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장사공(휘 숙승) 자료(2)-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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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8-04-11 15:57 조회1,361회 댓글0건본문
<평장사공 휘 숙승 자료>
출전 : 경주김씨 계보 연구회 연구자료
발견일 : 2008. 3. 19.
내용
<金公 淑承將軍(龜州別將) 行狀>
김공(金公) 숙승장군(淑承將軍)은 955年(?) 대안군(大安君, 母는 文英 崔彦撝의 女) 둘째 아들로 출생하였다. 이때 고려 조정의 제 4대 광종(光宗. 재위 949-975)은 지방 호족(豪族)의 세력을 억제하고 나라의 기강과 제도를 정비하는 한편 북방 방어에 힘썼으며, 특히 광종은 황해도 중요 방어 기점을 비롯하여 압록강 하류인 평안도 삭주(朔州), 구주(龜州), 태천(泰川), 정주(定州), 선천(宣川), 박천(博川), 철주(鐵州) 등에 축성(築城)을 견고(堅固)히 하였고 압록강 북쪽에서 출몰하는 거란족과 항상 대치하였다.
975년에는 광종이 승하(昇遐)하고 제 5대 경종(景宗)이 즉위하였다. 이때 김부대왕(金傅大王-敬順大王)은 따님을 경종(景宗)에게 납비(納妃-獻肅王后)하였으며, 대왕에게는 상부도성령(尙父都省令)으로 삼고 식읍(食邑) 일만호를 더하였다.
장군께서 일찍이 24세에 공부시랑(工部侍郞)으로 출사(出仕), 축성(築城) 등 토목공사(土木工事) 실무(實務)에 임(臨)하고, 이 방면에 역량(力量)을 발휘하였다. 경종(景宗) 3년 978년 무인(戊寅) 4월 4일, 조부(祖父) 경순대왕(敬順大王)은 유화궁(柳花宮)에서 서거(逝去)하시니 향수(享壽) 97이시었다. 이듬해 979년 경종 4년에는 시세(時歲) 등 발해(渤海) 유민(遺民) 2만여명이 투항(投降)했을 때 북방(北方) 종군(從軍)에 나섰다. 렴염
982년에는 왕건 태조의 원당(願堂)인 봉은사(奉恩寺)에서 김부대왕(金傅大王)의 영정(影幀)을 모시고 대안군(大安君)과 셋째 아들 염(濂)의 자(子)인 심언(審言)과 함께 회록(回祿)과 절일(節日)에 제(祭)를 올렸다. 이때(983년) 강감찬(姜邯贊)이 문과(文科) 장원(壯元)하고, 989년은 병마사제도(兵馬使制度)가 처음 시행되었다.
993년 거란 장수 소손령(簫遜寧)이 침입하자 중군사(中軍使) 서희(徐熙)는 적진에 들어가 화약(和約)을 이끌어 냈다. 994년 구주성(龜州城)을 견고히 증축하였다. 996년에 처음으로 주철(鑄鐵)을 만들어 유통(流通)하였다. 공부시랑(工部侍郞)으로 승진(昇進)하였으며, 998년 이후인 7대 목종(穆宗) 재위중에 평장사(平章事)릉 역임하였다.
구주별장(龜州別將)으로 재직 중 1010년 고려 현종(顯宗) 1년 거란의 성종(聖宗)이 목종(穆宗) 시해(弑害)를 문죄(問罪)한다는 구실로 내침(來侵)하여 행영도통사(行營都統使) 강조(康兆)를 잡아 죽였다. 거란군이 회군(回軍)할 때 구주성(龜州城) 길목에서 숙승장군(淑承將軍)은 거란군 1만여명을 목 베었다.
1010년 8대 현종(顯宗) 10년, 공신(功臣)에 녹권(錄券) 되고 1011년 신해(辛亥) 현종(顯宗) 2년, 세천(世阡)하셨다. 뒤에 삼한벽상공신(삼한벽상공신)의 호를 받고 장군으로 추증(追贈)되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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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 행장 자료 구성 기초 자료
1. 인명대사전(신구문화사간. 1992년)-강감찬란, 김숙흥란
2. 계림지(사단법인 경주김씨 계보회. 200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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