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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백곡 김득신의 유묵과 간찰 두 편(1)-유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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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8-03-13 08:54 조회2,4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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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일 전 증평에 계신 백곡 연구가 신범식선생님(한문학자, 충북대 강사. 증평 형석고 교사)께서 지난 2007년 12월에 발간된 <증평 예술>이란 지역 문예지를 우편으로 보내 주셨습니다.

 이 속에는 백곡 선조에 대한 새로운 논문 하나가 실려 있었습니다. 우리 홈을 늘 살피고 계신 님께서는 우리 홈에 실려 있는 백곡선조님의 자료들을 재 분석, 번역하여 발표하신 것입니다. 분석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백곡 유묵 : 8폭 병풍용 족자 중 마지막 본 1점

  2. 간찰1 : <근묵> 소재 간찰 1점

  3. 간찰2 : 지난 2005년 1월 26일 모 경매처에 나왔으나 경매에 실패했던 간찰 1점

 

이에 몇 회에 나누어 논문 내용을 소개해 올립니다.

신범식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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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백곡(柏谷) 김득신(金得臣)의 유묵(遺墨)과 간찰(簡札) 두 편>

      출전 : <증평예술-2007년 제2집>(2007. 12.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 증평지부 간) 34p--4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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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평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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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자 속의 논문 부분>

                                       필자 :  신 범 식

 김득신(金得臣.1604∼1684)은 경상도 관찰사를 지낸 치(緻. 1577~1625)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출생지에 대해 정확한 기록이 없어 상고할 수 없으나, 묘소는 증평군 증평읍 율리에 있다. 그는 조선 중기의 시인으로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자공(子公)이고, 호가 백곡(柏谷) 또는 백곡노인(栢谷老人), 백곡노수(栢谷老), 백곡계옹(柏谷溪翁), 백곡병부(柏谷病夫), 그리고 귀곡산인(龜石山人)이다. 귀곡산인이라는 호는 그가 우거하던 증평 좌구산아래 귀석산촌에서 딴 것이다. 김득신은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아 노둔한 편이었으나, 부친의 가르침과 훈도를 받아 서서히 문명을 떨친 인물이다. 공부할 때에 옛 선현과 문인들이 남겨놓은 글들을 많이 읽는 데 치력하였으며, 그 중 <백이전>은 억 번이나 읽었다고 하여 자기의 서재를 ‘억만재’라 이름지었다. 저서로는 『백곡집(柏谷集)』과 『종남총지(終南叢志)』가 전한다.


 주지하는 바대로 백곡 김득신은 시에 발군한 문장가이기도 하거니와, 글씨에도 조예가 깊었다. 『백곡집』의 「행장초」에 의하면,


 서법에 뜻을 두었는데 초성(草聖)에 더욱 기묘하였으나, 30세 뒤로는 손을 뗐다. 말년에 사람들이 간혹 글씨를 억지로 요구하면 술에 담뿍 취해서만 쓰기도 하였다.1)


라 하여 초서에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서법(書法)이라 함은 글씨의 예술적 기법을 가리키고, 초성(草聖)은 초서를 잘 썼기 때문에 일컬은 말이다. 이로 보면 김득신은 시의 경우처럼 서예에서도 조성(早成)한 것으로 보인다.2)


본고에서는 백곡 김득신의 유묵과 간찰3)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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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오른편은 그의 유묵으로 초서 작품이다. 왼편은 필자가 탈초(脫草), 즉 초서를 정자로 바꿔놓은 것이다. 백곡의 장기인 초서가 유감없이 드러난 것으로 활달 분방한 필세(筆勢)가 잘 나타나 있다. 동진(東晉)시대 왕희지(王羲之)는 『초결가(草訣歌)』에서 “초성의 경지에 오르기가 가장 어려우니(草聖最爲難), 용과 뱀이 붓끝에서 다투고 있다(龍蛇競筆端)”라고 하였듯이 마치 용과 뱀이 꿈틀거리는 듯하다. 끝부분에 ‘七十八歲翁書(78세 늙은이가 썼다)’라는 글귀로 보아 그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 1681년(숙종 7)에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내용은 시선(詩仙)으로 일컬어지는 당(唐)나라 이백(李白)의 「음구일용산(飮九日龍山飮)」 시를 쓴 것인데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9월 9일 용산에 올라 술을 마시니

국화꽃이 쫓겨난 신하라 비웃는 듯.

바람에 떨어진 모자를 취중에 바라만 보고4)

사람을 머물게 하는 저 달이 사랑스럽구나.

九日龍山飮 黃花笑逐臣

醉看風落帽 舞愛月留人


 이백이 9월 9일에 용산에서 술을 마실 때 지은 작품이다. 중국에서는 음력 9월 9일을 중양절(重陽節)이라 하여 산에 올라 술잔에 국화꽃잎을 띄워 마시는 풍습이 있다. 이백이 중양절에 용산에 올라 술을 마시는데, 술잔에 띄운 국화꽃잎이 자신을 놀리듯 입술을 피하는 꼴이 자신을 쫓겨난 못난 신하라고 비웃는 듯하다. 술 취한 가운데 바람에 날려서 땅에 떨어진 모자를 멀거니 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머무르게 하는 달빛이 볼만하고 사랑스러워 마냥 즐거워하고 있다. 백곡 김득신 역시 중양절을 노래한 시 「重陽歌(중양절 노래)」가 있으니


높은 산 정상에 손님들 모이니

모두가 이 고을 풍류객이라.

열 말 천 말 좋은 술 물인 양 흔하고

금빛 술동이 둘레둘레, 술잔을 돌리네.


풍성한 안주거리 옥쟁반에 가득하니

옳거니, 아름답고 귀한 산해진미로고.

술이 거나하니 우렛소리도 아랑곳 않고

부평초 같은 신세조차 까맣게 잊었어라.


때는 가을의 끝자락 9월 9일

천 그루 만 그루 국화향기 진동하고야.

끼룩끼룩 외기러기 모래 물가에 내려앉고

우수수 낙엽은 이내 낀 물가에 나부낀다.


예서제서 한껏 즐기며 취가를 불어제끼니

등등한 기상 무지개를 질러, 호방한 흥취 드높다.

취한 가운데 매화옹 따로 있어

웅대한 시구가 하손과 음갱을 능가하네.


이같이 뛰어난 재주로도 불우하였으니

허물어진 집, 산언덕에서 비바람을 맞는다네.

나 또한 세상과 더불어 말살된 지 오랜지라

문장을 한다한들 누구에게 취한 바 될까.


심술궂은 광풍이 모자를 불어 떨어트리니

예쁜 계집애들 일제히 손뼉을 쳐댄다.

벗들은 술자리 물리고 말에 올라 돌아가니

뉘엿뉘엿 햇살은 강어귀에 나지막하도다.


高山之頂會衆賓 摠是本州風流人

十千美酒賤如水 金樽左右杯行頻

肴膳十贍滿十盤 乃知海錯兼山珍

醉裏不聞鳴雷霆 忘却身世如浮萍

是時窮秋九月九 千株萬株黃花馨

十十孤雁下沙浦 蕭蕭落木飄煙汀

四座歡謔歌醉歇 逸氣凌虹豪興多

醉中別有梅村翁 雄篇大句凌陰何

俊才如此尙十軻 破屋暴露山之阿

我亦與世抹十久 縱爲文章誰所取

狂風十劇吹落帽 小兒嬌娥齊拍手

諸朋罷酒上馬歸 亭亭日脚低江口


라 지었다. 중양절을 맞아 등고(登高)하여 벗들과 한바탕 풍류를 즐기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59세가 되어서야 문과에 급제하여 반평생을 낙척한 삶을 살아왔던 김득신이기에 흥겨움 속에서도 회재불우(懷才不遇)의 속내가 읽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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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해>

1) 『柏谷集』「行狀草」, “且留意於書法 草聖尤奇 三十後棄之 末年 人或强求 則必乖乖書之.”

2) 앞에 든 책, “十五 雖勤受業 文理未違 而間成聯句 則其調格出世俗態.(15세가 될 때까지 비록 부지런히 수업하였으나 문리는 미달하였지만 간간이 시구를 이루었는데 그 조격이 속태를 벗어났다.)”

3) 안동 김씨 대종회 홈페이지(http://andongkim.net/man.html)의 ‘역사적 인물’ 코너에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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