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金澤) 사위 閔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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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윤 작성일08-01-26 19:36 조회1,560회 댓글1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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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김주회 |
• 조회수 : 24 | 2005-02-17 16:15:44 |
아래의 내용은 전에 주회씨가 소개해주신
潛谷先生遺稿卷之十三
神道碑銘
右議政閔文景公神道碑銘 의 번역본 중에서 관련부분을 옮겨 보았습니다
민기(閔箕 1504-1568) 墓:김포시 월곶면 계곡리
우리 선조 대왕(宣祖大王)께서 즉위한 첫해에 가장 먼저 어진 재신(宰臣)을 택해 재상으로 삼았으니, 문경공 민기(閔箕)가 바로 그 사람이다. 재상으로 있은 지 몇 달 만에 갑작스레 죽어서 새롭게 하는 지극한 다스림을 돕지 못하였으므로,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애석하게 여기고 있다.
공의 휘는 기(箕)이고 자는 경열(景說)이며, 여흥인(驪興人)으로, 고려 때 태사(太師)를 지낸 민영모(閔令謨)의 후손이다. 고조는 사재감 직장을 지낸 휘 징원(澄源)으로, 호조 참의에 추증되었다. 증조는 종친부 전첨(宗親府典籤)을 지낸 휘 형(亨)으로, 이조 판서에 추증되었다. 할아버지는 형조 참의를 지낸 휘 효손(孝孫)으로, 의정부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아버지는 양천 현령(陽川縣令)을 지낸 휘 세류(世瑠)로, 의정부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어머니 전의 이씨(全義李氏)는 장령 이인석(李寅錫)의 딸인데, 정경부인(貞敬夫人)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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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찰방 김택(金澤)의 딸에게 장가들었는데, 고려에서 시중을 지낸 김방경(金方慶)의 후손이다. 아들이 없어서
종제(從弟)인 민순(閔筍)의 둘째 아들 민수도(閔守道)를 후사로 삼았다. 민수도는 조정에서 벼슬하여 관직이 상서
원 부직장에 이르렀으며, 판서 성세장(成世章)의 딸에게 장가들었다. 아들은 넷으로, 민대인(閔大仁), 민대륜(閔大
倫), 민대수(閔大脩), 민대숙(閔大俶)이고, 딸은 둘로, 사인(士人) 홍효충(洪孝忠)과 김현(金睍)에게 시집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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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영윤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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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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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김택(金澤)의 두 사위 민기(閔箕 1504-1568)와 성세장(成世章 1506-1583)이 사돈간인 것이 흥미롭습니다