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공 영정 제작을 위한 수집 자료(1)-각종 문헌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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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8-06-04 15:41 조회1,987회 댓글0건본문
충렬공 영정을 재제작 한다고 하기에 그에 해당하는 몇가지 관련 자료들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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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정 제작 관련 각종 자료 및 정보 수집 내용
1)기간 : 2008. 4. 30--5. 25
가)문헌 및 논문 자료
<복식 관련>
(1)<한국복식2천년>국립민속박물관/2002(초판3쇄)/303쪽
(2)<한국 복식사> 안명숙.김용서 예학사 2001
(3)<한국복식> 박영자, 이순원.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2004. 1.
(4)<한국 복식의 역사> 이은창. 세종대왕기념사업회2000. 2
(5)<名選>(中) 단국대학교 석주선 기념박물관. 2004.
(6)<(개정판) 한국 복식 문화사> . 유희경. 김문자. 교문사. 2004
(7)<한국 복식사 연구>. 류희경. 이화여대출판 1977.
(8)<한국복식문화사> 유희경 교문사 1997
(9)<복식문화> 유송옥 외 교문사 1996
(10)<우리옷이야기>-한국복식문화사 . 안명숙. 예학사.
(11)<한국의복식문화사> 강순제외 / 학연문화사 / 2006.05.02
(12)<한국의 복식문화> 최해율외 / 경춘사 / 2000.06.25
(13)<한국전통복식문양사>. 박옥련 / 형설출판사 / 2000.06.15
<초상화 관련>
(14)<초상화 연구> 초상화와 초상화론. 조선미 문예출판사.
(15)<한국의 초상화>. 문화재청. 눌와출판사. 2007. (교보문고 열람)
(16)<조선시대 초상화 I>. 국립중앙박물관 한국서화유물도록 제15집.
(17)<조선시대 초상화 초본> 저자/역자: 이수미, 이혜경 (지은이), 한국미술사진연구소 열린박물관.
(18)<역사인물 초상화 대사전>. 강순제 외 12인 현암사
(19)<조선시대 초상화 초본>. 이수미. 이혜경. 2007. 열린박물관.
(20)<한국초상화에 나타난 안면 표정연구> (고려말, 조선시대. 허서영, 이대교육, 석사. 1995.8.)
<문헌 및 논문 자료 요약 내용>
(1)<한국 복식사>(안명숙.김용서 예학사 2001. 54p)
*고려시대 몽고 복식 영향기에 왕실 이하 귀족 양반 계급에서는 향원심(向元心)에 사로 잡혀 솔선하여 몽고풍을 쫓는 풍조가 크게 나타났다.
*머리 변두리를 깎고 정수리 부분의 머리털만 남겨 땋아 늘인 개체 변발(開剃辮髮), 충렬왕이 공주를 위해 원에서 가져 왔다는 진주의 (眞珠依), 원에서 황제 이하 각 관원이 입었던 질손(質孫) 등이 있다. 특히 여자의 복식은 몽고의 많은 영향을 받았다.
(2)<한국복식2천년>(국립민속박물관. 2002. 210p)
*고려 전기는 송(宋)나라에서 점차 평각(平脚)으로 변화한 전각복두(展脚幞頭)를 사용하기 시작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발립(鈸笠)이 수용되고 입제(笠制)가 생김
(3)<한국복식>(박영자, 이순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2004. 1. 62p, 65p, 68p)
*원의 복속기에는 원의 독특한 복식인 질손(質孫-평상복)을 많이 입었는데 이는 일색복(一色服)으로 내정대연(內庭大宴)에서 주로 입은 일종의 일종의 편복(便服)임.
*원 복속기에 고려의 복식이 그대로 원의 고유복식 일색으로 변모 된 것은 아니다. 우리 국속과 송제(宋制)를 물려받은 원제(元制)와의 이중적인 구조를 지니면서 왕의 면복, 백관의 공복 계통은 송제와 별 차이가 없는 것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고려 초중기의 공복(公服) : <고려도경>에 나타난 공복에 의하면 자라공복(紫羅公服)에 옥대를 띠고 상홀을 든 차림이었다.
*원 침략기에는 질손을 착용하고 , 공민왕 이후로는 원유관, 강사포를 착용했을 가능성도 보인다.
*<고려도경>의 복식제도(고려초-원 침략 이전까지)
국상복(國相服:종1품-정3품)은 관모-복두, 포-자문라포(紫文羅袍), 대-구문금대(毬文金帶), 어대(魚帶:일종의 符로 허리띠 양 옆에 늘어 뜨림. 원 복속기 이전까지 사용)-금어대(金魚帶), 홀-상홀(象笏)
(4)<한국의 초상화>(문화재청. 눌와출판사. 2007. 10. 3p-6p)
*최대의 초상화(146점) 집성 도록. 주로 조선시대 초상화 중심.
--문화재 위원장 안휘준의 해설 자료
*우리나라 조선조는 초상화 왕국이다. 동양 최대의 초상화 보고다.
*중국 미술보다 수준 높은 우리의 미술
고구려-고분벽화, 백제-불교 공예, 신라-금속 공예, 통일신라-불교 미술, 고려-불교회화와 청자, 금속공예, 칠공예, 조선-분청사기, 백자, 목칠공예, 건축, 조경.
*조선시대의 초상화는 동아시아의 최고.
*우리의 초상화가 우수한 이유 :
(가)오랜 역사 : 고구려 안악3호분(357년 이전)의 주인공상과 부인상, 덕흥리 벽화고분(408년) 등은 4-5c에 초상화 시작을 의미. 고려시대에 크게 진전, 조선시대에 계승됨.
(나)각별한 조상숭배사상, 초상화를 그 조상의 현신으로 여김
(다)조선조에 우수한 화가를 많이 배출
*조선시대 초상화의 특징(우리만의 특장점)
(가)철저한 사실주의적 표현-털오라기 하나도 정확히 표현,
(나)있는 그대로의 정직한 표현-피부병까지 표현
(다)피사인물의 성격, 교양, 인품 등 내면적 정신세계를 기운생동(氣韻生動)하게 묘사, 눈동자에 기(氣)를 넣음, 전신사조(傳神寫照)의 높은 경지.
(라)몸과 얼굴은 약간 옆(오른쪽)으로 틀음-자연스러운 입체감. (중국-정면관)
(마)특수한 표현기법 : 얼굴-섬세한 붓질로 살결을 따라 묘사하며 배채법을 써서 은은한 피부색을 표현. 몸의 의습선-가늘고 힘찬 철선묘사. (일본-굵고 유연한 선)
(바)피사 인물의 묘사에만 집중, 배경은 거의 설정하지 않음
(중국, 한국의 18, 9C-산수, 기타 비중이 큰 배경 설정)
*이제현, 안향의 영정은 평상복, 상반신의 모습이라 참고 불가.
(6)기타 문헌 : 고려 중후기, 몽고 복속기의 정확한 공복 복식을 구체적으로 그림과 함께 밝힌 문헌은 없고, 단지 원나라의 풍속을 따랐다는 기록과 고려도경(고려 초 중기 제정)의 기록만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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