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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두면 돌이요, 쓰면 그릇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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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8-03-27 08:43 조회1,5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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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한국 한문문학의 번역 산실이었던 민간단체인 <민족문화추진회>가 얼마전 <한국 고전번역원>이란 공공기관으로 새롭게 탈바꿈 하면서 많은 계획을 세우고 실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 이곳에서 제게 온 명구 메일이 있어 소개 합니다.

출전 : <한국고전번역원> http://www.itkc.or.kr/

 

<버려두면 돌이요>


버려두면 돌이요
쓰면 그릇이네  

捨則石 用則器

《석주집(石洲集)》 ‘옛 돌솥에 새긴 명’  

해설


이 글은 조선조 중기의 문인 석주(石洲) 권필(權필[韋+畢], 1569-1612)이 작은 돌솥에 새긴 명(銘)입니다.

그 돌솥은 여종이 밭을 일구다가 찾아낸 것인데, 흙을 털고 이끼를 긁어낸 다음 모래로 문지르고 물로 씻어내고 하였더니 빛이 나고 말쑥한 것이 제법 사랑스러워서 곁에 두고 차를 끓이거나 약을 달이는 그릇으로 요긴히 쓰게 되었습니다.

돌을 갈고 문지르면서 석주는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솥아 솥아, 애초 돌로 태어난 지는 얼마이며, 장인이 깎아 그릇으로 만들어 인가에서 사용된 지는 또 얼마이며, 땅 속에 묻혀 있으면서 세상에 쓰여지지 못한 것은 또 얼마인가. 이제 오늘 내 것이 되었구나.”  

이 명을 지은 것은 1595년으로 임진왜란을 막 겪은 때입니다. 비록 스스로 벼슬길을 접긴 했지만, 나라가 큰 일을 당했는데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한 것은 유교 사회의 지식인으로서 매우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석주는 강호(江湖)의 유랑 생활로 한을 달랬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현명한 임금이 자신을 알아보고 유용하게 써 줄 것이라는 기대는 버리지 않았습니다. 우연히 얻은 돌솥에 그러한 작자의 간절한 마음이 새겨진 것입니다.

이로부터 6년 뒤 중국 사신이 왔을 때, 석주는 백의(白衣)로 제술관이 되어 양국의 이름난 문사들 사이에서 문재(文才)를 한껏 발휘하였습니다. 선조(宣祖)는 그의 시를 향안에 두고 음송하였다고 합니다.

옮긴이

오세옥(한국고전번역원)

 

 

아울러 고려대학교 심경호 교수가 주제 발표를 하는 행사가 이곳에서 다음과 같이 있어 함께 소개합니다.

[공고] 제5차 한문고전번역 학술집담회 개최

본원에서는 고전번역 현장에서 제기된 쟁점에 대해 교수ㆍ연구원ㆍ대학원생 간 집중 토론을 통해 문제 해결 방안을 도출하여 번역 현장과 번역 교육에 직접 적용하기 위한 학술집담회를 아래와 같이 개최하고자 합니다.

1. 주  제 : 학술번역의 개념과 적용상의 제문제
2. 일  자 : 3월 28일(금)
3. 시  간 : 오후 1시 30분 ~ 4시 30분
4. 장  소 : 한국고전번역원 1층 대강당
5. 진  행 : 서정문(한국고전번역원 번역1팀 팀장)
6. 발  표
  - 한문고전번역에서 학술번역의 개념과 그 역할 / 심경호(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문집 번역의 특징과 학술적 성격 / 이상하(한국고전번역원 한학교수)
  - 학술번역과 대중번역의 조화 / 김승룡(부산대학교 한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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