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논문-백곡 김득신의 유묵과 간찰 두 편(3-끝)-간찰2(경매품)

페이지 정보

김항용 작성일08-03-15 07:50 조회1,417회 댓글1건

본문

끝으로 다른 하나마저 살펴보자.

bakkok70.jpg


 안동김씨 대종회 홈페이지의 설명에 의하면, 본 간찰이 인터넷 경매로 나왔음을 확인하고 경매에 참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구입하지 못하고 사진만 게시한다고 부언하고 있다. 옛날에는 오늘날 같이 우편통신이 발달하지 못하여 인편으로 간찰을 주고받았으며, 종이 또한 귀하여 편지의 상하좌우 여백을 최대한 이용하여 사진과 같이 쓴 경우가 허다하다. 아래의 간찰(사진)을 해독하기 위해 사진 아래 그림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

 

[원문]

1. 省式

姨母主喪事 痛哭痛哭 夫復何言 病患雖云沈篤 年齡不至高邁 以哀誠孝 心獲心可 豈意今日遽至此境 緬惟 思慕號絶 何以堪居 又況歲月之製 素無措備 初終凡節 何以經紀 顧此孤露餘生 賴有依仰 畢竟 病未診視 殮未臨訣 撫念悲心 如何可言 今日卽成服日也 昨果就木而成服在今日耶 貧家喪禮 易不及慽勢也 哀之孝憾 烏得免也 只自遠外 心咽而已 仍問 自罹巨心  氣力何以支持 惟願 願哀順變 無至以孝傷孝 至望至望 姨從 扶病赴公 殆無虛日 昨亦早朝開座 今曉始還 未及願衣 忽承此報 心神飛越 語不知裁 都留後願更候 不宣疏

 

 癸丑二月二十五日 姨從 功服人 得臣 疏上

鎭川葬日已過 而尙未聞完襄與否 方切悲鬱 此際此報 又至痛矣 至痛矣



2. (  )(  )自去月大熾 二奴相繼出幕 日前 遠客之來留者 又大痛送去 今方兩孫兒痛臥 已四日矣 不得不令移避於後家 日夕悚懼 如坐針氈 此悶何言 似此之際 心與力俱疲 姑不得 以某物送助 此何情禮 襄日完定後 當更致書 隨力奉


3. 助計耳 黃燭五雙 大小索爐盒盞 臺具覓送耳


 [번역]

 생식(省式)6) 이모님의 상사는 통곡스럽고 통곡스러우니 다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병환이 비록 침독하시다고 했지만 연세가 높지 않으셔서 당신(哀)의 효성으로 내심 병환이 나으실 것으로 알았더니 오늘 느닷없이 이렇게 될 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생각하건대, (당신께서는) 사모하는 마음에 슬프고 애통함을 어찌 견디겠습니까? 더군다나 세월이 바듯하여 평소 준비가 없었을 것이니, 초상을 치르는 모든 범절을 어떻게 다스려나가는지요?


 돌아보면, 이 사람은 부모님을 여의고 의지할 데가 없던 터에 이모님을 우러러 의지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병환에 진찰도 못시켜 드렸고 염할 때에도 가보지 못했으니, 생각하면 슬프고 서운함을 어떻게 말로 다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은 바로 성복하는 날입니다. 어제 끝내 관으로 들어갔는데 성복이 대번에 오늘 있단 말입니까? 가난한 집안의 상례는 형식적으로 다스리는 일이 슬퍼하는 데에 미치지를 못하는 것이 형편이니, 당신(哀)의 효성으로도 어찌 면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먼 곳에서 애통하고 오열할 따름입니다. 여쭙건대 큰일을 당한 뒤로 기력은 어떻게 지탱하고 계신지요? 원하옵기는 슬픔을 좀 내려놓고 변고에 순응하여 이효상효(以孝傷孝)7)에 이르지 말기를 바라고 바랍니다. 저(姨從)는 병을 안고 공직에 나감에 자못 빈 날이 없습니다. 어제도 이른 아침부터 근무하다가 오늘 새벽에야 비로소 돌아왔습니다. 옷도 벗기 전에 홀연 이 비보를 받으니 마음과 정신이 비월(飛越)하여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머물러 두었다가 뒤에 인편을 통해 안부를 여쭙겠습니다. 위문의 글을 이만 줄입니다.


계축년(1673) 2월 25일 이종 공복인 득신 소상疏上


 진천의 장삿날이 벌써 지났을 텐데 여태껏 장사를 치렀는지 그 여부를 듣지 못하여 바야흐로 슬프고 답답하던 차에 이 비보는 또 지극히 가슴이 아픕니다. 지극히 가슴이 아픕니다.


 전염병이 지난달부터 크게 번져서 하인 두 명이 계속해서 여막으로 나갔고, 일전에 먼데서 와 머물던 손님도 심하게 아파 보냈습니다. 현재 두 손자 아이가 아파서 드러누운 지도 나흘이 됐습니다. 그래서 부득불 뒷집으로 피접(避接)을 보냈으니 조석으로 걱정과 두려움에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습니다. 이런 민망함을 어떻게 말로 하겠습니까? 이와 같은 때에 마음과 힘이 모두 피로했던 터이라도 우선 아무 물자라도 보냈어야 했거늘 부조도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 이 무슨 정례(情禮)이겠습니까? 장삿날이 정해진 뒤에 마땅히 편지를 하고 힘껏 도울 계획입니다. 황촉 5쌍·굵은 노끈·가는 노끈·노합(爐盒)·잔대를 갖추어 찾아 보냅니다.


 이상의 내용으로 보아 백곡 김득신이 이모상을 당하였으나, 벼슬살이로 인해 부득이 간찰로 조문한 것으로 보인다. 해독하는 과정에서 인터넷에 올라 있는 사진을 통해 판독해야하는 한계의 어려움이 있는 바, 해독하지 못한 한자 2자는 ‘▒▒’로 표시하였다. 그러나 전후 내용의 흐름상 ‘역병(疫病)’ 정도로 이해하는 데 별 무리가 없다. “得臣 疏上” 이하는 추신(追伸)에 해당한다. 한 편의 편지글에서도 구구절절에서 배어나오는, 진솔하고 애틋한 슬픔의 표현을 통해 문장가로서 면모를 다시금 느낄 수 있다.


 이상과 같이 백곡 김득신의 유묵과 간찰 2편을 살펴보았다. 필자는 우리 지역의 대표 문인인 백곡 김득신의 유묵을 좁은 지면에서나마 감상하는 기회를 갖고, 선생이 남긴 간찰을 통해 그 속에 담겨진 선생의 숨결과 표정을 느껴보고자 하였다. 백곡 김득신의 유묵과 간찰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 사이에 어느새 글씨는 꿈틀꿈틀 살아 움직였으며, 그 필적은 선생의 얼굴이 되고 음성이 되었다. 하나하나가 예술작품이었다. 여러분도 잔잔한 감동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예기(禮記)』 에 “불명불인(不明不仁)”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자손으로서 선조의 아름다움이 있는데도 알지 못하는 것은 밝지 못한 것(不明)이요, 알고도 전하지 않는 것은 어질지 못한 것(不仁)이라는 뜻이다. 선조 없는 자손은 없다. ‘안동 김씨 대종회 홈페이지’처럼 선조의 아름다움을 잘 정리해서 밝게 나타낸 문중이 드물다. 자못 부러울 뿐이다.


 <주 해>

6) 형식을 갖추지 못한다는 뜻으로, 상주에게 보내는 위문장에 사용하는 투식이다.

7) 효성이 지극한 나머지 어버이의 죽음을 너무 슬퍼하고 사모하여 병이 나거나 죽기까지에 이르러 도리어 효도를 상하는 일.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작성일

  &lt;예기&gt;의 불명불인(不明不仁)-'선조의 아름다움이 있는데도 알지 못하는 것은 밝지 못한 것(不明)이요, 알면서도 전하지 않는 것은 어질지 못한 것(不仁)'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신범식 선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