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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책 소개<일본정벌군1, 2>-제성욱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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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석 작성일08-08-04 18:25 조회1,755회 댓글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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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책 소개 <일본정벌군1,2>-제성욱 장편소설, 2008년 7월 25일 초판, 중앙북스(주) 발간

 어제 서점에 들렀다가 <여몽연합군의 일본정벌>, <고려에 시집 온 칭기즈칸의 딸들>, <고려시대의 안동>과 나란히 책장에 꽂혀있는 책 두 권이 눈에 들어와 구입하여 읽기 전에 이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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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전-네이버<책>

지은이 소개

제성욱-소설가. 1994년 실천문학에 <율도국>으로 등단, 역사의 소설화 작업, 소외된 역사의 실체를 형상화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 <기황후>출간, <움직이는 섬>으로 한국해양문학상 수상.

목차

-1권

차례, 책머리에, 주요 등장인물(김방경, 한희유, 박지량 외)

 1.환도에 어린 핏빛 노을

 2.정벌 계획

 3.일본(日本) 정탐

 4.치밀한 계획

 5.고려가 선봉이 되어

 6.일본 정벌의 깃발 아래

 7.파죽지세(破竹之勢)

 8.규슈정벌

 9.밝혀지는 비밀들

10.허를 찔러라!

11.엇갈린 운명

지도, 부록

-2권

차례, 주요 등장인물

12.이제 남은 것은 미즈 성

13.태풍(颱風)

14.울음

15.이국출격계획(異國出擊計劃)

16.모함

17.다시 출전이다

18.거침없이

19.혼슈(本州)에 나아가다

20.방루를 뚫어라!

21.인연, 이어질 듯 끊어지는

22.하늘의 뜻

지도, 부록, 작가후기

 -1권의 일본정벌군을 더 잘 이해하기위한 <부록>에서 <충렬공 신도비각과 표석 사진>을 담아 충렬공 소사(小史)를 다음과 같이 다루고 있습니다. 책표지에 작가가 소외된 역사의 실체를 소설로 형상화 하는 데 탁월한 역량이 있다고 평하기에 관심을 갖고 소개하려합니다. 

'고독한 영웅, 위대한 정복자 김방경'

김방경 장군 소사(小史)

 김방경이 활약한 당시는 최씨 무인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시기였다. 왕권은 위축되었고, 최씨들은 교정도감을 설치하여 조정을 쥐락펴락 했다. 최씨정권의 뒤를 이어서는 김준과 임연 등의 무인들이 잇따라 권력을 쥐며 국정을 농단했다. 조정 안은 패거리 간의 이합집산과 반목 그리고 모함과 아부로 온갖 추태가 저질러졌다.

김방경은 이런 조정을 멀리하고 묵묵히 야전에서 싸웠다. 그는 진정한 무인이었지만 여러 적들과 상대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나기도 했다.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와 고려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은 몽골군과 맞서 싸웠고,무인정권의 편에 서서 항거하는 삼별초를 진압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칼끝을 겨누었던 몽골군과 손을 잡고 일본을 정벌하는 직책이 맡겨졌다. 참으로 기이한 운명일 수밖에 없었다.

끊임없이 여러 적과 싸워야 하는 시대. 자연스럽게 무인이 정권을 장악하는 시대였지만 김방경은 권력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일본 정벌을 준비하면서 군권을 온전히 장악하였고, 벼슬이 중찬(中贊)의 자리까지 올랐다. 중찬이라 하면 조선시대의 영의정, 지금의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자리였다. 일인지상 만인지하(一人之上 萬人之下). 마음먹기에 따라 왕을 밀어내고 고려 전체를 발밑에 둘 수도 있었다.

실제로 고려에서는 한 세기 동안 수십 명의 무인들이 권력을 차지하지 않았던가? 공교롭게도 당시 세계는 무인들이 천하를 차지하는 시대였다. 중원에서는 타고난 무장 징기즈칸과 그 자손들이 금과 송을 몰아내고 천하를 통일하였고, 일본에서도 쇼군이 천황을 허수아비로 만들어놓고 최고 권력의 자리에 올랐다.

원종과 충렬왕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무인들에게 정권을 빼앗기고 수치를 당한 아픈 기억이 있었다. 하여 끊임없이 김방경을 경계하며 시기하다 결국 홍다구와 위득유의 모함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왕의 지시로 김방경은 모진 고문을 당하는 처지에 놓이기도 했다. 살점이 너덜너덜하고 무릎 뼈가 드러나 몇 번이나 혼절했다가 다시 깨어날 정도로 고문의 강도는 혹독했다.

나중에 누명이 풀리고 쿠빌라이에 의해 복귀가 되었지만 그는 왕실을 원망하지 않았다. 주위에선 따르는 군사가 많고 무기가 충분하니 능히 고려왕실을 뒤엎을 수 있다고 부추겼지만 그는 단호하게 물리쳤다.

사실 김방경은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의 9세손이었다. 고려 전체를 뒤엎고 새로운 왕조를 열 명분과 당위성도 있었다. 천하를 장악한 쿠빌라이까지 호두금패를 하사하며 그를 후원하고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김방경은 개인적인 감정 대신 임금에 대한 충성을 끝까지 지켰다. 오로지 무인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했다.

김방경은 홀로 고려를 지켜낸 고독한 영웅이기도 했다. 쿠빌라이의 사위 충렬왕이 왕위에 오르고 부원파들이 조정을 장악하면서 조정은 급속히 몽골에 기울었다. 홍다구와 함께 부원파들은 고려를 한 성으로 만들어 몽골에 완전히 편입시키려 했다. 고려라는 나라 자체가 없어질 위기였다. 김방경은 고려를 끝까지 지키기 위해 연경으로 올라가 쿠빌라이와 담판을 지었다. 일본정벌을 주창하며 고려의 강성함과 그 필요성을 알렸고, 마침내 고려의 독립을 보장받았다. 고려를 지켜내기 위해 조정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며 일본 정벌을 준비해 나갔다.

김방경은 탁월한 국제적 감각으로 일본 정벌을 주도하며 선두에 나섰다. 당시 몽골은 천하를 제패하며 그 누구도 상대하지 못할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다. 쿠빌라이는 천하 정벌을 통해 온 세상을 자신의 발밑에 두기를 원했다. 거칠 것이 없는 그였지만 딱 하나 장애물이 있었으니 바로 바다였다. 후에 에스파냐와 영국이 천하를 제패한 것도 무적함대가 있어 바닷길을 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고려는 누구도 넘보지 못할 해상왕국이었다. 튼튼하고 큰 배가 많았고 바닷길에 능숙한 군사들이 있었다. 김방경에게는 나약한 고려를 강성하게 만들기 위한 원대한 꿈이 있었다. 바다를 건너 일본을 정벌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전선을 타고 그 밑으로 가면 유구국(琉球國, 오키나와)이 있고, 섬라(暹羅, 지금의 태국), 남만(南蠻, 지금의 동남아 일대)이 이어져 있었다. 이곳은 몽골군이 감히 넘볼 수 없는 곳이었다. 전선을 타고 바다를 건너지 않으면 정벌하기 힘들었다. 오로지 고려만이 닿을 수 있는 곳이었다.

고려가 주도하여 일본을 정벌하고 연달아 그 밑의 나라들을 치면 온전히 그곳들을 지배할 수 있었다. 일본 정벌은 대륙이 아닌 바다를 통해 고려가 나아갈 큰 디딤돌이었다.

당시 고려는 무인정권의 농단으로 왕권이 약해져 있었고, 몽골의 침략으로 국토 전체가 피폐해져 있었다. 이 절박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김방경은 원대한 꿈을 지니고 일본 정벌을 주도하였다.

김방경, 그는 홀로 고려를 구한 고독한 영웅이며, 바닷길을 통해 해상왕국을 이루려 했던 시대를 앞서간 영웅이었다. 중원에 맞서 싸운 광개토대왕, 해상왕국을 구축했던 장보고, 왜적에 맞서 싸운 이순신 장군. 그는 한 인생을 사는 동안 이들의 면모를 갖춘 불세출의 영웅이기도 했다.

-다음으로 작가는, '일본정벌군과 삼국관계'의 <고려편>에서는, <충렬공 영정(무인복) 사진>과 함께 당시 정치적 상황을 거론하였는데 충렬공을 직접 언급한 기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일본 정벌을 준비하면서 고려 왕실은 이중적인 태도를 취했다. 쿠빌라이가 적극적으로 나서니 마지못해 준비를 했지만 고려왕은 탐탁치 않았다. 정벌을 준비하면 자연히 무인들에게 힘이 모아질 것이고, 그러면 다시 왕권을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진 것이다.

특히 정벌을 주도한 김방경에 대해 원종과 그 아들 충렬왕은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김방경은 서북면병마판관(西北面兵馬判官)으로 있으면서 몽골의 침입을 물리친 큰 공이 있었고, 진도와 몰도를 침략한 왜구까지 소탕하여 장수들과 백성들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었다. 삼별초의 난을 진압하고 쿠빌라이의 은총을 받아 호두금패까지 하사 받으면서 왕실은 그에 대한 극도의 경계심을 가진다. 이전의 무인들처럼 왕을 몰아내고 권력을 차지할 것으로 여긴 것이다.

김방경 입장에서는 고려를 위해서라도 일본 정벌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았다. 당시 몽골은 고려를 더욱 압박하여 온전히 하나로 만들려 했다. 정동행성(征東行省)과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를 설치하여 고려를 아예 원의 한 성(省)으로 편입시키려 한 것이다. 김방경은 일본 정벌에 나서게 되면 고려의 군사력이 강화될 것이고, 이를 통해 원나라에 맞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본을 정벌하게 되면 그 땅을 온전히 차지하여 고려가 더욱 강성해지리라 여겼다. 고려를 온전히 지키기 위해서라도 일본 정벌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상은 책의 일부분입니다. 최근 독도와 관련하여 시국상황을 대변이라도 하는 지 '일본정벌'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게 더 시선을 사로잡는 게 사실입니다. 무언가 반대급부로 위로라도 받을 양으로 그리할 수도 있지만 역사적으로 접근하면 고려조 원간섭기에 취하신 충렬공의 위대함은 입을 열어 말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아직, 객관적이고 냉정한 시선으로 사학자나 유명 작가에 의해 쓰여진 <충렬공 김방경 평전(評傳-물론 작가의 상상력도 일부 가미가 되겠지만)>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다양한 장르의 매체를 통해 거듭해서 충렬공을 주인공으로 한 문집, 총서, 소설류가 발간된다는 것은 문중의 큰 경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역사학자나 작가 개개인의 사관(역사를 보는 눈)이 다르고 또한, 인물을 그려내는 방식이 다르더라도 우리 중시조이신 충렬공께서 언급되는 것은 그만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머지않아 <가칭-충렬공 실기>가 발간될 것입니다. 이는 후손된 자로서 감히 평전을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삼별초, 일본정벌 등 일부에 국한된다 할지라도 실기의 발간에 앞서 출간되는 충렬공 관련 책자에서 각각의 서로다른 시각의 인물평도 놓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정부나 적어도 경상북도, 아니면 안동시 차원에서 준비할 <가칭-충렬공 김방경 탄신 800주년 기념 대제전>을 위해서도 우리는 여러 각도로 차근히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

 끝으로, 방송 3사의 <각종 사극물, 대하사극 등>도 잘 살펴야 할 과제입니다. 조선조는 물론, 고려 <태조 왕건>부터 정중부, 최충헌<무인시대>까지, 그리고 공민왕 이후는 수 없이 다루고 군사정권기에 <뜨거운 감자>로 미처 다루지 못하고 쏙 빠져있는 <충렬왕, 충선왕대>만 남아 있기에 근년에 방영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나름 가능성을 두고 언급을 했습니다만 충렬공께서 언론을 통해 부각이 되면 자연스레 큰 행사가 수월하게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입니다.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작성일

  &lt;일본정벌군1, 2&gt;, 2008년 7월 25일에 나온 따끈한 최근 소설, 즉시 구입해 보겠습니다.
빠른 소개에 감사합니다.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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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대부님, 반가운 책입니다. 감사합니다.
무더위에 건강 유념하시고, 사업 번창하시길 빕니다.

관리자님의 댓글

profile_image 관리자
작성일

  감사합니다. 본 홈 김방경란에 올리겠습니다.

김발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발용
작성일

  책 소개 감사합니다. 문중 필독서가 추가 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