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설악산기(登雪嶽山記)10-봉정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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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8-02-19 07:17 조회1,625회 댓글0건본문
새벽 6시, 기상이다. 깊은 잠을 잔 죽우가 먼저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비박을 친 맨 위의 천막을 걷자 이슬이 빗물처럼 흘러내렸다. 잠을 설친 나는 몸이 몹시 찌부둥했다. 식사준비는 간단히 끝났다. 보리쌀 햇반에 컵짬뽕, 김치가 전부이다. 기막힌 맛이다. 아침 해는 산 뒤쪽 대청봉 너머에서 뜨니 볼 수가 없었다.
<아침식사>
머문 자리를 말끔히 정리하고 나니 7시가 좀 넘는다. 다시 배낭을 꾸리고 길을 나섰다. 이제부터는 계속해서 내리막 길이다. 스틱을 길게 해야 했다. 무릎 관절 보호가 제1의 관건이다. 산을 오를 때의 힘겨움이 내려갈 때와 별 다를 바가 없다. 특히 낙상(落傷)을 조심해야 했다.
급한 경사길을 조심스럽게 약 30분 정도 내려가니 숲속 먼 아래쪽으로 널찍해 보이는 곳이 나타나더니 오목한 곳 가장자리의 나뭇잎 사이로 비죽이 기와집 모서리가 보인다. 봉정암(鳳頂庵)이다. 봉정암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해발 1224m)에 있는 암자다. 선덕여왕 13년(844)에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이 암자는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 불리는데 자장(慈藏)율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부처의 진신사리와 정골(頂骨)을 가져와 5곳에 나누어 봉안한 곳 중의 하나다. 적멸보궁은 이곳을 포함하여 양산 통도사(通度寺),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태백산 정암사(淨巖寺), 사자산 법흥사(法興寺) 등 5개 사찰이다. 그 중에서도 암자는 오직 이곳뿐이다.
<봉정암에서>
봉정암에 얽힌 전설이 하나 있다. 자장율사가 당나라 청량산에서 3, 7일(21일) 기도를 올리던 마지막 날, 문수보살이 현신(現身)하시어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전해주며 해동(海東)에서 불법을 크게 일으키라고 말하였다. 이에 자장은 귀국하여 이 진신사리를 모실 길지(吉地)를 찾아 이곳저곳을 순례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자장율사 앞에 아름다운 빛을 내는 봉황새 한 마리가 나타났다. 자장은 이를 범상치 않게 여기고 몇 날 며칠 동안 그 뒤를 쫓아갔다. 마침내 봉황은 어느 높은 산봉우리 위를 선회하다가 갑자기 한 바위 앞에서 자취를 감췄다. 자장율사가 그 바위를 가만히 살펴보니 부처님의 모습인데, 봉황이 사라진 곳은 바로 부처님의 이마에 해당하는 부분이었다. 또한 그 바위를 중심으로 좌우에는 일곱 개의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었으니, 가히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을 한 길지(吉地) 중의 길지였다. 이에 자장은 부처님의 형상을 한 그 바위 위에 부처님 정골 사리를 봉안한 뒤 오층 사리탑을 세우고 암자를 지었으니 이것이 곧 봉정암이었다. 봉정암(鳳頂菴)이란 ‘봉황이 부처님 이마로 사라졌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 후 이 봉정암은 영험(靈驗)한 기운을 지니고 있으며 기도자의 소원이 잘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크게 났다. 그런 뒤로 많은 불자들이 찾아오고 있다. 말로만 듣던 신비의 암자였다. 그리고 봉정암의 사리탑은 부처님의 뇌사리를 모셨다 하여 <불뇌보탑(佛腦寶塔)>, 혹은 <불뇌사리보탑(佛腦舍利寶塔)>이라 부른다.
<봉정암 도량>
봉정암에 도착하자마자 우선 감로수(甘露水) 한 잔으로 목을 축였다. 이 깊고 높은 산 중에 사리탑과 암자를 지은 자장의 괴력이 경외(敬畏)롭다. 절을 안고 있는 주변 산꼭대기엔 병풍처럼 깎아지를 듯한 높은 바위들이 빙 둘러섰다. 정 중앙의 위쪽으로는 약 10도 가량 앞으로 기울어져 곧 굴러 떨어질 것만 같은 위태로운 바위가 하나 있고, 바로 그 아래에 적멸보궁인 법당이 있었다. 마음을 정(靜)히 가라앉히고 발소리도 죽여가며 조용히 법당 안으로 들어가니 아무도 없다. 합장을 하고 서자 주위는 순간 무거운 적막만이 흐른다. 어떤 미동도, 작은 소리도 없다. 법당 정면 중앙에는 불상이 없고 금빛 방석만 하나 놓여 있을 뿐이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곳엔 불상이 없다고 했다. 불전함(佛典函)에 보시(布施)를 하고 절을 하며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부처님의 위대함을 찬송하고, 불법(佛法)의 숭고함을 찬양했으며, 스님들의 크고 높은 덕에 감사했다. 그리고 끝으로 우리 아들의 만족한 대학 입학도 간절히 빌었다. 나도 별 수 없는 속인(俗人)인가 보다. 개인의 이로움을 위해 부처님께 기원하는, 마음속의 우상을 숭배하는 못난 인간말이다---. 어찌됐든 이곳에 와서 빌면 모든 게 다 이루어진다니 마음이라도 편해보자는 속 편한 생각에 정성으로 9배를 올렸다. 대입 수능 시험이 가까워지면 수많은 수험생 어머니들이 이곳으로 몰려와서 기도하느라 빈 공간이 없다고 하는 곳이다. 부처님이 아마도 웃으시리라. 가소롭고 미천(微賤)한 중생(衆生)들이라고---
<봉정암 위의 기울어진 바위>
<봉정암 적멸보궁 법당>
<봉정암 범종>
<범종 문양-봉황도>
<범종 상부>
<법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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