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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평군부인 양천허씨 묘지문-역문(익재난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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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8-02-09 08:59 조회1,3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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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영공 부인 허씨의 묘지명 병서(金文英公夫人 許氏의 묘지명 병서)(익재난고본)

   출전 : <국역 익재난고>(제7권 비명. p233)

                                                                益齋 李齊賢 撰

 부인의 성은 허씨니 중찬 文敬珙 공(珙)의 둘째 딸이다. 大夫는 추밀원부사 수(遂)요, 曾大父는 예빈소경 경(京)이며, 어머니 윤씨는 정당문학 文平珙의 딸인데 나면서부터 근실하였으므로 문경공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다.

 윤씨(=허씨 모)를 사랑하는 날이 곧 乙丑日이었는데, 어떤 사람이 부인(=허씨)이 탄생한 해라 하여 장사 날짜를 개정하자고 청하니, 문경공(=허공)이 이르기를

 "나의 이 딸(=허씨)은 뒤에 반드시 복을 누릴 것이니, 혐의(嫌疑)할 것 없다." 하였다.

 훌륭한 사위인 故 정승 상락군 文英公 김공 순(恂)을 택하여 시집보냈다. 김씨와 허씨는 모두 大族이라서 사치와 부유함을 과시하는 가문이었으나, 부인은 예법으로 자지(自持)하였으므로 헐뜯는 사람이 없었다.

문영공(=휘손)이 늦게 노래 부르는 기생을 즐겨하였으나 일찍이 질투하는 빛이 없었으며, 문영공보다 12년 뒤인 至順(원 문종의 연호) 3년 (1332) 7월 辛卯日에 병으로 졸하였다.

 모두 4남 3녀를 낳았는데, 큰아들 永暾은 봉상시부 전법총랑이요, 둘째아들 永暉는 홍위위 낭장이요, 셋째아들은 出家하여 자은종 대덕이 된 思順이요, 넷째아들 永煦는 봉선대부 자섬사사이며, 첫째딸은 대광 청하군 정책(鄭幘)에게 시집갔는데 먼저 죽었고 둘째딸은 대광 상당군 백이정(白頥正)에게 시집갔고 막내딸은 王人 별리가불화(別里哥不花)에게 시집갔는데 강절성 참지정사라 한다.

명은 다음과 같다.

 

유순하고 올바른 부덕을 갖추었고

너그럽고 온화한 모칙(母則)이 아름답도다.

문경공(=허공)에 대하여도 감재(鑑裁)가 매우 분명하였으니,

그 아들을 보살핌에도 더욱 정밀하였으리라.

군자의 배필이 되어 어질기도 했거니와

천수를 누렸으니,

내가 유허(幽墟)에 명을 지어

悠久한 내세에 알리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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