,
비석을 세우는 데 재물을 도왔으니, 이 때문에 그 대강을 알게 되었다.
위의 묘지문을 보며 의문은 왜 외손(外裔)인 김기 김평과 벽오(이시발)이 주도하고 경건 선조님을 비롯한 후손들이
나중에 거론되는가 였습니다 그런데 다음에 게제하는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저의 소견으로는 당시의 국가 시책의
연장에서 "전대 제왕 등의 묘를 정비하라고 전교하다"는 왕명에 의해 능묘에 봉식을 더하고 비석을 새로 세우는 차
원으로 이해됩니다 곧 요즘으로 보면 후손 차원을 넘어 관에서 주도하는 문화재 보존차원의 공적인 행사라 생각하
며 계속 연구해야할 과제라 믿습니다
선조 146권, 35년(1602 임인 / 명 만력(萬曆) 30년) 2월 5일(무진) 1번째기사
전대 제왕 등의 묘를 정비하라고 전교하다


전교하였다.
“전대 제왕(諸王)의 능묘(陵墓)를 변란을 겪은 뒤이니 각기 그 본관(本官)으로 하여금 파훼(破毁)된 곳을 수치(修治)하고 나무 하고 소 먹이는 것을 금지하도록 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그리고 전대의 충신으로서 신라 의 김유신(金庾信) · 김양(金陽) , 백제 의 성충(成忠) · 계백(階伯) , 고려 의 강감찬(姜邯贊) · 정몽주(鄭夢周) 의 무덤도 또한 봉분을 만들고 나무하고 소 먹이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한두 가지만 예를 들어서 말한 것일 뿐 나머지는 다 말하지 못하니 예조에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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