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덕사 07년 추향과 16년의 회고(3) : 93-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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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8-03-16 20:46 조회1,412회 댓글0건본문
이 날 이후 나는 더욱 바빠졌다. 모든 일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마음으로 하나씩 준비하고 정리해 나갔다. 문중회 조직과 운영, 제례를 위한 도구 준비 등 모든 일들이 고스란히 나의 몫이 되었다. 부친께서는 연속하여 나에게 정성을 다한 준비를 요구하셨다. 일복을 타고 난 모양이다. 그렇게 첫 해는 감동 속에서 시제와 창립총회를 마쳤다. 여러 곳에서 문제점이 드러났다. 내년의 발전된 행사를 위해서 모든 것을 일지에 기록해야 했다.
이듬해인 93년에는 8위(비안공-휘 仁甲, 충익공-휘 時讓, 합천공-휘 穀, 사휴제공-휘 徽, 안주공-휘 繁, 통덕랑공-휘 南採, 휘 鼎光공, 휘 東吉공)의 위패를 추가 봉안하고 시제를 올렸다.
<시제 후 보광산 감사공 휘 素 묘소 성묘>
95년엔 제2대 임원이 탄생되었다.
회장-태섭(양), 부회장-용달(좌), 정회(양), 두응(충), 남응(충), 감사-태걸(양), 원흥(충), 총무-영회(양)
그 후 각종의 커다란 문중사가 급물살을 타면서 차근차근 진행되어 갔다.
96년엔 충익공파에서 1천만원을 출자하여 남은 건축 공사인 사당 담장과 대문, 재실의 솟을대문이 건립되었다. 그리고 대문에는 <安東金氏提學公派比安公門中宗會>란 현판도 걸었다. 이제야 모든 공사가 마무리 된 것이다.
<대문>
<최종 완성된 사당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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