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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원공파 수원문중 광교 묘역에서 조선복식 다량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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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8-06-12 09:07 조회1,7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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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의 재영님으로부터 정보를 받아 알려 드립니다. 익원공파 수원문중 묘역인 광교 묘역 이장 과정에서 출토된 의복들에 관한 기사입니다.  

재영대부님 감사합니다.

*출전 : <경인일보>(2008. 6. 10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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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內 묘서 조선복식 다량출토
단령·장옷등 30여점… 두갈래땋은 머릿단은 처음
newsdaybox_top.gif 2008년 06월 10일 (화) newsdaybox_dn.gif
   
▲ 광교 신도시내 안동 김씨 문중 묘에서 출토된 17세기 조선시대 복식.

조선 선조때 이조판서를 지낸 김찬의 딸로 추정되는 수원 광교 신도시 소재 묘에서 우리나라 복식사 연구에 중요한 사료가 되는 유물이 다량 출토돼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관련기사 3면>

수원역사박물관의 의뢰를 받은 단국대 석주선 기념박물관은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 안동 김씨 문중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조선시대 복식이 다량 출토됐다고 9일 밝혔다.

이번에 발굴된 복식은 조선시대 복식 연구에 중요한 사료인 단령 1점, 장옷 3점, 중치막 3점, 저고리 8점, 치마 3점, 바지 2점, 배자 1점 등 총 30여점이다. 또 머리를 두갈래 양쪽으로 땋은 모양의 머릿단은 처음으로 출토됐다. 전문가들은 부인들이 '얹은 머리'를 할때 이같은 머리모양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안동 김씨 문중은 이 복식의 주인공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김찬의 아들 김홍건의 묘 옆에서 발굴된 정황으로 미루어 1500년대 후반~1600년대 초반에 살았던 김홍건의 누이일 것으로 추정했다. 안동 김씨 익원공파 효헌공 문중 김태철 총무는 "3남 1녀를 둔 김홍건 조상님의 무덤 옆에서 유물이 발견돼 처음에는 결혼을 안한 채 돌아가신, 그래서 족보상에는 없는 김홍건 따님의 묘일 것으로 추정했다"며 "하지만 머리모양이 기혼 여성의 것이므로, 아마도 김홍건 조상님의 5명의 누이 중 한 명의 묘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교신도시 '조선복식 출토' 의미
여자 어린이옷·문관 탈착형 중치막 최초발견
newsdaybox_top.gif 2008년 06월 10일 (화) 이유리btn_sendmail.gifagnes71@kyeongin.com newsdaybox_dn.gif
   
수원 광교 신도시내 묘에서 출토된 복식은 장장 400여년의 세월을 견뎌냈다. 9일 분류·확인 작업 중인 단국대 석주선 기념 박물관 관계자는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매장 당시의 형상을 거의 유지하고 있다"면서" 장옷과 바지저고리, 신발 등도 함께 발견돼 복식 연구사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특히 여자 어린이의 옷으로 추정되는 유물과 문관의 탈착형 중치막 등은 이번에 처음으로 발견돼 의의가 크다. 성인여성의 묘에서 어린이옷과 남성옷이 함께 발견된 것은 사망시 가족·친지의 옷을 함께 매장하던 당시 풍습에 따른 것이다.

■ 여자 어린이의 옷(추정) 함께 발견=이번에 안동김씨 문중의 묘에서 발견된 작은 사이즈의 장옷(조선시대 일반부녀자가 사용한 내외용 쓰개)은 17세기의 여자 어린이의 옷으로 추정된다. 이제껏 1900년대 어린이의 옷이 출토유물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조선시대 어린이의 옷은 출토된 것이 거의 없다. 현재 1900년대 이전의 어린이 옷은 17세기 중반의 남자 어린이의 옷으로 보이는 유물이 유일하다. 따라서 이번에 출토된 작은 사이즈의 장옷이 어린이의 것으로 최종적으로 밝혀지면, 조선시대 사대부가 어린여자아이의 옷 연구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 문관들도 탈착식 중치막 입었다=중치막은 무관들의 옷에서 주로 발견됐었다. 말을 탈때 양쪽 소매를 떼거나, 활을 쏠 때 왼쪽 소매를 뗐던 식이다. 하지만 이번에 출토된 탈착식 중치막은 사대부 문관의 옷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소매가 탈착식으로 되어 있어, 문관들이 거추장스럽게 큰 오른쪽 소매를 뗀 후 글을 썼을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문관의 탈착식 중치막도 이번 출토물이 유일하다.

■ 조선시대 여성들, 단령 안입었다?=단령은 깃이 둥글고 소매가 넓고 길이가 길어 발까지 내려오는 조선시대 관복(官服)이다. 이제껏 단령을 입은 여성들의 묘가 많이 발견돼 조선시대 여성들도 단령을 착용했을 가능성이 계속 제기돼왔다. 하지만 설득력있는 문헌기록이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모두 한점씩 출토됐고 수의용 상복(上服)으로 착용된 점, 남편의 관직보다 높은 흉배(관복의 가슴과 등쪽에 수놓은 헝겊의 조각으로 붙이던 표장)를 착용한 장속(葬俗)의 사례, 품이 매우 넓고 상대적으로 소매가 짧으며 길이는 매우 길어 생전에는 여성들이 이 옷을 입지 않았을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이번에 발견된 여성단령 역시 얇은 사로 덧대어서 수의로 입고있는 점, 엉성하게 바느질된 점 등을 고려해 이 옷이 평소에 입은 옷이 아니라 수의로 특별 제작된 옷이라는 점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단국대 대학원 전통의상학과 박성실 교수는 "수원지역에서 조선시대 복식이 다량으로 출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임진왜란 이후 남녀복식의 특징을 연구하는데 이번 출토물이 큰 역할을 해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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