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김씨 계보연구회 방문기(6)-삼성연원보의 가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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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8-04-25 07:59 조회2,067회 댓글1건본문
이어 김응준님께서 삼성연원보에 대한 추가 설명을 해 주셨다. 이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1. 소화9년(1934년) 발간한 것으로 기록됨. 총독부 도장이 찍힘.
2. 족보의 나이는 서문 기록 내용이 중요
가. 兎山人 李承學이란 사람이 1642년(임신년)에 기술한 서문 내용을 보면 1632년에 종거(鍾鐻-경주인. 초명 景大. 1580년생)가 53세에 삼성연원보를 시작한 것으로 나옴.
나. 서문 기록 연도는 1642년이므로 10년간에 걸쳐 이 작업을 한 것임. 이때는 병자호란(1636년)이 일어나는 등 매우 국가적으로 위태로운 시기였는데 이 어려운 분위기에서 전국을 순회하며 이 족보를 만든 것임.
3. 현재의 삼성보는 1934년에 1642년의 목판본 삼성보를 그대로 금속 활자 인쇄한 것으로 봄.
4. 지난 1996년에 삼성보의 <元姜-文雄>기록 위에 있는 근거 문헌 족보 소유자인 전남 장흥의 김영찬 후손 집을 찾아 전화로 문의함
*김영찬은 아들이 없이 딸만 3(?)을 두고 사망. 큰 딸을 찾으니 장흥 인근에서 노점상을 하고 있었음. 딸의 말에 의하면 자신이 10세 쯤에 구 족보를 집안 어른이 다른 곳으로 가져 갔다고 함. 딸의 숙부를 찾아 문의하니 또 장조카가 가져 갔다고 함. 이어 장조카는 숙부가 가져갔다고 서로 미룸. 김영찬의 양아들은 제주에 살고 있었는데 자신은 아무것도 상속 받은 것이 없다고 함.
*김영찬 소장 족보를 찾는 것은 어렵다고 봄
5. 삼성보의 중요적 가치
가. 새로운 선계에 대한 내용은 그 근거 자료명을 기록함
나. 1642년에 발간한 족보에 실린 인물들이 고려말까지만 나오는 것은 철저하게 연원보적 목적으로만 제작한 것이라는 점. 즉 어떤 문중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족보 제작이 아니라 순수 학술적, 순수 계보 연구와 자료 보관의 목적으로 만들었다는 점
다. 일부 내용이 삼국사기와 같으며 일반 족보와는 다른 설득력있는 계보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 등이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음
예) <구족보>
민공-실홍-효종-경순왕
<삼성보>, <삼국사기>
민공-실홍-억렴-유렴-
인경-효종-경순왕-
<정문연의 김창경 교수에게 질의-경순왕 전비 기록내용>
민공-실홍-억렴-유렴-
인경-효종-경순왕-
라. 대구김씨가 경순왕의 4자로 석씨할머니 子인 英자 후손임을 밝히고 있다는 점. 대구김씨와 경주김씨 족보에도 없는 英자의 17대 후손까지 이곳에 기술되어 있는 등 설득력 있는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는 점
마. 부안김씨가 대안군(은열)의 15대손에서 나왔다는 내용이 기술. 경주김씨 족보와 부안김씨 족보에는 나와 있지 않는 귀중한 상계의 계보 내용을 유일하게 적고 있음. 이는 2007년 부안김씨측에서 경주김씨 대장군공파에 소송을 하여 자신들이 마의태자의 장남 집안이라고 우기던 것이 대법원에서 대장군공측의 승소 판결로 끝난 결정적 자료 임.
바. 삼성보는 선계 계보에 대해 그동안 미상이었던 선조들의 휘와 계보를 정확히 밝혀 놓은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문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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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30분부터 시작된 대화는 자리를 1층 식당(김응준님 운영)으로 옮겨 밤 9시 30분까지 이어 졌다. 아무런 지원도 없이, 아무런 보상도 없이 정신적 심적 지원도 없이, 오히려 주변의 시기와 모함과 욕설 등을 들어가면서까지 묵묵히 16년간을 오직 선계의 계보 연구에만 몰두해 온 이 분들의 노력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 지고 감동이 밀려 왔다. 연 2회 정도에 걸친 정기 간행물 <계보연구>도 발간하고 있었다. 그 내용은 너무도 알찼다. 특히 충렬공의 아우님이신 <玄慶>의 손 <永奎>를 시조로 모시는 수성최씨 문중의 한 분이신 省菴 崔重哲님은 이 <계보연구>(2007년 추 동계호. 제 14권, 3, 4호. 2007. 12. 20. 경주김씨 계보 연구회 간) 간행물 속에 <隋城崔氏씨 상계 정립에 관한 尋究>라는 제목의 논문(28-35p)을 발표하고 계셨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경순왕 이후 충렬공 사이의 선계문제에 대한 글이었다. 최중철님은 상기의 <삼성 연원보> 등을 참고로 하여 선계 계대를 <殷說-淑-元康(官禮都侍郞)-文雄(官判禮賓寺事)-日兢>으로 분명히 밝히고 있었다. 우리보다 한 발 앞서서 문제 해결을 위해 애쓰고 있었다. 또 연구소에서는 <계림지>를 발간하여 신라김씨 전체에 대한 모든 선계의 흐름을 정리 발표하고 있었다. 놀랍고 감사했다.
댓글목록
최종규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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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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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짧은 시간에 많은 자료를 수집하셨군요! 그리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게재하셨군요.
우리 수성최씨 중철씨는 선계 계보 뿐만 아니라 숭조와 관련한 다양한 지식을 고루 갖추신
박식한 분이며, 계보연구회에 참여하시기 전부터 대동보 부록편찬위원장으로서의 소임을
다하고자 자비로 안동과 휘경동 대종회를 비롯, 영덕, 경주등지와 부천족보소장소, 규장각
등지를 누차 방문하여 우리 시조 상계를 밝히셨습니다.
그러나 부끄러운 일이지만 대다수의 편찬위원들이 호응하지 못하고 무지한 고집만 내세워
아직도 부록편찬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김항용 선생님의 "계보연구회 방문기"는 우리 수성최씨 발전된 족보 편찬에 실로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